칼빈주의(Calvinism)의 신학 사상(Theological thought)
1. 칼빈주의의 정의
“칼빈주의(Calvinism)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인간의 공로(功勞)에 의해서 구원(救援)을 받을 수 있다’는 가톨릭(Roman Catholic Church, 구교(舊敎)에 반대(反對)하여 프랑스의 종교개혁자(宗敎改革者, Religious reformer) 칼빈(John Calvin, 1509-1564년)과 기타 개혁자(改革者)들이 성경(聖經)을 통해 발견한 ‘구원은 오직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받는 하나님 은혜의 선물(膳物)(엡 2:8)’임을 강조(强調)하는 그의 신학(神學)을 추종(追從)하는 자들에 의해 형성(形成)된 개신교(改新敎, Protestant) 사상(思想)”을 가리킨다. 특히, 칼빈(Calvin)의 저서(著書)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를 중심으로 형성(形成)된 신학체계(神學體系)를 말한다. 장로파(長老派) 혹은 개혁교회(改革敎會) 신학(神學)의 근거(根據)가 되었다는 점에서 일명 '개혁주의'(改革主義, Reformed theology, reformism)라고도 한다. 즉, 칼빈주의(Calvinism)가 종교개혁(宗敎改革) 당시 개신교(改新敎) 주류(主流)의 신학(神學)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유럽 전역(全域)에 개혁교회(改革敎會)가 점차(漸次) 자리 잡아갔다. 이들 개혁교회(Reformed Churches)를 통(通)해 칼빈주의(Calvinism)는 꽃을 피웠고, 이렇게 해서 수립(樹立)된 개혁교회(改革敎會)의 전통(傳統)까지 포함한 더 큰 의미의 칼빈주의(Calvinism)를 말할 때에는 '개혁주의(Reformism)'라는 표현(表現)을 쓴다.
좁은 의미(意味)로는 17세기에 특히 영국(英國)에서 엄격(嚴格)한 <예정론(豫定論)>을 받든 신학사상(神學思想)을 말한다. 칼빈주의(Calvinism)란 루터파와는 구별(區別)되는 「개혁파(改革派)」라고 하는 프로테스탄트 교파(敎派)의 신앙고백(信仰告白)들과 교리문답(敎理問答)들에 본질적(本質的)으로 나타나 있는 신학적 신념(信念)의 체계(體系)를 가리킨다. 또한 칼빈주의(Calvinism)라는 말은 칼빈(Calvin)이 개략적(槪略的)으로 제시한 교회 정치체제(政治體制)(장로제)를 내포하는 말일 수도 있으며, 그리고 매우 일반적으로 이 체제를 채택한 교회들 안에 있는 칼빈적인(Calvin) 교리 유형을 가리키느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교리와 정치의 연결은 결코 보편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치가 교리적 원칙들에서 자연적(自然的)으로 파생한 것이 분명한 경우에 한해서만 정치를 고려해도 족할 것이다. 역사적(歷史的)으로 칼빈주의(Calvinism)는 여려가지 형태의 교회정치 및 제도(制度)와 관련되어 왔음이 드러날 것이다. 칼빈(Calvin)의 교리(敎理)들은 청교도(淸敎徒) 신학(神學)을 형성했으며, 그 교리들은 대체로 회중주의에 흡수되어 근래(近來)에까지 회중교회를 지배해 왔다.
