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주요 내용정리|자료………기독교자료실
봉서방 | 조회 54 |추천 1 |2019.01.31. 02:45 http://cafe.daum.net/cgsbong/21Ky/11217 

신약성경 주요 내용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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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주요 내용정리 27권, 260장

1. 신약성서 (New Testament)는 어떤 책인가?

 

A. New Covenant: 남 유다가 멸망할 때 예레미야의 예언--이것이 나와 내 백성 사이의 계약의 마지막이 아니다. 언젠가 나의 백성과 새 계약을 맺겠다. (예 31:31-33).

이 구절이 반영된 신약 구절들: 고후 3:6; 갈 4:24-26
고후 3:6이하에서 바울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대조하면서 출 34: 29-32을 강해
바리새인이었던 바울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던 모세) vs. 새언약의 직분을 받은 바울

교회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과의 계약을 갱신했다 혹은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고 처음부터 믿었음. 기독교인들은 새 계약이 옛 계약을 대체했다고 믿었지만 (히 8:6; 9:15; 12:24),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옛 계약의 책인 히브리인들의 경전을 던져버리지 않고, 자신들의 경전의 일부로 계속해서 읽었다. Heb 8:6 참조


B. 신약성경은 어떻게 기록되었는가? (기록)


--예수는 그의 생전에 자신의 가르침을 직접 기록하지 않았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종말이 곧 다가올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고전 16:22, “마라나타”), --예수의 가르침을 기록하려고 처음부터 노력하지 않았음.

서신: 그러던 중, 가장 먼저 등장한 것들은 편지들 (그 중에서도 바울서신들).
왜냐하면, 바울은 순회하는 전도자였기 때문에 자신이 설립한 교회들에 문제가 생기거나, 급히 가르침이 필요할 때마다 편지를 써서 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의 편지가 그 당시 자신이 가르치던 가르침들을 모두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 닥친 문제들을 중심으로 가르침 (가르침의 어떤 한 측면들에 국한)

60년 중반부터 1 세대 기독교인들이 죽기 시작. 그들의 가르침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시작.

복음서: 가장 먼저 씌여진 것은 마가복음(마가 복음 우선설). 대체로 60년대, 혹은 70년대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그보다 10-20년 이후로, 요한복음은 90-100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
-- 복음서들도 기록될 당시, 예수가 가르친 모든 가르침을 다 기록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임. 각각 나름대로의 관심사에 따라서 당시에 존재하던 예수에 대한 전승들 중에 취사선택하여 복음서를 작성.

 

-- 복음서의 정의

 

사도행전: 누가의 신학 (누가 복음 기록 목적 참조)
행 1:8이 전체 구조와 주제를 설명.
행 1:6-11은 주의 재림의 날이 언제인지 예수의 제자들에게 주어진 바 없으며, 전도를 통한 기독교의 확장이 하늘만을 쳐다보면서 재림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중요함을 강조. 이것은 당시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재림에서 돌려, 이제 예수의 영, 혹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계속 발전하고 퍼져나가는 것에 주목한 것을 보여줌.

공동 서신: 특정 수신자를 지칭하지 않는 흩어져 있는 교회에 보내는 서신. 실천적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서신 (ex. 야고보서)

요한계시록: 원래 유대교에 이미 묵시문학 장르가 존재. 유대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던 기독교인이 이 장르를 이용한 것. 묵시문학은 박해라는 상황에서 등장. 저자는 땅위에서 일어나는 일과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함께 설명. 이렇게 함으로 독자에게 땅위에 일어나는 박해와 같은 일들이 하나님의 통제 안에 일어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승리할 것임을 알려주어, 성도들이 박해를 견디고 신앙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줌.

