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基督敎綱要,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는 개신교(改新敎) 신앙에 대한 조직적(組織的)인 해설이요, 개혁(改革) 전통(傳統)의 근본(根本) 문서(文書)이다. 또한 이 책은 칼빈신학(Calvin Theology)을 연구하는 주된 자료이다. 칼빈(Calvin)은 그의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가 당시(當時)의 어려운 시기(時期)에 그리스도인(Christian)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실제적(實際的)인 안내서(案內書)가 되기를 원했다.

기독교(基督敎) 세계(世界)에 파란을 가져왔던 종교개혁(宗敎改革)에 큰 사상적(思想的)인 영향(影響)을 미쳤으며 지금의 개신교계(改新敎界)에서도 그 영향력(影響力)이 상당히 남아있다. 1536년에 6장으로 구성된 라틴어(Latin) 초판(初版)을 시작으로, 1539년에 17장으로 늘어난 증보(增補)판을 라틴어(Latin), 1541년에는 다시 칼빈(Calvin)의 모어(母語)인 프랑스어(French)로 출판하였으며, 1543년에는 다시 21장으로 늘어난 증보판을 출판했으며, 1550년에는 약간의 내용을 보충하는 정도의 증보판(Supplement)을 출판(出版)하였고, 최종(最終)판은 1559년판(라틴어(Latin))1560년판(프랑스어, French version)이다. 영어판(English version)1561년 나왔고, 독일어판(German version) 1572, 에스파냐어판(Spanish Edition)1597년 나왔다.

칼빈(Calvin)은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를 통하여 단순히 기독교의 핵심(核心) 진리(眞理)를 요약하고 교리화(敎理化)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의 저작의 동기(動機) 속에서는 경건(敬虔)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聖經)을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이런 그의 목적(目的)은 그 삶의 정황(情況)에서 나왔다. 칼빈(Calvin)이 보기에 그의 고향(故鄕) 프랑스는 로마 가톨릭 교회(France in the Roman Catholic Church)에 의해 모든 사회(社會)가 어두워져서 진리(眞理)를 떠나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을 알지 못했다고 여겨졌으므로, 칼빈(Calvin)은 참된 경건(敬虔)의 삶을 살지 못한 자들을 돕기 위하여 이 책을 통하여 자신의 사랑의 외침이 들어 있다. 이 작품(作品)에서 칼빈(Calvin)은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지혜(智慧)를 강조(强調)하면서도 하나님과 인간자신(人間自身)을 아는 것(Knowing God and the human self)이 참된 지혜(智慧)이라고 하며, 참된 복음의 진리(眞理)를 확신하고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회(社會)와 국가(國家)를 변혁(變革)시키기를 바라는 강한 열정(熱情)을 보여준다.

 

1. 저술(著述) 배경(背景, Writing background)

 

1517년 독일(獨逸)에서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일어났을 때 프랑소아 1세는 내심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프랑스(France)에서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환영(幻影)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독일(獨逸)의 경우처럼 프랑스(France)가 종교적(宗敎的)인 문제로 인하여 정치적(政治的) 분열(分裂)까지 맞게 될 염려(念慮)가 있었기 때문이다. 1520년대 초 프랑스(France)에는 모(Meaus) 그룹이라는 인문주의적(人文主義的) 종교개혁(宗敎改革)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문주의적(人文主義的) 종교개혁(宗敎改革)이란 고전(古典)연구와 원어(原語) 연구(硏究)를 기반으로 하여 성직자(聖職者)들의 지적 수준(水準)을 향상(向上)시킴으로써 장기적(長期的)으로는 교회 내의 비리(非理)를 척결(剔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되 독일(獨逸)의 종교개혁(宗敎改革)과는 달리 로마교회(Roman Catholic Church)와의 단절(斷絶)은 추구하지 않는 교회(敎會) 개혁운동(改革運動)을 말한다. 이 그룹을 모 그룹이라 한 것은 프랑스 파리(France Paris) 동쪽에 위치한 도시인 모(Meaux)의 주교 기욤 브리소네(Guillaume Briconnet, 1470-1534)가 이 그룹의 중심인물(中心人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 그룹에 속하는 사람 가운데는 르페브르(Lefevre d'Etaples, 1450-1536)와 파렐(Guillaume Farel, 1489-1565)이 유명하다. 르페브르(Lefevre)는 프랑스(Frances)의 종교개혁자(宗敎改革者)요 인문주의자(人文主義者)였다. 그는 1523년에 신약성경(新約聖經)을 번역하였고 후에 구약성경(舊約聖經)과 외경(外經, ‘아포크뤼파(Apocrypha)’숨겨진이란 뜻)을 번역하였다(1528). 이것은 1530년에 함께 출간되었다(Antwerp Bible). 이 번역이 비록 라틴어역(벌게이트)에 가깝기는 하지만 그 후의 번역을 위한 기초가 되었다. 1521년 르페브르(Lefevre)는 소르본느 대학(Sorbonne University) 박사들로부터 이단 선고를 받았다. 그들은 르페브르(Lefevre)의 작품들을 정죄했다.