칼빈주의(Calvinism)는 예리한 논리와 강한 조직력(組織力) 및 행동력으로서 16세기에는 프랑스(France) 등 기타 국가(國家)에서 인문주의계 복음주의(福音主義) 개혁사상(改革思想), 나아가서 루터주의(Lutheranism)에 불만족(不滿足)하는 사람을 흡수했다. 또한 루터주의(Lutheranism)가 급진파(急進派)의 종교개혁(宗敎改革)을 소외한 것과는 달리, 칼빈주의(Calvinism)는 이를 비판해서 포용한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확장되어가는 칼빈주의(Calvinism)에 대해서 박해(迫害)가 가해질 때, 본래 자립한 사상이었던 칼빈주의(Calvinism)는 더욱 강력(强力)한 정치적 주장과 행동을 일으켰다. 이것이 프랑스(France)에서의 베즈, 오트망(Francois Hotman), 모르네(Philippe de Mornay), 랑게(Hubert Languet) 등의 왕제(王制) 반대론(反對論)을 낳았다. 스코틀랜드(Scotland)에서는 부캐넌(George Buchanan)에서 동일한 사상(思想)이 나타나는데, 스코틀랜드(Scotland) 종교개혁(宗敎改革) 자체가 왕권(王權)을 제한하는 정치적 행동(行動)이기도 하였다. 네덜란드(Netherlands)에서는 칼빈주의(Calvinism) 주도하에 독립(獨立) 전쟁(戰爭)이 수행되고, 17세기 영국의 청교도(淸敎徒, British Puritans) 혁명(革命)도 칼빈주의(Calvinism)를 사상적(思想的) 기초로서 지녔다. 미국(美國, America) 개척의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 巡禮始祖) 및 미국(美國) 독립선언(獨立宣言)의 배경도 공통적(共通的)이다. 이들 권리주장은 자기 자신에 대한 순결(純潔)과 규율(規律)의 엄격(嚴格)한 요구와 결부(結付)되어 있으며, 저항의 자세는 양심 및 교회 규율의 엄격함과 관련되어 있다. 17세기 칼빈주의(Calvinism)의 신학이 예정론(豫定論)을 주축으로서 체계화(體系化)된 것이 반드시 칼빈의 사고에 따른 것은 아니지만, 사상적(思想的) 상황 중에서 예정론(豫定論)이 선례화(先例化)가 된 것이다. 예정론이 사람들의 심리에 큰 긴장(緊張)을 낳고, 자신이 선택(選擇)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신앙과 실천에 정진(精進)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狀況)을 만들어내고, 이렇게 해서 칼빈주의 사회와 관계(關係)를 지니게 되었다는 해석(解釋)이 있는데, 사회에 대한 적극적(積極的) 태도는 예정론보다도 성화론(聖化論)에 의거한다. 또한 칼빈주의(Calvinism) 독특성(獨特性)은 정치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교리(敎理)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초기 칼빈주의(Calvinism) 지도자들은 칼빈(Calvin), 파렐(Farel), 베자(Beza, Theodorus), 불링거(Johann Heinrich Bullinger),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 낙스(John Knox),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 잔키우스((Jerome Zanchius)등이며, 이들이 중심(中心)이 되어 작성한 당대(當代)의 주요 신앙고백서(信仰告白書)와 교리서에 칼빈주의(Calvinism) 사상의 핵심이 요약(要約)되어 있다.
칼빈주의자(Calvinism)들이 고백하는 핵심 조항은 제네바(Geneva) 신앙고백서(信仰告白書)들은 ‘제네바요리문답(Geneva Catechismus, 1536/1541)’ ‘쮜리히신조(Zurich Consensus, 1549)’ ‘제네바신조(Geneva Consensus, 1552)’ 등이 있다. 그리고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Heidelberg Catechism), 갈리칸 신앙고백서(信仰告白書, Galican Confession of Faith), 제2헬베틱 신앙고백서(信仰告白書, 2nd Helvetic Confession of Faith), 벨직 신앙고백서(信仰告白書, Belzic Confession of Faith),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信仰告白書, Scottish Confession of Faith), 돌트 신경(信經),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信仰告白書,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등에 담겨 있다. 초기 칼빈주의(Calvinism)는 스위스 취리히(Switzerland Zurich)와 제네바(Geneva), 독일 남부(South Germany)와 홀란드(Holland), 영국과 스코틀랜드(England and Scotland)에서 성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17세기 유럽 대륙의 정통주의(正統主義) 신학자(神學者)들과 영국, 스코틀랜드, 뉴잉글랜드(United Kingdom, Scotland, New England) 청교도(淸敎徒, Puritan)가 더 다양하고 정교하게 체계화(體系化) 시켰다. 그 후 전 세계(世界)로 퍼져 나가 신학(神學)과 교회뿐만 아니라 정치(政治), 과학(科學), 교육(敎育), 문화(文化) 등 많은 영역(領域)에서 중요(重要)한 역할(役割)을 수행(遂行)하였다.
2. 칼빈주의의 특징(Characteristics of Calvinism)
칼빈주의(Calvinism)의 중심사상(中心思想)을 이루는 것은 루터와 같이 ‘성경(聖經)’에 돌아가려는 복음주의(福音主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개성적(個性的) 이다. 칼빈주의(Calvinism)의 특징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절대적(絶對的) 주권(主權)을 중시하는 신관(神觀)과 성경 중심주의(中心主義)를 지향(志向)하며(신앙의 유일한 규준〈規準〉으로서의 성경), 아담 이후 인간(人間)의 자유의지(自由意志)를 부정하는 것, 행위와 관계없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교리(敎理)에 있어서는 루터의 사상과 공통점(共通點)을 이룬다.