 

2. 마가복음

 

A. 마가 복음 우선설 (cf. 마태 우선설)


1) 마태,누가가 마가를 참고 인용하여 자신들이 더하여 길게 쓰게된 이유는 쉽게 이해가되나 그 반대는 그렇지가 않다. ex) 산상수훈 cf. 미미하거나 의미없는 부분을 덧 붙임.
2) 마태, 마가, 누가의 자료 순서. 눅//막, but 마태는 7번 변경.
3) 마태와 누가는 마가의 세련되지 못한 문체를 다듬거나 혹은 군더더기나 잘 쓰여지지 않는 단어등을 자주 삭제하거나 고치고 있음이 목격.


B. 마가복음의 구조


마가복음은 예수의 수난을 기준으로 해서 1부와 2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예수의 수난에 관한 이야기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마가복음은 “긴 서문을 단 수난사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1부: 예수의 갈릴리 사역
1:1-3:6 세례요한의 소개, 사역의 첫째 날, 가버나움에서의 논쟁
3:7-6:6 열두 제자의 선발과 비유와 능력행함을 통한 훈련
6:7-8:26 열두 제자의 파송, 5000명 먹이심, 물위를 걸으심, 논쟁, 4000명 먹이심,
예수에 대한 오해

2부: 수난 예고와 예루살렘에서의 죽음, 부활
8:27-10:52 세 번의 수난예고, 베드로의 고백, 산상변화, 예수의 가르침들
11:1-13:37 예루살렘에서의 사역 (성전소란사건, 종말에 관한 예고)
14:1-16:8 기름부음을 받음, 최후의 만찬, 수난, 십자가, 매장, 빈무덤
16:9-20 후기 (부활한 예수의 나타나심들)

C. 주요 내용 분석


* 세례요한의 등장과 선포 (1:1-8)
1:3의 역사적 배경: 사 40:3의 인용. 이 구절은 4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고 이것은 이 구절이 당시 교회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구절이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길을 예비하고 길을 평탄하게 하는 것은 누가 오는 것을 위한 것이며 누가 길을 닦아야 하는 것일까?
원래 이사야 40:1-4의 역사적 배경: 이것은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구절이다. 이것은 성전의 파괴와 그 결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신 사건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교회는 후에 달리 해석:
길을 평탄하게 하라는 “소리”를 세례요한으로 보고, 오실 분을 예수 그리스도로 봄.

1:4 “회개의 세례”: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출 32:13-14에 근거해서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됨의 의미를 과신했다. 그들은 메시야가 왔을 때에 이방인들이 심판의 대상이 되고 자신들은 구원의 대상이 된다고 봄. 그런 유대인들을 향해서 회개하라는 요구는 매우 역설적인 것이었다.

-- 그가 광야에서 이 회개의 운동을 한 것은 조상들의 첫 가나안 땅 입성을 모방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구성되어 새롭게 가나안 입성(메시야의 통치에 들어감)을 준비하려 함.

-- 세례요한의 준비에서 나타나듯이 예수의 사역의 목적은 새롭게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내
어, 종말에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이루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기에는 새로운 하나님의 “선택”과 그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있었으며, 예수가 이룬 이 종말의 공동체는 곧 교회.

* 광야에서의 시험 (1:12-13) - * 갈릴리 전도의 시작 (1:14-20)

* 예수가 귀신들린 자를 고치심 (1:21-28)
마가는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수가 귀신을 쫓아낸 사건을 기점으로 예수의 사역을 소개.

-- 마가복음에서는 유독 예수가 병과 신체적 불구를 고치는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쫓는 일들을 한 것들이 집중적으로 소개. 예수의 선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 담당. 마가복음에서 이런 귀신을 쫓는 이적 이야기들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함께 긴밀하게 연결.

--이적을 행한 기본적인 목적은 예수께서 선포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이 땅위에서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기(demonstrate) 위한 것이었다. 마가복음에서는 특히 축사의 이적기사와 예수의 선포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 예수의 비밀명령 (1:34)
예수는 귀신들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을 금하셨다.
1) 예수가 메시야 였다.
2) 사람들은 몰랐으나, 초인간적인 감지능력을 갖고 있던 자들을 모두 이 사실을 인정하였다. 또 가까이에서 예수를 모신 제자들은 그것을 알고 고백했다.