사도 바울의 서신 주석 에서 르페브르(Lefevre)는 의 칭의(稱義)교리 (敎理, Luther's doctrine of justification)를 기대하면서 개혁(改革)을 소망(所望)하고 있었다. 르페브르(Lefevre)가 번역한 신약성경(新約聖經)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프랑스의 프랑소아(Francois of France) 1세는 집권 초기에 이 모 그룹에 대하여 관용을 베풀었다.) 그의 여동생인 나바라(Navarra) 왕비 마르가레뜨는 모 그룹을 음양(陰陽)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15252월 파비아(Pavia)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스페인군에 패배하고, 프랑소아(Francois) 1세가 포로가 되는 굴욕을 당하게 되었다. 그 후 프랑소아(Francois) 1세는 국력 신장을 위해 국민적(國民的) 통합(統合)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 종교적(宗敎的) 통합(統合)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종교의 통합은 전통적 종교인 카톨릭을 중심으로 해야 할 것으로 믿었다. 그리하여 개신교(改新敎)에 대한 억압정책(抑壓政策)을 개시하게 되고, 모 그룹도 프로테스탄트로 취급하여 박해(迫害)를 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수많은 개신교도(改新敎徒)들이 순교(殉敎)하였고 혹은 국외(國外)로 망명하게 되었다.

칼빈(Calvin)이 바젤로 망명한 것도 프랑소아 1세 때의 일이었다(1534). 1525년 이후 프랑스(France) 내에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종교개혁운동(宗敎改革運動)은 침체(沈滯)를 면치 못하였다. 프랑스(France)의 종교개혁(宗敎改革)은 칼빈(Calvin)이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 를 출판하던 해인 1536년부터 매우 빠른 속도(速度)로 확산(擴散)되어 갔다. 칼빈(Calvin)은 프랑스 종교개혁(宗敎改革)의 사실상(事實上) 지도자(指導者)였다. 그가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 초판(初版)을 저작(著作)하게 된 것도 프랑스(France)에서의 개신교도(改新敎徒) 박해 때문이었다.

칼빈(Calvin)은 같은 신앙(信仰)을 가진 형제(兄弟) 자매(姉妹)들이 잔인(殘忍)한 박해를 받는 것을 차마 그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들을 변호(辯護)하기 위해 그는 조용한 바젤 시에서 붓을 들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사상(基督敎史上) 가장 유명(有名)한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가 되었다. 기독교강요(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 초판은 15364월 스위스 바젤에서 출판되었다. 당시 칼빈(Calvin)의 나이는 27세였다. 이 책은 기독교(基督敎) 문헌(文獻) 중 가장 귀중(貴重)하고 영원히 남아야 할 책으로 지적(知的)이며 영적(靈的)인 깊이와 능력을 소유한 조숙한 천재(天才)의 걸작(傑作)이다.

칼빈(Calvin)은 개혁파(改革派) 교회의 아리스토텔레스 혹은 신교의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불리었다(It was called Aristotle of the Reformed Church or Thomas Aquinas of Protestantism). 복음주의자(福音主義者)들은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의 출현을 열광적(熱狂的)으로 환영하며, 사도시대 이후 가장 명석하고 가장 논리적(論理的)이며 가장 확신에 넘치는 기독교 교리(敎理)의 변호라고 예찬(禮讚)하였다.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가 유럽의 종교개혁(宗敎改革)에 미친 영향이야말로 지대(至大)한 것이었다. 이 책이 출판된 지 몇 주 후에 부처(Bucer)는 칼빈(Calvin)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귀하를 그의 종으로 택하셔서, 가장 부요(富饒)한 은혜(恩惠)를 교회에게 전달하도록 하셨습니다."