그러나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인 하나님의 은혜(恩惠), 성도의 견인(堅忍) 곧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성도의 구원, 구원받을 자와 멸망에 이를 자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절대예정론(絶對豫定論) 및 교회관(敎會觀)과 성례관(聖禮觀)에서는 루터의 신학(Luther's Theology)과 확실한 차이(差異)를 보인다.
그리고 신앙생활(信仰生活)에 있어서는, 자기를 단지 하나님의 용기(容器)로 본 루터(Luther)의 수동적인 경건에 대해, 칼빈(Calvin)은 자기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道具)로 본 활동주의적(活動主義的)인 경건사상(敬虔思想)을 가졌고, 이는 사회생활(社會生活)에서의 적극적(積極的)인 태도를 창출(創出)하였다. 즉, 칼빈주의(Calvinism)의 표어(標語)라 할 수 있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해' 존재하는 신앙은 의인(義認)은 물론 성화(聖化)의 단계에까지 적용함으로써 신앙인의 모든 생활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感謝)와 봉사(奉仕)의 장으로서 칼빈주의(Calvinism)의 사회적(社會的)·정치적(政治的) 적극성(積極性)을 제시하게 된다.
후에 독일(獨逸)의 사회학자(社會學者) 베버(Max Weber, 1864-1920년)는 근대 자본주의(資本主義)의 특질을 규명하면서 그것은 칼빈의 예정(豫定) 교리(敎理) 및 직업 소명관(召命觀)에 기초한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과 관련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루터(Luther)가 국가 권력을 영광화(榮光化)하는 경향을 띤 데 비해, 칼빈(Calvin)은 권력에 대한 저항권(抵抗權)을 인정하고 국가에 대한 교회의 자유(自由)를 확보(確保)하였다.
국가에 대한 교회의 자율성(自律性)의 주장은, 정치적(政治的) 권력에 대한 비판(批判) 정신이나 저항권(抵抗權) 사상을 육성하여 직·간접으로 근대(近代)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정신적 모태(母胎)가 되었다. 더욱이 영국(英國)의 교회개혁(敎會改革)은 칼빈주의(Calvinism)의 영향을 받아 17세기의 청교도혁명(淸敎徒革命)에 이르렀으며, 아메리카 개척(1620년을 전후하여 청교도(淸敎徒)의 신대륙 이주)과 독립의 정신적(精神的) 기반이 되었다.
칼빈(Calvin)은 예배에 있어서도 예전(禮典)을 중심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미사(Mass of the Roman Catholic Church)를 폐지(廢止)하고 설교중심(說敎中心)의 예배(禮拜)로 전환하였으며, 교회제도(敎會制度)에 있어서는 목사(牧師)·교사(敎師)·장로(長老)·집사(執事) 등 4개의 직무(職務)를 정하고, 목사(牧師)와 장로(長老)로 이루어진 콘시스토리움(Consistorium, 자문기관(諮問機關)에 따라 교회가 운영(運營)되도록 하였다.
개혁교회(改革敎會) 및 장로교회(長老敎會) 치리회(治理會)의 기원(起源)은 16세기 제네바의 치리회인 ‘콘시스토리움’ 즉 불어로 ‘꽁씨스뚜와’(Consistoire)이다. 이 명칭의 영어 단어(單語)가 ‘컨시스토리’(Consistory, 추기경(樞機卿) 회의(會議))이고 이것이 ‘당회(堂會)’로 번역(飜譯)된 것이다.
칼빈주의(Calvinism) 신학체계(神學體系)는 1566년 제2차 스위스(Swiss) 신앙고백(信仰告白, Helvetic confession)을 통해 정리(整理)되었고, 스위스(Swiss)뿐만 아니라 유럽 각 지역의 비루터파 교회(Non-lutheran church)들이 이를 폭넓게 수용했다. 즉, 프랑스(France)에서는 위그노파(Huguenots)가, 스코틀랜드(Scotland)에서는 장로파(長老派)가, 네덜란드(Netherlands)에서는 칼빈주의적 개혁교회(Calvinist Reformed Church)가 각 나라를 대표하는 교회로 정착(定着)되었다.
