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 Neo-Orthodoxy)
신정통주의(Neo-Orthodoxy)는 두 차례 세계대전(世界大戰)의 참상(慘狀)을 겪으면서 기독교(基督敎) 세계(世界)와 인류(人類) 문명(文明)의 위기(危機)를 느껴 일어난 20세기 신학(神學)사조(思潮)이다. 위기신학(危機神學, Crisis Theology) 또는 변증법적 신학(辨證法的 神學, Dialectical theology)으로도 부르는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는 스위스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m, 1886∼1968)가 주창(主唱)했다. '위기(危機)'란 말은 임박(臨迫)한 '하나님의 심판(審判)'을 의미하는데, 19세기의 내재론적(內在論的) 낙관주의적(樂觀主義的)인 신학(神學)이 붕괴(崩壞)한 것과 독일(獨逸)의 신학(神學)이 처한 위기적(危機的) 현실(現實)을 대변(代辯)한 표현(表現)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에서는 '중도 정통(精通)주의'(Middle-orthodox)라고 부르는데 이는 정통(精通)주의(Orthodoxie)의 대를 이으면서도 자유주의(Liberalism)의 성향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自由主義)로 불리는 19세기의 신학(神學)에서 그리스도교는 과학적(科學的)인 문화와 결탁(結託)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世界大戰) 이후에는 문화(文化)에 대한 신뢰(信賴)가 쇠퇴(衰退)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반응(反應)이 그리스도교 지도자(指導者)들 가운데 일어났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적 메시지의 근원(根源)을 위기에 놓인 문화를 초월한 데에 두어야 한다는 것에 일치하였다. 즉 성서(聖書)에다 하나님 계시(啓示)의 기초(基礎)를 두려는 창조적(創造的) 노력(努力)이 대두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의 운동 초기(初期)에는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자유주의적(自由主義的) 통일에 대한 근본적(根本的)인 비판(批判)에 중점을 두었다.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는 성서(聖書), 신조(信條), 신학(神學)에서 전통(傳統) 용어(用語)를 사용하며 신학적(神學的) 모티브가 종교개혁(宗敎改革) 원리(原理)에서 나왔다 하여 '신정통주의'로 불린다. 하지만 이들의 신학은 성경(聖經) 비평(批評)을 받아들이고 과학적(科學的) 탐구(探究)와 가설(假設)을 정당(正堂)시하여 정통주의(正統主義) 신학(神學)과는 엄연(奄然)히 구분된다. 비록 자유주의 신학의 내재(內在)성을 비판(批判)하고 하나님의 계시(啓示)와 초월성(超越性)을 강조(强調)하여 자유주의(自由主義)를 비판하는듯하지만 실제(實際)로는 정통주의(正統主義)보다 자유주의적 성향(性向)이 강하다.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의 중심적(中心的) 주제(主題)는 종교적(宗敎的) 진리(眞理)와 문화적(文化的) 진리의 근본적(根本的)인 차질을 천명(闡明)하고, 죄의 중대성(重大性)과 보편성(普遍性)에 대한 새로운 강조를 하는 것이고, 선인(善人)과 성육(聖肉)의 그리스도와의 뚜렷한 구분, 훌륭한 사회(社會)라도 그것은 하늘나라에 유사(類似)한 것일지언정 곧 하늘나라 자체(自體)는 아니라는 것이다.
신정통주의도 과학적 탐구와 가설을 정당(正當)시하고 있는 점에서는 자유주의(自由主義)와 일치(一致)하고 있다. 무(無)로부터의 창조(創造)와 아담의 타락(墮落)과 같은 교리(敎理)가 다시 신학적(神學的)으로 중요(重要)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자연(自然)이나 인간의 기원(起源)에 관하여 과학적인 논쟁(論爭)을 벌이지 않았다. 성육신(聖肉身)이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 신학의 중심적 교리(敎理)임에도 불구하고, 성육신의 표현(表現)과 설명은 정통주의에서와 같은 비중(比重)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칼 바르트(Karl Barth), 루돌프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에밀 브루너(Emil Brunner),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 에두아르트 트루나이젠(E. Thurneysen) 프리드리히 고가르텐(Friedrich Gogarten) 미국에는 라인홀트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와 리차드 니버(H. Richard Niebuhr) 형제에 의해 소개되었다.