칼빈(Calvin)이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를 출판하기 전에, 프랑스(France)에서는 소위 <벽보(壁報) 사건(事件)>이 있었다. , 15341017일 밤에 미사를 반대(反對)하는 내용의 벽보(壁報)가 파리 시내 여러 곳에 붙여졌다. 이 벽보를 작성한 사람은 느카텔 교회(Necatel Church)의 목사 앙트완느 마르코르트(Antoine Marcourt)였다.

다음 날 아침, 파리 시민들(Paris citizens)은 자기들의 집과 공공건물(公共建物)과 교회(敎會)에 벽보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대담한 전단(傳單)을 뿌린 자들은 왕의 침실까지 들어가서 왕의 식탁(食卓)용 냅킨이 놓여있는 그릇에다 그 전단을 한 장 놓고 갔다. 화가 난 프랑소아(Francois)는 뚜르농(Tournon)의 추기경(樞機卿) 및 다른 성직자(聖職者)들과 상의한 후 가혹(苛酷)한 조처(措處)를 취했다. 박해(迫害)는 무차별적(無差別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투옥(投獄)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화형(火刑)을 당했다. 교묘(巧妙)하고 야만적(野蠻的)인 고문(拷問)들이 개발(開發)되었고, 그 중에는 사람을 간헐적(間歇的)으로 불에 굽는 기계(機械)인 에스트라파데(The estrapade)도 있었다. 희생자 중에는 칼빈(Calvin)의 친구도 있었다. 그의 친구 파리(Paris)의 상인이며 삐에옹 출신의 왈도파 교인이었던 에띠엔느 드 라 포즈(Etienne de la Forge)1535215일에 화형(火刑)을 당하였다. 바로 이러한 박해(迫害)를 배경으로 하여 칼빈(Calvin)의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가 출판된 것이다. 그 책이 나왔을 때 개신교도(改新敎徒)들은 자기들의 신앙(信仰)에 대한 논리적(論理的)인 설명서(A reasoned exposition of their faith)를 가지게 되었다.

 

2.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의 내용(Contents)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종교개혁자(宗敎改革者)1세로서 개신교(改新敎)의 근거(根據)를 내린 사람이라면, 존 칼빈(John Calvin)은 그 근거에 성경의 내용으로 더욱 명확히 하고 체계적(體系的)으로 정리한 사람이다. 그의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는 당시 로마 가톨릭의 그릇된 교리를 바로잡고 개신교(改新敎)의 신학(神學)을 성경적으로 잡아나가는 과정에서 성직자(聖職者), 신학도(神學徒) 그리고 성도(聖徒)들에게 경건을 촉구하고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體系的)으로 기술(記述)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하여 칼빈(Calvin)은 교리적(敎理的)으로 변증적(辨證的)이고 체계적(體系的)이면서도 성도들의 실제적(實際的) 삶 가운데 유익(有益)을 주고, 목회(牧會)에도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칼빈(Calvin)의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에 나타난 그의 신학적(神學的) 특징(特徵)은 다음과 같다.

 

1) 성경의 절대적 권위 인정(Recognizing the absolute authority of the Bible)

칼빈(Calvin) 을 포함한 모든 종교개혁자(宗敎改革者)들은 성경의 권위(權威)를 개혁운동(改革運動)의 핵심(核心)으로 보았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의 교황(敎皇)과 교회조직(敎會組織) 중심(中心)의 권위(權威) 체제(體制)를 무너뜨리는 필수적(必須的)인 요소였다. 성경이 근거(根據)가 되어 교회가 그 위에 서는 것이지, 교회가 근거가 되어 성경이 그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권위(權威)의 우선(優先)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이 계신 성경(聖經)이 바로 그 권위의 표시(標示)라는 것이다(The priority of authority is God and Jesus Christ, and the Bible of God is the sign of that authority).

칼빈(Calvin)은 루터(Luther)와 마찬가지로 교회 중심적(中心的)이고 교회직분(敎會職分)의 권위체제(權威體制) 아래 있는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의 권위체제(權威體制)를 거부(拒否)했다. 또 한편으로는 재세례파(再洗禮派)의 입장인 성령(聖靈)을 통한 직접계시(直接啓示)를 반대(反對)하여, 성경의 권위(權威)와 성경을 통한 하나님 계시(啓示)의 객관성(客觀性)을 중시하였다.