물론, 칼빈주의(Calvinism)는 영국(英國)의 종교개혁(宗敎改革)에도 영향을 미쳐 영국 국교회(國敎會)의 39개 신조(1563년) 속에 칼빈주의적(Calvinistic) 요소(要素)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칼빈주의(Calvinism)가 감독제(監督制)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정착(定着)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Scotland)에서는 존 낙스(John Knox, 1514-1572년)에 의한 칼빈주의적(Calvinistic)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성공하여 장로교회(長老敎會)의 전통(傳統)이 수립되었다. 미국(美國)에서는 스코틀랜드(Scotland) 장로교회(長老敎會)와 영국의 청교도(淸敎徒), 네덜란드 개혁교회(改革敎會) 이민자(移民者)에 의해 다양(多樣)한 칼빈주의적(Calvinistic) 전통이 수립되었고, 19세기에 활발(活潑)한 해외선교(海外宣敎)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Asia and Africa) 등지에 확산(擴散)되었다.
이러한 칼빈주의(Calvinism)의 전개 속에서 신학적(神學的)인 발전과 변모를 볼 수 있는데 주요한 것으로, 하나님의 예정(豫定)을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타락(墮落) 이전으로 보는 고마루스파(Gomarists)와 이후로 보는 알미니안파(Arminians)와의 대립, 그리스도의 죽음을 구원(救援)받기로 정해진 자만을 위한 것으로 보는 견해(見解)와 만인(萬人)을 위한 것으로 보는 견해(見解)와의 대립(對立), 천지창조(天地創造)로부터 완성(完成)까지를 하나님과 인간과의 계약(契約) 실현(實現) 과정으로 보는 계약신학(契約神學, 언약신학)의 성립(成立) 등이다. 이 같은 발전과정(發展過程)에서 칼빈주의는 근대 서유럽 문화(文化), 경제(經濟), 교육(敎育), 정치(政治) 그리고 복지(福祉)를 포함한 근대사회(近代社會)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役割)을 했으며, 근대(近代) 민주주의(民主主義) 형성과 근대주의 '정신'에 지대한 영향(影響)을 미쳤다.
칼빈(Calvin)의 개혁운동(改革運動)은 먼저 제네바(Geneva)에 확립(確立)되고, 여기에서 발단(發端)하여 프랑스(France)에 이식되었으나 가톨릭적(Catholic) 국가(國家)의 탄압(彈壓)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 발전(發展)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영국(英國, United Kingdom) 스코틀랜드(Scotland) 네덜란드(Netherlands) 등지에 깊은 뿌리를 박았으며, 그 신앙의 자유를 외치는 소리는 때로는 절대주의적(絶對主義的) 봉건적(封建的) 세력과의 투쟁(鬪爭)이 되었고. 때로는 가톨릭적(Catholic) 전제국가(專制國家)로부터 해방(解放)을 초래하여 중세(中世) 세계(世界)로부터의 근대(近代)의 해방에 큰 공헌(貢獻)을 하였다. 나아가서 칼빈주의(Calvinism)의 특징(特徵)은 네델란드 도르트 회의(Dutch Dort Meeting)에서 결정한 5대 교리(敎理)에 나타난다.
칼빈주의(Calvinism) 5대교리(The Five Points of Calvinism)는 칼빈(Calvin)에 의해 주창된 다섯 가지 교리가 아니다. 칼빈주의(Calvinism)에 입각하여 네델란드의 도르트 회의(Dutch Dort Meeting)에서 알미니안 주의자(Arminians)들에 대한 반박으로 제시된 다섯가지 교리이다. 칼빈주의(Calvinism)를 대표(代表)하는 교리(敎理)가 아니며, 칼빈(Calvin)의 신학(神學)에 정확(正確)하게 일치된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칼빈(Calvin)의 이름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칼빈주의적(Calvinistic) 관점에서 시대에 맞게 재해석(再解釋)된 교리(敎理)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5대 교리(敎理)를 영어(英語)로 표현할 때, 첫글자(Initial)을 따라 T.U.L.I.P로 적는다. 칼빈주의(Calvinism) 5대 교리(敎理)를 간략(簡略)하게 소개(紹介)하면 이렇다.
도르트 총회(Dort Assembly) 또는 회의(會議)는 알미니안(Arminians)를 따르던 이들의 교리(敎理)를 점검(點檢)하고 대항(對抗)하기 위해 소집된 화란 개혁주의(改革主義) 교회 회의이다. 첫 회의는 1618년 11월 13일에 시작되었고, 마지막 회의는 1619년 5월 9일이다.