* 마가의 샌드위치 기법 1 (3:20-21/3:22-30/3:31-35)

1) 먼저 예수의 친족이 찾아옴. 그들은 “예수가 미쳤다”는 말을 듣고 예수를 데리러 옴
2) 마가는 서기관들이 예수가 “바알세불이지폈다”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주장. 예수의 반박. 예수는 이것을 “성령을 훼방하는 죄”로 규정. 왜냐하면, 예수가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사역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사탄의 일로 규정하므로.
3) 다시 예수의 가족이 찾아온 이야기로 돌아감.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예수에 대한 오해가 어느 정도 심각했는지 그의 가족조차도 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에 빠졌음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샌드위치 기법.

* 마가의 샌드위치 기법 2 (5:21-24/5:25-34/5:35-43)

1) 5:21-24, 회당장 야이로가 딸을 구해줄 것을 청함
2) 5:25-34, 혈류증 앓는 여자를 고쳐주심.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심.
3) 5:35-43, 딸이 죽었다고 말하나 예수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심.

이것은 예수의 이적이 인간의 반응없이 기계적으로 수행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예수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 은혜로 주어짐을 보여주기 위해 이 두 이야기를 샌드위치로 만듬.

* 예수가 고향에서 배척당함 (6:1-6)

* 마가의 샌드위치 기법 3 (6:7-13/6:14-29/6:30-32)

1) 6:7-13, 열두 제자의 파견 이것은 복음을 위해 파송당한 제자들의
2) 6:14-29, 세례요한을 헤롯이 죽임 장래의 운명이 세례요한의 운명과
3) 6:30-33, 파견된 제자들이 돌아옴 다름이 없을 것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

* 5000명을 먹이심과 물위를 걸으심 (6:34-52)

--출애굽 때 광야에서 만나로 이스라엘을 먹이신 것과 홍해를 걸어서 건너게 한 것을 연상.예수를 “양식 주시는 분”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이것은 곧 그가 하나님의 대행자임을 보여 줌.

* 정결법에 대한 논쟁 (7:1-23): 유대교와 기독교의 극명한 차이점

* 벳새다에서 소경을 고치심 (8:22-26)

* 베드로의 고백과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8:27-9:1)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은 큰 발전이었으나, 제자들은 아직 예수를 수난의 메시야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유대교 안에서 수난당하여 죽음을 당하는 메시야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가 처음으로 자신의 수난을 예고했을 때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꾸짖은” 이유이다 (막 8:32). 베드로의 주장을 사탄의 뜻과 동일시.

*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11:1-11)
예수가 환영받은 것은 “다윗의 나라”를 회복할 정치적인 메시야로서 환영받았음을 보여준다. 당시의 대중들은 예수가 어떤 종류의 메시야인지 오해하고 있었다.

* 마가의 샌드위치 기법 4 (11:12-14/11:15-19/11:20-25)

* 마가의 샌드위치 기법 5 (14:1-2/14:3-9/14:10-11)
1) 14:1-2,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잡을 궁리를 함.
2) 14:3-9, 어떤 여자가 예수에게 향유를 부음
3) 14:10-11, 유다가 배반을 약속함.
예수의 죽음과 장사를 예시하면서, 이것이 그의 제자의 배반과 연결해서 설명하려는 시도.

* 제자들과 한 청년의 도망 (14:50-51)
* 빌라도의 심문 (15:1-20)
예수가 빌라도의 심문에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하심.

*처형, 죽음, 매장 (15:20-47)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이 생전에 예수가 주장한 모든 것이 옳다고 인정하여 주신 것 (vindication).

