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신신학(死神神學, The death of God theology)

사신신학(死神神學)'하나님이 죽었다(God is dead)'고 선언(宣言)하는 현대신학(現代神學)의 한 부류. 주로, 미국(美國)의 젊은 신학자(神學者)들을 중심(中心)으로 1960년대에 일어난 급진적(急進的)인 신학운동(神學運動)으로써 일명 '신 죽음의 신학(Theology of God Death)'이다. 1960년대가 되자 서구문화(西歐文化)는 격변(激變)에 휩싸였다. 이 격변의 결과(結果) 다소 과장(誇張)처럼 보이고 심지어 다소 신경질(神經質)처럼 보이는 주장(主張)들이 잇달아 튀어나왔다. 이런 주장들 가운데 가장 유명(有名)한 것이 하나님은 죽었다(Death of God)’ 운동(運動)이었다. 이 운동은 196648일자 <타임Time>지의 표지(表紙) 사진(寫眞)을 장식(裝飾)할 정도였다. 표지 사진에는 장례식(葬禮式)에 쓰는 검은 천에 하나님은 죽었는가(Is God dead)?’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역사적인 배경(Historical background of The death of God theology)

1,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西歐) 사회(社會)는 더 이상 전통적(傳統的) 의미의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세속화(世俗化)된 사회(社會)가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1960년대 미국에서 태동한 사신신학(死神神學)은 하나님을 부정(否定)하며, ()없는 신학(神學) 특히 하나님 없는 기독론(基督論)을 전개(展開)했다.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전적(全的)으로 인간(人間)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以上)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고 초월적(超越的)인 신()은 없으며, 역사적(歷史的) 예수에 대해서만 집중(集中)해야 한다고 강조(强調)했다.

하나님의 죽음에 대한 논의는 2세기경부터 시작(始作)되었지만 그 사상(思想)의 뿌리는 결과적으로 17-18세기의 근대인(近代人)들에게 있어서 종교(宗敎)는 초월적(超越的)인 신()을 부정(否定)하면서 자연(自然) 그 자체(自體)에 대한 관심(關心)을 가진 것이다. 특별(特別)히 인간에 대한 관심(關心)이 가장 중심적(中心的)이고 절대적(絶對的)인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인간(人間)의 이성(理性)이 압도적(壓倒的)인 위치(位置)를 차지했고, 그 외에 인간의 양심(良心), 감정(感情), 의식(意識) 등이 신()의 자리를 물리치고 종교적(宗敎的)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과학 혁명시대(革命時代)17세기를 지나 18세기 계몽주의시대(啓蒙主義時代)에 이르러 과학적 합리성(合理性)이 열매를 맺었다. 이제 맹목적(盲目的)인 종교의 권위(權威)에서 벗어나 이성적(理性的)이고 인간 중심적(中心的)인 철학(哲學)이나 문화(文化)가 꽃을 피게 되었다. 이는 17-18세기 사람들이 초월적(超越的)인 신()에 대한 관심(關心)을 더 이상 가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그동안 인류 역사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한다고 믿었던 신()의 자리를 대체(代替)하기 위하여 인간(人間)이나 자연(自然)을 종교의 대상(對象)으로 삼았던 것이다.

리차드 미들턴(J. Richard Middelton)17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현대인들의 세계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근대적 세계관은 이 최종적(最終的) 질문에 대해서 자기를 정당화하는 답변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왔다. 자율적(自律的) 주체(主體)는 과학을 통해 세계를 파악하고, 기술을 통해 세계를 지배(支配)하며 변형시키는 존재다. 자율적 주체는 전통(傳統)이나 무지(無知), 미신(迷信) 등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문제점(問題點)을 스스로 고치고 치료한다. 근대(近代)에서 우리의 구원(救援)자는 바로 우리 자신(自身)이다. 진보(進步)는 세계사와 구속사 속에서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이고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이 진보의 행진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구원한다. 우리 자신(自身)이 우리의 구원(救援)자라는 것, 이것이 모더니티(Modernity)의 역사적(歷史的) 자신감(自信感)의 요체(要諦)이다.