유럽에서 기존(旣存) 자유주의(自由主義)에 대한 안티테제(반정립, 反定立, Antitheis, Antithese, 그리스어로 '반대(反對)'라는 뜻의 Antitheton에서 유래)로 20세기 초반(初盤)에 시도된 개신교(改新敎) 신학의 한 노선(路線)이며, 후기 자유주의(Post-liberalism) 신학과도 관련이 있다. 이름대로 정통적(正統的)인 유신론(有神論)만을 펼쳐는 본래의 정통주의(正統主義)자들과 인간의 이성(理性)이 성경의 계시(啓示)보다 우위라는 자유주의자들의 영향(影響)을 받으면서도 이 둘과는 다르게 쇠렌 키르케고르의 유신론적 실존주의(實存主義)를 계승(繼承)하며 기존 유신론자(有神論者, Theist)들을 정면(正面)에서 비판(批判)하고 다양(多樣)한 철학(哲學) 운동(運動)(예를 들어 헤겔주의(Hegelism), 자연주의(自然主義,Naturalism), 낭만주의(浪漫主義, Romanticism), 자유주의(自由主義, Liberalism)들이 불러오는 영향(影響)을 신학(神學)과 연결(連結) 지으려는 노력(努力)을 부정(否定)하며 그 대신 성서(聖書)의 '메세지'에 주목(注目)하자고 주장한 칼 바르트(Karl Barth)를 시작(始作)으로 세워진 신학적 분파(分派)가 현재의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이다. 다만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神學)의 안티테제라지만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批判)하는 관점(觀點)이 보수 개혁주의(改革主義)자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자유주의(自由主義)에 비관적(悲觀的)인 입장이라고 보수적(保守的) 개혁주의(改革主義)자들이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자인 것은 아니다.
신정통주의의 신봉(信奉)자들은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의 유신론적(有神論的) 실존주의(實存主義)에서 출발한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Coram Deo)'를 수용(收用)하며 교파(敎派)에 따라선 뒤이어 나타난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존재와 시간'을 토대로 현대신학(現代神學)을 계승하고 이어갔는데, 집단인 이상 완전히 의견이 일치하진 않지만 신정통주의의 특징(特徵)상 거의 일관되게 나타나는 의견은 "신의 존재는 성경에서 표현된 여호와의 관념 또한 초월(超越)하며 모든 개인마다 믿음의 형태(形態)는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신에 대한 존재(存在) 정의(定義)는 무의미(無意味)하다. 이제는 인간과 신의 관계(關係)만이 중요(重要)할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신정통주의는 학계(學界)에서는 더 이상 통용(通用)되지않는 성서무오설(聖書無誤說)과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Verbal inspiration)을 전면적(全面的)으로 부정(否定)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는 부분(部分)은 긍정(肯定)하며 성경을 통해 계시(啓示)를 찾는다는 부분에선 위의 두 설과 같이 긍정(肯定)하는 입장이다. 신정통주의 신약(新約)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송두리째 부정하는 죄(罪), 심판(審判), 죽음, 십자가(十字架)와 부활(復活)에 대한 정통주의적 교리에 대해 부정은 하지 않지만 문제(問題)가 있다는 점에 대해선 긍정하며 현대의 일반인(一般人)들이라도 쉬우면서도 확실(確實)하게 알 수 있도록 의미(意味)를 재설정(再設定)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신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는 같은 해에 공개 되었다. 1921-22년 사이에 고가르텐은 [The Religious Decision]을, 브루너는 [Experience, Knowledge and Faith]를, 투르나이젠은 [Dostoievsky]를, 그리고 바르트는 불트만이 호의적(好意的)으로 받아들인 로마서 주석 제2판을 출판하였다. 1922년 가을 바르트(Karl Barth). 고가르텐 그리고 투르나이젠은 메르츠를 편집장(編輯長)으로 하는 'Zwischen den Zeiten'이라는 잡지(雜誌)를 창간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작품(作品)을 함께모아 싣는 기관지(機關紙)가 되기 위해 의도(意圖)되었다. 그리고 브루너와 불트만은 곧 그 기관(機關)지에 논문(論文)을 기고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관찰자(觀察者)가 새롭게 창설된 그 단체에 '변증법적(辨證法的) 신학(神學)'이란 명칭을 부여해 준 것은 바로 그 해 였다. 그러나 그러한 통일성(統一性)은 곧 흔들리게 되었다.