칼빈(Calvin)은 설교자 곧 목회자(牧會者)는 성경에 없는 그 무엇도 성도의 예배와 삶에서 강요(强要)하지 말 것을 가르쳤으며, 만일 이것을 어긴다면 그 목회자는 하나님이 죽으심으로 주신 성도(聖徒)의 자유(自由)를 침해(侵害)하는 악한 죄()를 범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2) 예배의 설교 중심성(Sermon Centrality of Worship)

말씀의 절대적(絶對的) 권위(權威)는 예배의 설교(說敎) 중심성(中心性)을 자연(自然)스럽게 초래(招來)한다. 강단(講壇)에서 흘러나오는 설교도 성경중심(聖經中心)으로 해석(解釋)하고 이해(理解)하고 그리고 전달(傳達)된다. 칼빈(Calvin)의 설교는 당시 종교개혁자(宗敎改革者)들의 추세(趨勢)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각 책을 1장부터 순서적(順序的)으로 강해(講解)하는 강해설교(講解說敎)였다. 본문(本文, text)을 설명(說明)하며 그것을 당시(當時, At that time, Contemporary)의 상황(狀況, Context)에 적용(適用)하는 간단한 방법(方法)이었다. 그는 설교를 인위적(人爲的)으로 흥미(興味)있게, 또는 자극적(刺戟的)으로 전달(傳達)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의 심령(心靈)을 꿰뚫는 능력(能力)이 있기 때문에 단순(單純)하고 직접적(直接的)인 설교(說敎)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Sharper than any double-edged sword, it penetrates even to dividing soul(yuchv) and spirit(pneu'ma), joints and marrow; it judg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heart(4:12).”

 

3) 하나님 중심적 구원론(God-Centered Salvation)

교리적(敎理的)으로 칼빈(Calvin)은 구원론(救援論)에 심혈(心血)을 기울였다. 당시의 상황(狀況)으로 보아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의 구원론(救援論)은 물론 잘못되었고, 일부 개신교(改新敎)의 구원론(救援論)의 가르침 가운데도 문제(問題)가 있었다. 성경을 근거(根據)로 구원론(救援論)의 신학(神學)을 정리(整理)하는 칼빈(Calvin)에게 있어서 일관성(一貫性)있는 신학은 매우 중요(重要)했다.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는 교회(敎會)를 위하여 이 구원론(救援論)을 정립(定立)하기 위한 신학적(神學的)이고 교리적(敎理的)인 작업(作業)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의 사역, 구속주(救贖主) 하나님의 사역, 성령(聖靈)하나님의 사역, 그리고 교회(敎會)의 사역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구원(救援)을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의 사역(使役)을 정리(整理)한 것이다.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에서 칼빈(Calvin)은 이외의 여러 분야에 대한 신학적(神學的)이고 교리적(敎理的)인 작업을 했다. 오늘날 조직신학(組織神學)의 거의 모든 주제(主題)들이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에 총망라(總網羅) 되어있다.

 

4) 하나님 주권 사상의 절대화(The absolutization of God's Sovereignty)

칼빈(Calvin)에게는 '하나님의 주권사상(主權思想)'하나님의 영광사상(榮光思想)'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체적(全體的)인 지배(支配)와 통치(統治)를 의미하며, 인간에게는 삶의 모든 영역(領域)이 하나님의 주권(主權) 아래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하여 존재(存在)한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Yours, O LORD, is the greatness and the power and the glory and the majesty and the splendor, for everything in heaven and earth is yours. Yours, O LORD, is the kingdom; you are exalted as head over all(대상29:11).”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 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When they heard this, they raised their voices together in prayer to God. "Sovereign Lord," they said, "you made the heaven and the earth and the sea, and everything in them(4:24).”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So whether you eat or drink or whatever you do, do it all for the glory of God(고전10:31).”

 

인간의 구원(救援)은 하나님이 이루는 것이다. 창조주(創造主)이시며, 만물(萬物)의 통치(統治) 운행자(運行者)이시고 구속주(救贖主)이신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救援)을 이루신다는 것이다(The Triune God, the Creator, the Ruler of all things and the Redeemer, accomplishes our salvation).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恩惠), 하나님의 주권(主權) 아래서 이루어지며, 궁극적(窮極的)으로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하여 존재(存在)하고 발생한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예정(豫定)하시고 부르셔서 구원(救援)하시며 거룩케 하시고 영화(榮華)롭게 하신다는 것이다(God predestinates, calls, saves, sanctifies, and glorifies). 어느 한 부분도 인간(人間)이 스스로 이루는 것이 없다. 죄행(罪行)은 물론 인간의 책임(責任)이요, 그 결과(結果)를 달게 받아야 한다.