17-18세기 계몽주의시대(啓蒙主義時代)의 근대철학자(近代哲學者)들은 천동설(天動說)을 포기하였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하늘에 있다고 믿었던 초월적(超越的)인 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들은 성경(聖經)에 나오는 기적(奇蹟)과 같은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사건들을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拒否)하였다. 이는 동정녀 탄생(誕生)이나 부활(復活) 등의 기적(奇蹟)들을 단지 신화(神話)로 취급하거나 허구(虛構), 즉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마르크스(Marx)는 물질(物質)을 하나님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미국의 복음주의(福音主義) 저자이며 기독교 잡지(雜誌)의 컬럼리스트인 낸시 피어시(Nancy Randolph Pearcey, 1952- )는 그녀의 저서 <완전한 진리>에서 이러한 계몽주의(啓蒙主義) 시대의 특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416세기에 서유럽 문명사(文明史)에 나타난 문화운동(文化運動) 르네상스(Renaissance)는 학문(學文) 또는 예술(藝術)의 재생(再生부활(復活)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르네상스(Renaissance)를 인간성(人間性)의 해방(解放)과 인간(人間)의 재발견(再發見), 그리고 합리적인 사유(思惟)와 생활태도의 길을 열어 준 근대문화의 선구라고 본다. 이때부터 이성(理性)을 계시(啓示)에서 완전히 해방(解放)시키자는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중세(中世)에서 르네상스(Renaissance)로 접어들 무렵(대략 1300년대에 시작되는데), 그 소리가 점점 높아져서 (1700년대에 시작되는) 계몽주의(啓蒙主義)의 시대에 최고조(最高潮)에 달했다.

계몽주의의 신조(信條)는 자율성(自律性)이었다. 외적인 권위(權威)는 모조리 뒤엎고, 오직 이성(理性)으로만 진리를 발견하라! 계몽주의(啓蒙主義)는 과학혁명(科學革命)의 눈부신 성공(成功)에 매료(魅了)되어 과학을 참 지식의 유일(唯一)한 근원(根源)으로 왕좌(王座)에 올렸다....... 또한 자연(自然)이 유일한 실재이며 과학적(科學的) 이성(理性)이 진리(眞理)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외쳤다. 과학적(科學的) 연구(硏究)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든 환상(幻想)이라고 선언했다. 이성(理性)이 철학적(哲學的)으로 중립적(中立的)인 것인 양 선전(宣傳)되었지만 실제(實際)로는 과학적(科學的) 유물론(唯物論)과 동일시(同一視)되기 시작했다.

근대(近代)의 계몽주의(啓蒙主義), 근대철학(近代哲學), 근대신학(近代神學)이 현대신학(現代神學)의 무신론적(無神論的) 사상(思想)과 사신사상(死神思想)으로까지 이어져왔다. 이 계보(系譜)는 스피노자(Spinoza, Baruch De, 1632-77)의 범신론(汎神論)으로부터 시작(始作)하여, 계몽주의(啓蒙主義) 사상가의 대표(代表)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新學)의 대표(代表) 현대신학(現代神學)의 아버지라 일컫는 쉴라이어마허(Friedrich Ernst Daniel Schleiermacher, 1768-1834), 포이에르바하(Feuerbach)와 유물론자(唯物論者) 마르크스에게 영향(影響)을 미친 헤겔(Hegel, Georg Wilhelm Friedrich, 1770-1831), 마르크스에게 영향(影響)을 준 무신론(無神論) 철학자(哲學者) 포이에르바하(Feuerbach, Ludwig, 1804-1872), 공산주의(共産主義) 이론(理論)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83), ‘신은 죽었다는 선언(宣言)으로 유럽 정신사(精神史)를 부정(否定)하고 유럽 문명(文明)의 종말(終末)을 설파(說破)한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본회퍼(Dietrich Bonhoeffer(19061945)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스피노자(Spinoza, 1632-77)는 네덜란드의 유태인(猶太人) 철학자(哲學者)로서 인간(人間)이나 자연(自然)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은 범신론(汎神論, Pantheism)을 주장한 계몽주의(啓蒙主義) 초기(初期)의 철학자(哲學者)이다. 범신론(汎神論)은 무엇인가? 이는 세상(世上)의 모든 것이 하나요, ()도 세상(世上)도 하나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오로지 자연(自然) 안에서만 존재(存在)하며, 생성(生成)하는 모든 것도 오직 자연의 무한(無限)한 가능성(可能性) 안에서 생성된다고 것이다. 즉 자연(自然)이 신()이라는 주장(主張)이다. 자연과 떨어져 독립적(獨立的)으로 존재(存在)하는 초월적(超越的)인 신()은 존재(存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신조차도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무신론(無神論)의 하나이다. 그는 천사(天使)는 환상(幻想)이며, 영혼(靈魂)은 생명체(生命體) 안에서만 존재(存在)한다고 주장(主張)하다가 유대교회에서 파문(破門)을 당하였다. 그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의 사과나무를 심겠다(Tomorrow the earth will be destroyed, but I will plant today's apple tree).”라는 말로 유명하다.