변증법적(辨證法的) 신학(神學)은 여러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의 최초(最初) 형태(形態)였다. 그 운동의 발단(發端) 무렵의 특징은 그 운동의 최초의 지지자들이 전통적(傳統的)인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神學)을 반대했다는 것이었다. 목자(牧者)적인 사역의 필요와 전쟁 때문에 생긴 영적 위기에 의해 당황(唐慌)하게 된 그들은 부룸하르트. 쿠터. 키에르케고르. 오페르베크.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저술(著述)들에서 새로운 기초를 추구(追求)하였다. 그들은 전통적(傳統的)인 프로테스탄트 신학(神學)은 비록 그것이 종교(宗敎)와 경건(敬虔)에 중심을 두었고 인간의 심리학(心理學)과 역사에서 표명되기는 하였지만 실제(實際)로는 인간(人間)에 관해서 말했을 뿐이며 그러면서도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고 늘 착각(錯覺)했다고 주장(主張)하였다.
그들은 계속(繼續)해서 종교(宗敎)를 포함한 모든 인간적(人間的) 지식(知識)과 인간적 업적(業績)에 대한 하나님의 초월성(超越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적(新的) 계시(啓示)의 주권(主權), 성경의 권위(權威) 등을 확증해 갔다. 그들은 죄(罪)된 인간은 바로 그가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일지라도 언제나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서있다고 확증(確證)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대(古代) 프로테스탄트의 정통(正統)성에 복귀(復歸)하지 않고서 다시 한 번 종교개혁(宗敎改革)자들의 사상(思想)에로 되돌아갔다.
바르트(Karl Barth)의 로마서 주석(註釋) 제2판은 일반적(一般的)으로 '변증법적 신학(辨證法的神學, Dialectical theology)'에 대한 가장 강력(强力)하고 가장 철저(徹底)한 표현(表現)으로 간주(看做)되고 있다.
바르트(Karl Barth)를 위시한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자들은 성경(聖經)을 "하나님의 말씀 자체"라기보다 "말씀의 증언(證言)"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 증언 속에 담겨 있는 "사상(思想)"은 하나님의 영감(靈感)을 받은 무오성(無誤性)을 지니지만, 세부적(細部的)인 기술(記述)에서는 인간적(人間的)인 오류(誤謬)가 섞여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성경의 "세부사항(細部事項)"보다 "전체적(全體的)인 메시지"에 관심(關心)을 더 기울일 수밖에 없고, 당연(當然)히 "조직신학(組織神學)"을 강조(强調)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경의 핵심 메시지를 주제별(主題別)로 요약(要約)해 놓은 것이 조직신학(組織神學)이기 때문이다.
바르트(Karl Barth)는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신문을!(Read the Bible in one hand, and the newspaper in the other)’이라는 명문을 남겼다.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 신학의 특징(Characteristics of Neo-orthodox theology)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 신학을 새로운 종교개혁(宗敎改革), 말씀의 신학, 계시(啓示)의 신학, 변증법적(辨證法的) 신학 그리고 역설(逆說)의 신학이라고 한다. 이 신학이 갖는 특이성은 다음과 같다.
1) 계시(啓示)의 중요성(重要性):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말씀은 기록 된 성경,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啓示)된 말씀 그리고 선포(宣布)된 말씀이 있다. 이 계시는 하나님의 선물로써 믿음을 통해서 받는다.
2) 자연신학(自然神學)의 거부(拒否): 종교적 진리(眞理) 추구(追求)에서 인간 이성에게 자율적(自律的) 기능을 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거부(拒否)했다.
3) 하나님의 초월성(超越性) 강조: 신앙의 수직적(垂直的)인 차원을 중시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質的) 차이를 강조했다(사 59:9). 하나님은 전적인 타자이시다. 계시로서도 충분히 알려지지 않는 숨겨진 하나님(Deus absconditus)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성(God's holiness)과도 관련이 있다.