 

5) 하나님 주권 사상의 예정론(Predestination theory of God's sovereignty)

하나님 주권 사상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예정론(豫定論)이다. 칼빈은 예정(豫定)과 유기(遺棄)를 포함하는 이중예정(二重豫定, Double predestination,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기 전에 영생을 얻을 사람과 영원히 멸망할 사람을 미리 예정하셨다는 강조된 교리 이론을 고수(固守)한다(Calvin sticks to a double schedule that includes predestination and abandonment).

칼빈(John Calvin)은 그의 첫 번째판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에서는 선택(選擇)에 대한 항목이 없었지만, 자유의지론자(自由意志論者)와의 논쟁(論爭) 중에 어거스틴의 입장을 더 강화하여 '이중예정론(二重豫定論)'을 강조하므로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 최종판에는 예정(선택(選擇)론이 칼빈의 중요한 교리(敎理)가 되었다. 그는 예정론(豫定論)'무서운'(horrible) 교리로 인정(認定)하면서 인류는 동일한 운명을 가지도록 창조되지 않았고, 태어나기 전부터 어떤 자는 영생(永生)에 어떤 자는 영멸(永滅)에 각각 예정(豫定)되었다고 설명(說明)했다. , 하나님이 구원(救援)과 멸망(滅亡)을 각각 예정하셨다는 '선택(選擇, selection)''유기(遺棄, Reprobation)''이중예정설(二重豫定說)' '무조건적(無條件的) 예정설(豫定說)'을 강조(强調)하였다.

그러나 이 예정론(豫定論)을 기계적(機械的)이고 무자비(無慈悲)한 하나님의 작정(作定)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칼빈(Calvin)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경험(經驗)하면서 생기는 질문(質問)에 대한 대답(對答)을 주기 위하여 성경적(聖經的)인 답을 찾으려는 노력(努力)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能力)이 부족(不足)해서도, 복음(福音)이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구원(救援)은 오로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뜻에 달려있는 신비(神秘)스러운 영역(領域)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내용(內容)을 완전히 이해(理解)해서도 아니고, 충분(充分)히 이해한다고 주장(主張)하는 것도 아니다.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신비(神秘)스러운 비밀(秘密)에 경이(驚異)할 뿐이고, 누가 하나님과 논쟁(論爭) 하겠는가 라고 반대자(反對者)들에게 반문(反問)할 뿐이다.

 

6) 성만찬의 신비 체험 강조(Emphasis on the Mystery Experience of the Eucharist)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를 보면 교리(敎理) 정리(整理)가 경건(敬虔)을 유발(誘發)하도록 되어있다. 사색적(思索的)이거나 철학적(哲學的)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바로 이해(理解)하기 위하여 집필(執筆)되었으며, 성경의 보조(補助) 역할(役割)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리스도와의 연합(聯合)과 교제(交際)가 구원론(救援論)의 중심(中心)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예정(豫定) 가운데 그리스도와 믿는 자들과의 신비적(神秘的) 연합(聯合)과 지속적(持續的)인 교제(交際)가 성도(聖徒)들의 영성(靈性)을 도모(圖謀)한다.