쉴라이어마허(Schleiermacher, 1768-1834, 독일 신학자)에 의하면, 종교(宗敎)는 헤겔(Hegel)이 주장하는 이성(理性)이거나 칸트(Kant)가 생각하는 도덕적(道德的)인 행위(行爲)가 아니었다. 쉴라이어마허(Schleiermacher)는 종교는 인간(人間)의 내면에 있는 감정(感情)이라고 주장했다. 즉 종교(宗敎)는 인간내면(人間內面)에서 우러나오는 절대의존(絶對依存)의 감정(感情)’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인간의 감정(感情)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쉴라에르마허(Schleiermacher)의 주장에 대한 헤겔(Hegel)의 반응이다. 쉴라이어마허(Schleiermacher)종교는 절대의존의 감정이라고 주장하자, 헤겔(Hegel)은 그렇다면 ()가 가장 종교적(宗敎的)인 동물(動物)(The dog is the most religious animal)’이라고 응수(凝水)하였다는 것이다. 결과적(結果的)으로 현대인(現代人)들은 인간의 감정(感情), 의식(意識), 이성(理性), 양심(良心) 등을 종교의 내용(內容)으로 삼았던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계몽주의(啓蒙主義) 사상가(思想家)의 대표로서 헤겔(Hegel)에게 지대한 영향(影響)을 준 독일의 철학자다. 칸트(Kant)는 그의 저서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라는 책을 통해 기독교(基督敎)에서 가르치는 신의 섭리기적과 같은 초자연적(超自然的) 현상을 다루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인간의 윤리적(倫理的) 필요나 사회질서(社會秩序)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신()의 존재(存在)를 요청하였던 것이다. 칸트(Kant)는 하나님이나 사후세계(死後世界) 등과 같은 실체들은 우리의 이성(理性)으로서는 알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는 신이나 사후세계를 부정할 때에 생기는 현실적(現實的)인 문제를 고민(苦悶)하였다. 그는 사후세계(死後世界)를 부정(否定)할 때에 인간의 선()하고 윤리적(倫理的) 삶이 너무나 헛되어 지는 것과 그로 인해 사회질서(社會秩序)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염려(念慮)하였다. 그로 인해 칸트(Kant)는 개인의 선()한 삶이 보상을 받기 위해 사후세계(死後世界)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이러한 사후세계(死後世界)를 가능케 하는 신()의 존재(存在)가 요청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헤겔(Hegel, 1780-1831)은 유물론자(唯物論者) 마르크스(Marx)와 포이에르바하에 영향(影響)을 미친 현대 계몽주의가 낳은 철학자(哲學者)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종교철학>에서 기독교를 가장 완전한 종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기독교는 이성적(理性的)인 종교이다. 헤겔(Hegel)은 이성(理性), 곧 인간(人間)의 정신(精神)을 신()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종교의 주체는 인간의 정신(精神)이었던 것이다. 결국 헤겔(Hegel)은 초월적(超越的)인 신()을 부정하고, 인간의 이성(정신)을 신의 모습 그 자체를 구체적(具體的)으로 보여준 것으로 보았다. 헤겔(Hegel)이 종교를 철학으로 대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세상(世上)의 모든 것을 초월(超越)하려는 인간의 정신이 신적(神的)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정신은 바로 합리적(合理的)인 사고(思考)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헤겔의 철학(哲學)은 석가(釋迦)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석가는 인간의 정신(精神)이 얼마나 위대(偉大)한지를 가르쳤다.