4) 인간의 죄성(罪性): 죄는 인간의 자유의 남용(濫用)으로서 자신의 피조성(被造性)을 거부하고 창조주(創造主)와 같이 되려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중심(自己中心)에 하나님이 계심을 허용하지 않고 자기 자신(自身)을 중심에 두려는 것이다.
5) 신앙과 은혜(恩惠): 인간의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시작한다. 신앙은 인격적(人格的)인 신뢰와 순종이다. 인간은 신앙(信仰)가운데 하나님의 명령(命令) 아래 있으나 이 명령가운데에서 자유의 원천(源泉)을 발견한다. 원만한 부모(父母)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참된 자유(自由)함과 같다.
6) 성경의 권위(權威): 신학의 원천(源泉)과 규범(規範)은 성경이다. 성경은 믿어져야 할 절대적무오(絶對的無誤, Absolute Inerrancy)의 진술을 담은 책이라기보다는 신앙(信仰)을 가진 개인이나 백성 그리고 교회에게 주시는 살아있는 메시지이다. 이렇게 말한 것은 히틀러(Adolf Hitler, 1889년~1945년)를 메시아로 보고 추종(追從)하던 수많은 독일(獨逸) 기독교(基督敎)인들에게 자신의 성경(聖經)해석에 관한 언급(言及)이라고 보여 진다.
7) 종말론(終末論): 종말론의 목적(目的)과 목표(目標)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성경의 황금시대(黃金時代)는 과거가 아니라 아직도 오고 있으며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져 올 것이다. 그 나라의 완성(完成)은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에서처럼 인간(人間)이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기독교(基督敎)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復活)에 기초를 둔 큰 희망(希望)을 소유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그 나라는 이미 와있으나 아직 완성(完成)되지 않은 그 나라이다. 신학적(神學的)으로 'Already but not yet' 이다. 그 나라의 오심을 기대하는 가운데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It is necessary to live a life of faith in anticipation of the coming of the country).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 신학의 평가(Evaluation of Neo-orthodox theology)
1) 교회(敎會)를 위한 신학(神學)의 중요성(重要性)과 가치(價値)를 회복(回復)케 하였다. 2) 계시(啓示)에 근거한 성경연구(聖經硏究)를 하게 하였다. 3) 하나님의 초월성(超越性)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나약함과 죄성(罪性)을 드러냈다. 이모든 것은 종교개혁적(宗敎改革的)인 유산(遺産)을 회복(回復)시킨 것이다. 4) 성경(聖經)의 계시(啓示)가 신앙의 원천(源泉)임을 강조(强調)함으로써 자연신학(自然神學)과 인간 이성(理性)의 역할(役割)을 경시하였다. 5) 인류학(人類學)과 비교종교학(比較宗敎學) 그리고 철학(哲學)의 역할(役割)을 등한시(等閑視) 하였다. 6) 전적인 타자(他者)인 하나님과 죄인(罪人) 인간(人間)을 대립시켜 아들 됨 보다는 주인(主人)과 종(從, Servant)의 관계(關係)를 형성(形成)하였다.
한국(韓國)의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는 1930년대 초에 소개되었고 한국기독교장로회(韓國基督敎長老會, 基長) 교단(敎團)과 한신대학교를 중심(中心)으로 현재(現在)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기장(基長) 교단(敎團)은 전적으로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를 수용(收用)하면서 해방신학(解放神學)의 토착화(土着化) 신학인 민중신학(民衆神學)을 창시(創始)하였다. 이는 후기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神學) 사조(思潮)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를 비판적(批判的)으로 수용한 것이다, 기장(基長) 교단 사이즈는 작지만 신학(神學)계에서 상당한 영향력(影響力)을 행사하고 있다.
1960년대에 들어와 칼빈주의 1세대 학자로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총장을 역임한 한철하 박사(1924~2018년)와 한국적 기독교 토착(土着)신학(神學) 정립(定立)에 기여한 해천(海天) 윤성범 박사(1916∼1980년, 감신대 학장 역임) 사이에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 신학(神學) 논쟁(論爭)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