* 부활 (16:1-8)
여자들은 증거의 능력이 없으므로 증인이 되지못함에도 불구하고 마가가 여자를 증인으로 삼은것은 곧 성경의 역사적 신실성을 증명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누가복음

 

A. 누가복음 기록 목적
누가가 어떤 상황속에서 어떤 필요를 충족시키려고, 어떤 목적으로 복음서를 썼는가? 그 청중은 어떤 사람들인가?
i) 예수의 재림이 늦어짐에 따라, 승귀한 그리스도가 교회와 함께 하고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썼다.

ii)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명하기 위해 썼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에 따라 승귀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잘 이끌어 감을 강조함. (이방인, 보편 주의)

그래서

a) 누가 복음에 성령에 대한 강조가 나타난다.
다른 복음서보다 성령에 대한 강조가 강하다. 예수의 사역이 성령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사도행전에 특히 더 그렇다). 예수 스스로가 성령을 힘입은 자로 그의 사도들도 예수의 일을 계속하는 것으로 그린다. 성령은 예수의 alter ego 로서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보여준다.
b) 현재에 완성된 구원의 강조가 나타난다.
구원이 현재에 완성되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오늘”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2:11; 4:21; 5:26; 13:32-33; 19:5-9; 19:42; 23:42-43) 구약의 약속이 현재적으로 성취됨이 강조되고 있다.
c) 예루살렘이 구원사의 중심으로 나타남. (cf. 행 1:8 => 이방 선교)
i) 사도행전에서도 예루살렘 교회가 구원사의 중심으로 나타난다.
ii) 심지어 바울도 예루살렘교회에 종속되어 선교여행후 반드시 그곳으로 돌아왔음을 보임.
iii) 사도행전 뒷부분은 로마를 향한 끊임없는 바울의 여행기록으로 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예루살렘이 중심이다.
iv) 선교 목적지인 로마보다 예루살렘이 더 중요한 것은 구원사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4. 요한 복음

 

A. 공관 복음서와의 차이점

관점의 차이: 공관 복음(특히 마가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갈릴리 선교를 시작하여 11:1에 이르기 까지 예루살렘에 가지도 않으시며 불과 일주일후에 십자가 죽임을 당하신다. 반면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선교를 시작하며 갈릴리보다는 이 지역에서 시간을 보내신다. 적어도 세 번 예루살렘을 방문 (2:13, 5:1, 7:10): 사역기간도 2-3년.
-- 1:1 (Jesus = God)
--공관 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의 의미에 대해서 공개적인 선언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의 가르침은 하나님에 초점을 두고 있다. 반면 요한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한 주장을 거듭 밝힌다. ex. I am ... "나는 ...이다” 6:35, 8:12, 10:9, 10:11, 11:25, 14:6, 15:1 cf. 8;24, 28, 58; 13:19; 18:5). 이는 출 3:14의 야훼 하나님의 어투와 비슷하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신성 모독으로 돌에 맞아 죽을 죄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8:58-59).


B. 요한 복음서에 나타난 유대인들


C. 복음서의 결론 (20:30-31): 집필의 목적

D. 7개의 표적들

2:1-12:50에서 요한은 일곱개의 예수의 이적들을 서술한다.
1) 물을 포도주로 (2:1-11)

2) 왕의 신하의 아들고침 (4:46-50)

3) 베데스다 연못 (5:1-15)

4) 오천명 먹임 (6:1-15)

5) 물위 걸음 (6:16-21)

6) 소경보게 함 (9:5)

7) 나사로 부활 (11장)
마지막 표적--예수는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나타나는데, 그가 주는 생명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주어짐이 나타남.

*** 이 이적들은 윗 세상의 것을 아래 세상에 예시해 주는 것으로 이적(표적)이다. 이 이적들에 대해 유대인들의 오해가 일어난다. 이들은 아래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윗 세상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계시한 바를 아랫 세상의 관점으로 해석을 하고 판단을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늘 오해한다. 예수는 긴 강론으로 자신이 일으킨 사건들이 아래 세상의 현상이지만, 윗 세상의 어떠한 진리를 표시하는 이적인지를 해설한다. 예수는 생명 혹은 영생을 예시하여 준다. 이런 이적은 그러므로 표적(semeia)이다.