포이에르바하(Feuerbach)는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준 무신론(無神論) 철학자이다. 그에게 있어 신이란 인간이 자신의 소원이나 꿈을 세상 속에 반영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이란 존재는 마치 그것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상상(想像)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과적(結果的)으로 신의 정체(正體)는 상상을 통해서라도 대리만족(代理滿足)을 원하는 인간의 꿈이요 소원(所願)에 불과한 것이다. 포이에르바하(Feuerbach)는 그의 저서 <기독교의 본질>에서, ()은 인간(人間)이고 인간(人間)은 신()이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마르크스(Marx)와 포이에르바하(Feuerbach)의 무신론적(無神論的) 철학사상(哲學思想)은 석가(釋迦)의 무신론적(無神論的) 사상(思想)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석가는 인간(人間)이 신()처럼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人間)이 신()이 될 수 있다는 논리(論理)가 성립(成立)이 되는 것이다.

공산주의(共産主義) 이론(理論)의 창시자(創始者)인 마르크스((Marx, 1818-83)는 종교(宗敎)인민(人民)의 아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교를 가리켜 환상적(幻想的)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는 종교의 현실 도피적(逃避的) 현상을 비판한 말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회적(社會的) 억압(抑壓)과 착취(搾取)를 당할 때에 천국(天國)이나 극락(極樂)과 같은 종교적(宗敎的) 환상(幻想)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마르크스(Marx)는 종교(宗敎)는 인간의 환상을 통해서 만들어진 거짓된 신비(神秘)라고 주장한다.

 

급진 신학(Radical Theology)

급진신학(急進神學)자들이 하나님의 죽음을 최초로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서구의 정신사(精神史)에 나타난바 있었던 사상이었다. 예를 들어, 독일(獨逸)의 철학자(哲學者) 니이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그의 즐거운 지식(知識)에 등장 하는 미치광이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죽음을 외쳤으며 불란서(佛蘭西)의 실존철학자(實存哲學者)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1)는 이것을 시인(是認)했다.

급진신학(急進神學)은 전통적(傳統的)인 기독교(基督敎)와 하나님은 현대인(現代人)의 문제와 욕구를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분쇄(粉碎)하고 새로운 기독교 또는 제 2의 종교개혁(宗敎改革)을 모색했다. 급진신학(急進神學)의 주요한 주제는 신의 죽음, 예수에 대한 복종 및 새로운 낙관주의(樂觀主義)로 요약된다.

미국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급진신학(急進神學)신 죽음의 신학(Theology of God Death)’이다. 이것은 1960년대 전세계(全世界) 신학계(神學界)에 화제를 일으키며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 외에도 1970년대에 시작된 희망(希望)의 신학(神學)과 해방신학(解放神學)에 뿌리를 둔 정치신학(政治神學), 1980년대부터 본격적(本格的)으로 전개되고 있는 종교다원화(宗敎多元化) 신학(神學) 그리고 과정신학(過程神學)이 급진신학(急進神學)으로 분류될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기독교(基督敎)는 전반적(全般的)으로 세속화(世俗化)되고 신학은 급진화(急進化)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신학적 변화에 결정적(決定的)인 역할을 한 사람이 본회퍼(Bonhoeffer)였다. 그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제자(弟子)의 길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의 핵심(核心) 사상(思想)이자 혁명적(革命的)인 개념(槪念)인 무종교적(無宗敎的) 시대(時代)와 무종교적(無宗敎的) 기독교(基督敎), 혹은 성인(成人)된 세계(世界)와 성경 개념(槪念)의 비종교적(非宗敎的) 해석은 기독교 신학계(神學界)에는 큰 충격을, 젊은 신학자(神學者)들에게는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세계신학(世界神學)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특히 그가옥중 서간에서 주장한 성경 개념의 비종교적(非宗敎的) 해석(解釋)”은 기독교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세속화신학(世俗化神學), 사신신학(死神神學), 상황윤리(狀況倫理)등이 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고, 정치신학(政治神學), 혁명신학((革命神學), 해방신학(解放神學)이 간접적(間接的)으로 연관되어있다. 이러한 급진(急診) 신학(神學)의 중심에는 항상 본회퍼(Bonhoeffer)의 사상이 자리잡과 있다. 비기독교인(非基督敎人)까지도 사로잡는 본회퍼(Bonhoeffer)의 매력(魅力)은 그의 삶과 사상(思想)의 일치(一致)에서 찾을 수 있다. 히틀러의 독재정권(獨裁政權)에 용기(勇氣)있게 항거(抗拒)하고 저항(抵抗)한 끝에 투옥(投獄)되어 39세에 처형(處刑)당한 그의 삶은 그가 강조(强調)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同參)하는 삶, 타자(他者)를 위한 존재(存在)로서의 삶의 실현(實現)이었다.