믿음을 통한 구원(救援)이란 자체(自體)가 신비(神秘)로서 우리에게 신비(神秘)스로운 체험(體驗)이 일어나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연합(聯合)하여 하나되게 함으로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죄()와 의()의 교환이 있고 그리스도의 모든 유익(有益)이 하나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칼빈(Calvin)은 성만찬(聖晩餐)을 영적 임재설(靈的 臨在說, spiritual presence)을 주장한다. 성만찬(聖晩餐)의 현장(現場)에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靈的)으로 임재(臨在) 한다는 해석이다. 그에 의하면 성례전(聖禮典)"눈에 보이는 징표(徵標)로서 우리에게 영적인 모든 일을 계시(啓示)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외부적(外部的) 증명(證明)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여러 약속(約束)을 우리 마음에 한층 더 강하게 각인(刻印)하여 우리가 그 약속을 보다 더 확실(確實)하게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주의 만찬을 논하면서 그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현존(現存)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지만, 루터파에서 발전(發展)된 그리스도의 부활성체(復活聖體) 편재설(遍在設)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성례전용(聖禮典用) 빵과 포도주를 통해 현재화(現在化)된다는 것은 거부한다. 다른 구절들에서 유추(類推)하여 이는 내 몸이라는 말씀을 문자적(文字的)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일종(一種)의 환유(換喩, Metonymy, 환유는 부분과 전체의 속성이 다르다. 사람을 바지저고리로 아느냐? (바지저고리못난 사람) 금테가 짚신을 깔본다. (금테신사, 짚신시골뜨기)로 해석(解釋)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이 하늘로 들리어 가는 것을 사람들이 보았다. 그러므로 그 몸은 현재(現在)까지도 하늘에 계시고 빵과 포도주에 갇힐 수는 없다. 그러한 것이 아니라 성례전(聖禮典)에 참예하는 자는 영적(靈的)으로 하늘로 들리어 올라가 그 몸에 참여한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몸과 피에 영적(靈的)으로 참여한다는 이 교의는 칼빈주의 교회의 특징이다. “나는 그 신비를 이해(理解)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경험 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Communion)은 성령의 은밀한 역사를 통해 가능해진다. 교회의 공동체적(共同體的) 삶에서 이 성례전(聖禮典)이 중요함을 평가하는데 칼빈을 능가하는 사람이 아직 없다. 그는 성례전(聖禮典)이 자주 행해져야 한다고 역설(力說)하며 경건한 참예자의 종교적 경험을 열렬하게 묘사(描寫)하고, 성례전에 참예함으로써 생겨나는 사랑의 띠를 그것이 갖는 사회적(社會的) 의무(義務)라는 의미와 아울러 강조한다.

 

7) 유아세례(幼兒洗禮)의 옹호(Advocacy of Infant Baptism)

칼빈(Calvin)은 세례를 다룸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것은 유아세례(幼兒洗禮)를 옹호한다. 유아세례와 관련하여 구약성서(舊約聖書)의 합법적(合法的)인 입회 성례전(聖禮典)으로서의 할례(割禮)의 역할이 특별히 강조된다. 이 외에도 칼빈(Calvin)은 가장 타당성(妥當性) 있는 신약성서(新約聖書)의 증거(證據)들을 제시한다. 그리스도께서 어린 아이들을 불러 팔에 안으시고 천국은 이와 같은 자의 것”(19:13-14)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신도(信徒)의 자녀들이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음을 부정(否定)하는 것은 곧 ()”.

세례(洗禮)가 구원의 경륜(經綸)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은 구원의식이 아니다. 그는 쯔빙글리처럼 유아기에 죽은 유아(幼兒)들은 모두 구원(救援)을 받는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아직 세례(洗禮)받지 않은 자를 그 때문에 정죄(定罪)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음을 지적한다. 전통적(傳統的) 견해(見解)인 세례 중생론(重生論)을 폐기시키면서, 칼빈(Calvin)은 어린 아이가 자신을 교회가 용납하고 교회에 입회할 것의 의미(意味)를 점차 배우고 교회의 보호와 가르침에 영향을 받을 때 은밀(隱密)한 영향력(影響力)이 그 아이의 마음 안에서 작용(作用)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유아들은 세례(洗禮)를 받고 미래(未來)의 회개(悔改)와 믿음을 성취(成就)한다.

 

8) 성화를 통한 치리권(治理權) 강화(Strengthening jurisdiction through sanctification)

칼빈 신학(Calvin Theology)의 가운데 하나가 '성화(聖化)'에 대한 강조(强調)이다. 루터(Luther)는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가 그의 신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물론 그에게도 성화(聖化)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성화(聖化)의 강조(强調)는 칼빈에게 와서 집중적(集中的)으로 연구(硏究)되었다. 칼빈(Calvin)은 칭의(稱義, Justification)와 성화(聖化m Sanctification)를 순서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둘 다 성령(聖靈) 사역(使役)의 직접적(直接的)인 결과로 보았다. 그의 제네바 사역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에 대한 대단한 관심(關心)과 추구를 보여준다. 그의 목회(牧會)는 감독(監督)들의 통해 성도들이 철저(徹底)하게 거룩한 삶을 살도록 관리했고, 교회는 치리(治理)의 중요성(重要性)을 보여주었다. 의로워진 자는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로워진 자는 거룩한 삶을 통하여 그의 의로움을 입증(立證)시켜야 한다는 것이다(One who is righteous is to prove his righteousness through holy l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