1) 전적타락(全的墮落, 인간(人間)의 전적타락과 무능력(無能力), Total depravity(롬5:12-21)
전적타락(全的墮落)은 원죄(原罪)에 대한 것으로 인간(人間)은 아담의 타락(墮落)이후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며, 결코 자력(自力)을 통해 의롭게 될 수 없다. 전적(全的)으로 타락(墮落)했기 때문이다. 타락(墮落)은 무능력(無能力)이자, 악(惡)이다.
펠라기우스(Pelagius)는 인간의 전적타락(全的墮落)을 거부(拒否)하며 지성(知性)과 의지(意志)가 완전히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努力)으로 구원(救援)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준수(遵守)하는 데 완전한 능력(能力)을 지닌다고 믿는다.
알미니안주의(Arminians)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고, 칼빈주의(Calvinism)는 인간의 전적 무능력을 받아들인다
2) 무조건적(無條件的) 선택(選擇)(Unconditional election)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7-8).”
구원(救援)이나 의에 이름에 인간이 아무 것도 동참(同參)할 수 없다면 선택(選擇)을 '무조건적(無條件的)'이어야 한다. 무조건적(無條件的)이라 함은 인간의 어떤 선이나 행위(行爲)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선한 뜻에 의해 선택(選擇)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아무런 조건(條件)이나 행위(行爲)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통해 자신의 백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과거의 어떤 행위뿐 아니라 현재(現在)와 미래(未來)의 선행까지도 배제된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선택 이후 인간이 선을 행할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선택(選擇)했다는 주장을 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다. 구원 이후의 선은 하나님의 성령의 작용으로 인해 일어나는 거듭난 자들의 필연(必然)이자 자가 발현(發現)이다.
알미안주의(Arminians)는 예지(叡智) 예정(豫定) 즉 조건적(條件的) 선택(選擇)을 믿고, 칼빈주의(Calvinism)는 이중예정(二重豫定)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無條件的) 선택(選擇)을 믿는다.
3) 제한속죄(制限贖罪, Limited atonement, 제한적(制限的)이며 특별한 속죄(贖罪))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1:4)”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하나님의 구원은 제한적(制限的)이다. 즉 모든 인류가 믿음과 상관(相關)없이 구원을 얻는다는 '보편(普遍) 구원론(救援論)'을 거부한다. 분명 무조건적(無條件的) 선택(選擇)과 제한속죄(制限贖罪) 사이에는 긴장(緊張)이 존재한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이성적(理性的) 논리(論理)가 비약(飛躍)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分明) 믿는 자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고, 구원 얻기로 작정(作定)된 자들은 믿었다는 모순적(矛盾的) 표현을 동시에 갖고 있다.
알미니안주의(Arminians)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신자(信者)든 불신자(不信者)든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라는 보편적(普遍的) 속죄(贖罪)를 주장한다. 반면 칼빈주의(Calvinism)는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인 예정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만의 속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제한된 속죄로 제한한다.
4)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 은혜(恩惠, Irresistible grace, 거역할 수 없는 은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37-40).”, 롬 8:18-39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 은혜의 핵심(核心)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한 구원을 인간이 거절(拒絶)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구원의 주도권(主導權)이 인간에게 있는가 하나님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 은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거절할 수 없고, 능동적(能動的) 순종(順從)과 수용(收容)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성령(聖靈)의 주도적(主導的)이며 강력한 회개(悔改)와 중생(重生)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확신하며, 믿음으로 구원(救援)을 수납(受納)한다.
칼빈주의자(Calvinism)들은 선택(選擇)자에 대한 구원(救援) 은혜(恩惠)는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알미니안(Arminians)은 누구라도 구원은혜에 대해 영원(永遠)한 멸망(滅亡)에 이르기까지 저항(抵抗)할 수 있다고 믿는다. 칼빈주의자(Calvinism)들은 “참 신자는 은혜로부터 떨어져나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알미니안(Arminians)은 참 신자라도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 관하여 파선’(딤전1:19)할 수 있되, 영원한 멸망(滅亡)에 이르기까지 떨어져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5) 성도(聖徒)의 견인(堅忍, Perseverance of the saints, 궁극 구원(Perpetual Salvation)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 5:10).”