신 죽음의 신학 태동(The Birth of Death of God)

신 죽음의 신학(Theology of God Death)은 하나님 상실(喪失)의 경험(經驗)과 역사적(歷史的) 예수에 대한 재발견을 토대로 현대 미국의 낙관주의적(樂觀主義的) 사고에 의해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이 아닌 세계를 무조건적(無條件的)으로 신뢰(信賴)함으로써 해결하려 한 급진적(急進的)인 신학 운동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부정(否定)하고 하나님 없는 신학을 전개하려 했던 세속화(世俗化) 신학(神學)의 극단적(極端的) 형태였다.

신 죽음의 신학이 일어나는 데 큰 자극제(刺戟劑)가 된 것은 본회퍼(Bonhoeffer)의 사상(思想)이었다. 그는 옥중서신(獄中書信)’에서 무종교적(無宗敎的) 기독교(基督敎)’, ‘성인된 세계성서적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이라는 혁명적 개념을 제시했다. 현대인은 성인된 세계에 살고 있는 성인된 인간이며 종교(宗敎)가 필요 없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마치 신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스스로 책임을 진다. 신 죽음의 신학(神學)은 기독교 안에서 유신론(有神論)을 부정하고 무신론(無神論)을 주장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무신론의 관점을 기독교에 수용하여 무신론의 용어로 신학 작업을 하려 했던 현대신학(現代神學)의 한 흐름이었다. 신 죽음의 신학의 핵심적(核心的) 주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독교 전통적인 초월자(超越者)와 창조주(創造主)로서의 하나님은 죽었으며,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둘째, 하나님의 죽음은 또한 전통적인 기독교(基督敎)의 죽음의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의 윤리적(倫理的)인 교훈에 근거하여 새로운 윤리 종교로서 기독교를 재조직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경험적(經驗的) 사실의 배후에 있는 초경험적(超經驗的)인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반면, 인간의 이성(理性)과 경험(經驗)에 신뢰성을 두는 실증주의적(實證主義的) 태도로부터 나온 것이다. 신의 죽음 문제는 신문(新聞), 잡지(雜誌) 등 대중적(大衆的)인 언론(言論) 매체(媒體)들을 통해 세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의 특집 기사가 결정적(決定的)인 역할을 했다. 196648일자 타임지는 하나님은 죽었는가를 커버스토리로 하여 이 신학을 소개함으로써 전세계(全世界)에서 경악(驚愕)과 분노(忿怒)와 탄식(歎息)을 일으키며 뜨거운 논쟁(論爭)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을 고비로 더 이상 지속(持續)하지 못하고 한 때의 유행(流行) 신학(神學)으로 끝나고 말았다.