 

5. 로마서

 

(기록 목적)

로마서는 바울 서신 연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리 연구에 있어서도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서신으로 자리매김하여 오고 있다. 이렇듯 중요한 기독교 교리를 담고 있는 서신인 로마서는 바울이 개척하지도 않았고 왕래도 거의 없었던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보내어진 서신임을 고려할 때 특이하다고 할 수가 있다. 자신이 개척하지도 않은 교회의 교인들에게 16장에 걸친 장문의 서신을 쓰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교인들에게 기독교 교리의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는 교리 서신을 쓰고 있는 것이 특이한 일이다. 자신과는 별다른 유대 관계가 없는 생면 부지의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바울은 일반적인 안부와 자신을 소개하는 정도로 서신을 기록했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도, 왜 바울은 자신이 개척하지도 않은 로마 교회에 중요한 기독교 교리를 담고 있는 서신을 써야 했었을까?
로마서의 기록 동기에 대해서 바울은 15:19-24에서 피력하고 있는데 그 주된 내용은 이제까지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통하여 지중해 동부에서의 선교를 마치고 당시의 로마 사회에서 세상의 끝으로 알려진 지중해 서부--서바나(스페인)--선교를 앞두고 자신의 복음을 소개하여 로마 교회의 도움과 지원을 얻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서바나로 가는 길에 로마에 들러서 교회를 방문하여 친교도 나누고 선교 후원도 받기 위하여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가 있다. 이제까지 바울은 안디옥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아 동부에서의 선교를 하여 왔으나 이제는 제국 서부에로의 선교를 시작하려는 중대한 전환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바나 선교를 위해서 로마 교회의 후원을 염두에 두고서 서신을 써야 하였다면 로마서는 바울 자신에 대한 소개와 서바나 선교의 필연성을 역설할 것이지 왜 신학적 논쟁으로 일관하고 있나에 대한 설명으로서 선교 후원의 동기는 미약해 보인다. 로마서를 기록한 이유나 동기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나름대로 상이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말미암는다고 할 수가 있다. 학자들의 견해는 로마서의 기록 목적은 15장에 기록된 기록 목적을 넘어서서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연관이 있다고 하는 데에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로마 교회는 언제 어떻게 세워졌으며, 어떠한 역사적 상황에 있었으며, 그리고 바울과는 어떤 관계에 있었는가에 대해 학자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과 연관하여서, 로마서 기록 동기에 중요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 사도행전에서 발견되고 있다 (행 2:5-42; 18:1-3).