구원 받은 백성은 구원이 최소 될 수 있는가? 만약 하나님의 구원(救援)이 취소(取消)될 수 있다면 구원은 불안전(不安全)하며, 구원의 주도권(主導權)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人間)에게 주어진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은 영원(永遠)한 것이다. 그럼 도중에 믿음에서 탈락(脫落)하고 불신자(不信者)가 된 사람들은 무엇인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다시 회개(悔改)하고 돌아올 기회가 있다. 아무도 그때를 알지 못한다. 두 번째는 그는 처음부터 구원(救援) 받지 않은 사람이다.
알미니안주의(Arminians)는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죄(罪)와 유혹(誘惑)에서 능히 지키시고 보존(保存)해 주시지만, 인간의 나태(懶怠)함에도 불구하고 이 은혜가 상실(喪失)되지 않는 것은 아직 성경(聖經)에 의하여 증명(證明)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칼빈주의(Calvinism)는 우리의 부주의(不注意)함에도 불구하고 구원(救援)을 얻게 된 사람은 결코 구원을 상실(喪失)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칼빈주의(Calvinism) 5대 교리의 핵심은 전적타락(全的墮落)에 담겨 있다. 신학계(神學界)에서는 구원(救援)의 주도권(主導權)이 인간에게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있는가에 대한 논쟁(論爭)이 평행선(平行線)을 달리고 있다.
구원론(救援論)에 있어서 반(半)펠라기우스 주의(主義, Semipelagianism), 중세신학(中世神學), 로마 가톨릭신학, 알미니안(Arminian)에서는 신인협동설(神人協同說, Synergism)을 주장(主張)한다. 문자적(文字的)으로는 '함께 일하다'(Working together)는 뜻으로, 개인의 구원(救援)에 있어서 사람과 하나님이 협력(協力)한다는 주장이다. 즉, 사람이 거듭나고 구원 얻는 것은 자신(自身)의 노력(努力)과 함께 하나님의 자비(慈悲) 또는 은혜(恩惠) 사람이 스스로 반응(反應)하고 동시에 신앙(信仰)과 희망(希望)과 사랑을 나타냄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확증함으로써 구원(救援) 또는 의(義)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사상(思想)이다. 즉, 인간(人間)은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恩惠)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으로 설득하시고 설득된 인간이 자원하여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행하여 구원(救援)의 완성(完成)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즉, 구원(救援)은 하나님이 시작하고, 내가 회개(悔改)의 행동(行動)으로써 순종(順從)하며 간구(懇求)할 때, 하나님이 완성(完成)하신다고 주장한다.
어거스틴(Augustine) 이후 루터(Luther)와 칼빈(Calvin) 등 개혁교회(改革敎會)는 이러한 협력설(協力設)을 부정(否定)한다. 인간(人間)은 전적(全的)으로 타락(墮落)했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오직 믿음을 통해 구원(救援)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確信)한다.
성경은 인간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기인한다고 선언한다(엡2:4-10). 어거스틴과 칼빈(Augustine and Calvin)은 이 같은 성경(聖經)의 주장(主張)을 좇아 신단동설(神單動說, Monergism, 하나님만이 작용한다는 사상)의 교리(敎理)를 추구했다. 즉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은 유일(唯一)하신 행위자라는 것이다.
존 웨슬리(John Wesley)는 '복음적신인협동설(福音的神人協同說, Evangelical synergism)'로 구원론(救援論)을 말한다. 인간(人間)이 구원(救援)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恩惠)이지만, 구원(救援)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구원(救援)해 주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責任)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은총(恩寵)의 주도권(主導權)과 인간(人間)의 자유의지(自由意志)의 조화(調和)를 웨슬리(John Wesley)는 강조(强調)하고 있다.
최근에 바울에 관한 새 관점(New Perspective of Paul, NPP) 주의자(主義者) - 제임스 던(James D.G. Dunn), 샌더스(E.P. Sanders), 톰 라이트(N.T. Wright), 김세윤박사(미국 풀러 신학교 신약학 교수 - 들이 등장(登場)하여 ‘언약적 신율주의(神律主義, Covenantal nomism)의 관점에 의해 구원(救援)이 취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최초의 구원(칭의)를 이룬 후에 종말(終末)에 일어난 최종적(最終的) 구원(救援)(칭의(稱義))를 받을 때까지 언약(言約) 안에 머물러야 된다고 말한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구원(救援)은 취소(取消)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주장(主張)에 대하여 그들은 불가피(不可避)하게 이중(二重) 칭의(稱義)를 주장하게 된다고 비판(批判)한다. 그들은 제2성전기 유대문헌을 통해 충분히 밝혔기 때문에, 유대인이며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의 주장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