사신신학(死神神學)은 다양(多樣)한 견해(見解)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에 있어 공통적(共通的)인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信仰)이 현 세계에서는 불가능(不可能)하거나 무의미(無意味)하며 인간의 성취(成就)는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世上)에서의 세속적(世俗的)인 삶에서 실현(實現)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 신학자로는 미국의 종교학자로서 사신신학(死神神學)의 대표자 폴 반 뷰렌(Paul van Buren, 1924-1998)이 쓴 <복음의 세속적 의미Secular Meaning of the Gospel>(1963)와 미국의 급진주의(急進主義) 신학자(神學者) 토머스 알타이저(Thomas J. J. Altizer, 1927-)가 쓴 <기독교 무신론의 복음, Gospel of Christian Atheism> 같은 책들이 하나님은 죽었다고 외치며 황당(荒唐)하면서도 사람을 잡아끄는 세상 언론(言論)의 헤드라인(Headline)을 차지했다. 급진 신학과 신의 죽음(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 God, 1966)을 함께 저술한 해밀턴(W. Hamilton)과 토마스 알타이저(Thomas Altaizer)의 저서도 미국 프로테스탄트에 사신신학(死神神學)의 출발을 알린 책이 되었다. “하나님은 죽었다라는 입장을 훨씬 더 조리 있게 천명(天命)한 책이 미국(美國)의 신학자(神學者)이자 하버드 신학대학원(神學大學院) 교수 하비 콕스(Harvey Cox, 1929-)가 쓴 <세속 도시Secular City>(1965)이다. 콕스(Cox)는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대학(大學)과 예일 대학교(Yale University)에서 신학(神學)을 공부했으며,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에서 철학박사(哲學博士) 학위를 받았다. 베스트셀러가 된 콕스의 이 책은 하나님은 죽었다신학이 분명하게 주장하는 일련의 핵심(核心) 신념들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세속화(世俗化)는 지금도 진행(進行)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이 시대(時代)를 이해(理解)하고 이 시대(時代)와 교통(交通)하려 한다면, 끝까지 세속성(世俗性)을 띠게 될 이 시대(時代)를 사랑할 방법(方法)을 배워야 한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가 말한 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세상의 방식으로 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종교색(宗敎色)을 배제한 채 성경(聖經)이 말하는 개념을 해석(解釋)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장 과격(過激)한 신의 죽음의 신학자(神學者)는 알타이저(Altizer)였다. 알타이저(Altizer)는 초월적(超越的)이면서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은 죽었다고 선언(宣言)함으로써 하나님의 죽음을 역사적인 사실로 간주했다. 알타이저(Altizer)가 주장한 하나님의 죽음은 기독교(基督敎)의 하나님이 실제(實際)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타이저(Altizer)는 하나님의 죽음에 대한 성서적 근거(根據)를 빌립보서 25절 이하에 나타난 바울의 케노시스(kenosis, 자기비움) 개념에서 찾았다. 그는 하나님의 죽음이 성육신(聖肉身) 사건 속에서 일어났다고 보았다.알타이저(Altizer)'전통적(傳統的)인 하나님은 십자가(十字架) 사건에서 실제(實際)로 죽었으며, 따라서 전통적(傳統的) 신관(神觀)은 무가치(無價値)하다'고 주장했고, 해밀턴(Hamilton)'하나님의 속박에서 인간을 자유(自由)케 하며 인간의 책임과 행위를 완전히 가능하게 하기 위해 신()은 죽어야 한다'고 했다.

알타이저(Altizer)는 성육신(聖肉身)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인간이 된 것’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것으로 해석했다. 하나님의 죽음이 곧 성육신의 의미이다. 그것은 케노시스(kenosis)의 과정이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완전히 비어지고 완전히 인간이 된 사건이었다. 알타이저(Altizer)는 초월자(超越者)로서의 하나님은 죽었지만, 내재자로서의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성육신(聖肉身) 사건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보았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同一)하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은 철저하게 세속화 인간화(人間化), 내재(內在)화 되었다. 알타이저(Altizer)는 하나님의 자리에 예수를 대치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가 전통적으로 말하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신성(神聖)이 완전히 비어 완전(完全)히 인간이 되었다. 성령(聖靈)과 신적인 요소가 제거된 그리스도, 즉 하나님 없는 그리스도였다. 한편 그는 기독교(基督敎)와 신학(神學)을 해체하고 다른 종교의 장점(長點)을 도입한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그는 기독교(基督敎)의 종말론적(終末論的) 신앙(信仰)을 불교(佛敎)의 열반(涅槃)과 접목시키려 했다. 따라서 예수와 부처, 하나님의 나라와 열반을 동일시했다.

그는 불교사상(佛敎思想)과 엘리아드(Mirce a Eliade)의 종교(宗敎) 현상학(現象學) 및 니이체의 허무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가 1966년에 로체스터 신학교 교수 해밀톤(Hamilton)과 함께 저술한 급진신학(急進神學)과 하나님의 죽음 (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 God)은 미국 개신교(改新敎)에 급진신학(急進神學)의 출현(出現)을 알린 최초의 책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급진신학을 개신교의 현대적인 발전으로 정의하고 무신론(無神論)의 관점을 기독교에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초월적(超越的)이며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이 우리의 시대. 역사 및 현존(現存)에서 죽었다고 선언(宣言)함으로써 하나님의 죽음을 역사적(歷史的)인 사실로 간주했다. 하나님의 죽음은 재생이나 부활이 가능한 일시적인 것이 아닌, 역사(歷史) 안에 다시 나타날 수 없는 최종적(最終的)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예수를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基督敎)의 전통적인 하나님을 전적(全的)으로 무가치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예수는 우주적(宇宙的) 원리로서의 그리스도가 아닌, 역사적 예수였다. 성령과 신적인 요소가 제거된 그리스도, 즉 하나님 없는 그리스도였다. 한편 그는 기독교와 그 신학을 해체(解體)하고 다른 종교의 장점을 도입(導入)한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기독교의 천국과 불교의 열반을 동일시했다.

이와 같이, 알타이저(Altizer)가 기성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부인한데 반해, 해밀톤(Hamilton), 반 뷰렌(Van Buren) 및 바하니안(W. Vahanian)은 하나님을 부정하면 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기독교, 즉 하나님 없는 기독교를 인정했다.

미국에서 신의 죽음의 신학운동(神學運動)을 주도한 또 다른 사람이 해밀톤(Hamilton)이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죽었다. 이는 하나님 체험(體驗)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존재(存在)하지 않는다는 체험(體驗)을 말한다. 인간은 성인이 된 까닭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 부탁드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비록 초월자(超越者) 하나님은 죽었지만 예수는 살아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매인 사람, 그리스도가 복종(服從)했듯이 그에게 복종하는 사람이다.

해밀톤(Hamilton)이 하나님 부재의 상황에서 찾은 하나님은 인간 예수였다. 예수는 윤리적 이상이며 타자(他者)를 위한 인간이었다. 해밀톤(Hamilton)은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는 한편, 인간 예수에 대한 충성(忠誠)과 복종(服從)을 자신의 신학적(神學的) 메시지의 중심으로 삼았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교훈(敎訓)을 중심으로 한 윤리적(倫理的) 기독교를 주장했다.

해밀톤(Hamilton)은 현대인(現代人)은 하나님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없다고 보았다. 초월적인 하나님은 죽었을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을 인정(認定)할 힘마저 말라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신의 죽음의 선언을 세속주의(世俗主義)의 본질인 무신론(無神論)을 원인으로 하여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체험(體驗)한 결과(結果)로 나타난 운명의 힘에 대한 반항으로 해석했다. 그는 예수를 세상의 주()로 인정하는 것이 신학이라고 정의했다. 하나님은 죽었지만 예수는 살아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敎訓)을 중심(中心)으로한 윤리적 기독교를 주장했다.

성공회(聖公會, Anglicanism, Episcopal Church) 목사요 바르트(Karl Barth) 학자(學者)인 반 뷰렌(Van Buren) 역시 하나님 없이 그리스도교를 재형성하려 한 신학자(神學者)였다. 그는 언어(言語) 분석(分析)을 통해 하나님이란 말을 죽은 언어로 규정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의미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인(現代人)에게 존재할 수 없는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세계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오해(誤解)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역사적 예수를 발견하여 복음을 세속적(世俗的)으로 이해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기독교 신학을 전개하려고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셨던 인간 예수에 근거하여 유신론적(有神論的) 형태가 아닌 휴머니즘적 형태의 기독교 신학(神學) 형성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반 뷰렌(Van Buren)은 접근 방법에서 다른 신의 죽음의 신학자들과 구별된다. 그는 복음의 세속적 의미(The Secular Meaning of the Gospel, 1963)에서 본회퍼(Bonhoeffer)가 제기한 문제점을 언어 분석철학(分析哲學)을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즉 언어분석(言語分析)을 통해 하나님이란 말을 죽은 언어(言語)로 규정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의미를 상실(喪失)했을 뿐 아니라, 현대인(現代人)에게 존재할 수 없는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세계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오해(誤解)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역사적 예수를 발견하여 복음을 세속적(世俗的)으로 이해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기독교 신학을 전개하려고 했다. 즉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셨던 인간 예수에 근거하여 유신론적(有神論的) 형태가 아닌 인도주의적(人道主義的, Humanism) 형태(形態)의 기독교 신학(神學) 형성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바하니안(W. Vahanian)'신은 인간적(人間的) 언어로 알려진 신이니만큼 그것은 근본적(根本的)으로 우상(偶像)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는 무신론(無神論)을 미국의 대중(大衆)의 삶의 방법이라 말했다. 바하니안(W. Vahanian)은 알타이저(Altizer)나 해밀톤(Hamilton) 보다 완곡(婉曲, Euphemistically)하게 하나님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는 신의 죽음(The Death of God, 1961) 과 다른 신은 없다(No Other God, 1966) 에서 현대(現代)를 기독교가 종교적(宗敎的)으로나 문화적(文化的)으로 사멸한 기독교 이후 시대라고 했다. 이 시대에 기독교(基督敎)가 물려줄 유일한 유산은 기독교의 자기 무효화밖에 없다고 하면서 그는 과학(科學)과 기술(技術)로 기독교를 대체하려 했다.

'초월적(超越的) 실체(實體)인 하나님과 관계를 갖거나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不可能)하기에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언어적(言語的)으로 무의미(無意味)하다'고 주장한 반 뷰렌(Van Buren)은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제시한 세상에 대한 분석(分析)을 받아들여 초월적(超越的)인 절대자(絶對者) 하나님의 경험의 가능성을 철저(徹底)히 부인한다. 현대는 절대자의 해체(解體)의 시기(時機)라고 반 뷰렌(Van Buren)은 말한다. 하나님에 관한 언어는 무의미(無意味)하고 오래를 불러일으키는 담화(談話)일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기독교(基督敎)는 자유를 전수시키는 한 탁월(卓越)한 자유인 즉 예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제기한 세속성(世俗性)이라는 신학의 논제(論題)는 책임적(責任的) 존재(存在)로서 인간이 고난 가운데서 그 고난에 동참(同參)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예언자적(豫言者的) 목소리였다면, 사신신학자(死神神學者)들의 논제는 기독교(基督敎)에서 초월성(超越性)을 제거하고 자유라는 삶의 방식(方式)으로 기독교를 축소(縮小)시킨 잘못을 범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참된 자유(自由)는 오히려 인간의 질서를 넘어서는 초월적(超越的)인 전능자(全能者)로부터 오는 은총(恩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우주의 포기(抛棄) 가능성(可能性)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신신학(死神神學)의 흐름은 많은 논쟁(論爭)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러한 논쟁은 J.L.아이스와 J.J.캐리가 공동 편집한 신 죽음에 관한 논쟁(The 'Death of God' Debate, 1967)T.w.오글레트리가 저술한 신 죽음 논쟁(The 'Death of God' Controversy, 1966)등에 잘 표현되어 있다. 결국 1960년대 미국의 신학계(神學界)를 잠시 휩쓴 신학사조(神學思潮)로써 한 때 풍미(風味)했던 하나의 신학사조(神學思潮)로 그치고 만 셈이다. 1970년대에 들어 '하나님의 죽음'이라는 용어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는데, 결국 사신신학(死神神學)은 이러한 흐름의 신학은 1970년대에 들어서 더 이상 발전적(發展的)으로 전개(展開)되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신의 죽음의 신학(神學)은 하나님 상실(喪失)의 경험과 역사적(歷史的) 예수에 대한 재발견(再發見)을 토대로 현대(現代) 미국의 낙관주의적(樂觀主義的)인 사고(思考)에 의해 인간의 문제(問題)를 하나님이 아닌 세계를 무조건적(無條件的)으로 신뢰(信賴)함으로써 해결하려한 급진적(急進的)인 신학운동(神學運動)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욕구(欲求) 충족자와 문제 해결자(解決者)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계(世界)를 믿는다. 신의 죽음의 신학자(神學者)들의 핵심적(核心的)인 주장은 다음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독교 전통적인 초월자(超越者)와 창조주(創造主)로서의 하나님은 죽었으며,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둘째, 하나님의 죽음은 또한 전통적(傳統的)인 기독교의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의 윤리적(倫理的)인 교훈에 근거하여 새로운 윤리종교(倫理宗敎)로서 기독교를 재조직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경험적(經驗的) 사실의 배후에 있는 초경험적(超經驗的)인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반면, 인간(人間)의 이성(理性)과 경험(經驗)에 신뢰성(信賴性)을 두려는 실증주의적(實證主義的)인 태도(態度)로 부터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