A. 클로디우스 황제의 추방령과 로마 교회
바울은 직접 로마 교회를 세우지 아니하였다. 더구나, 어떤 사도나 선교사에 의하여 로마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기록도 없다. 다만 사도행전을 근거로 추측은 해볼 수가 있는데, 복음은 아마도 유대인들 사이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이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구성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누가의 기록인 사도행전 2장은 로마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 사건을 목도(2:10)하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2:14-40)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2:41-42)고 기록하고 있다. 로마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회심하여 로마로 돌아가서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유력한 견해이다.
행 18:1-3에 따르면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에 로마에서 온 성도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났는데, 이때가 A.D. 50년 경으로 본다면 로마 교회는 50년 훨씬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고린도에 오게된 이유를 누가는 클로디우스(글라우디오) 황제의 칙령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행 18:2), 당시의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클로디우스 황제가 A.D. 49년에 칙령을 내려 로마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추방시켰다고 한다. 클로디우스 황제의 칙령은 로마서 기록 동기를 알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1세기 로마에는 약 4-5만 명 정도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클로디우스 황제가 이러한 대규모의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시켰다는 것은 상당히 중대한 사건에 속한다. 이것이 중대한 사건임은 오늘날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의 경우에서 유추해 볼 수가 있다. 현재 미국 인구의 1% 정도가 유대인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1%의 유대인들이 미국 정치, 경제, 사회 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시의 로마 인구가 얼마나 되는 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100만이라고 한다면 인구의 약 5% 정도가 유대인이라는 계산이다. 50만이라고 한다면 10%대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이 정도의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살고 있었다면 유대인들이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쳤는 지는 알 수가 없겠지만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할 수가 있다. 당시 유대 상인들과 그리스 상인들이 로마 제국내에서 상당한 규모의 상권을 형성하였고 이 두 집단이 경쟁 관계에 있었다는 것은 기록으로 전해져 내려 오는 사실이다. 오늘날 미국의 유대인들이 전체 인구의 단 1%만 되어도 경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볼때, 당시 도시 전체 인구의 5-10%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전 유대인들을 하루 아침에 로마에서 추방시킨다는 것은 로마 황제의 편에서는 상당한 결단을 요구했던 중대한 사건이었음이 확실해진다. 클로디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내려진 유대인 추방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로마 도시 사회에 끼쳤음이 틀림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경제적 힘이 상당하였다는 것은 클로디우스 황제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 네로 황제가 추방된 유대인들이 불과 5년만(A.D. 54)에 로마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는 사실로 입증이 가능해진다.
이렇듯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을 유대인 추방을 가져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역사가인 수에토니우스(Suetonius)가 저술한 <클로디우스 황제의 생애 (Life of Claudius)> 25장 4절에 따르면 클로디우스 황제가 크레스투스(Chrestus)라는 사람에 의해 유대인 사이에서 야기된 상습적인 소요사태로 인하여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고 한다 (Claudius expelled Jews from Rome because of their constant disturbances impelled by Chrestus.). 여기서 크레스투스는 누구를 가르키고 있을까? 크레스투스(Chrestus)는 크리스투스(Christus)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 이유는 1세기에 헬라어에서는 ‘에(e)’와 ‘이(i)’를 거의 동일하게 발음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당시 로마 유대인 사회에서 그만한 분쟁을 이끌 역사적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면 클로디우스 황제는 로마 유대인 사이에서 그리스도로 야기된 소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유대인들을 로마 도시밖으로 추방한 것이 된다. 황제의 추방령은 49년에 있었는데, 이것은 49년 이전에 이미 로마에서 복음의 증거가 활발히 진행되어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 회당에서 충돌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행 18:1-2).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고 주장하였을 것이고 유대교를 신봉하는 유대인들은 이를 극렬히 반대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소요가 상습적으로 끊임없이 발생하였다는 것은 당시 로마에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수의 유대 그리스도인으로는 황제의 추방령을 이끌 정도의 대규모 소요사태를 야기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울이 로마서를 쓰기 7-10여년 전에 로마 황제가 4-5만의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할 정도라면 로마 교회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추측이 가능하다.


B. 클로디우스 황제의 추방령과 로마서
클로디우스 황제의 추방령은 로마서를 기록하는 바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유대인 추방령은 가장 먼저 로마 교회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가 있다. 로마 교회는 마가 다락방 사건을 목도하고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돌아온 유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세워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유대인보다는 더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나아 온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는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유대식 이름들(아굴라, 브리스가, 안드로니고, 유니아, 헤로디온등)이 있는 가 하면 많은 이방인들의 이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증거들에 의하면 49년 당시의 로마교회는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혼합 교회임을 알 수가 있다. 로마서의 곳곳에 나오는 이방인에 대한 언급도 이를 증거하고 있다 (1:5, 13; 11:13, 23-24, 28, 31; 15:7-9).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된 로마 교회는 클로디우스 황제의 추방령으로 중대한 전기를 맞은 것으로 보여진다. 추방된 유대인들 중에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포함되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cf. 브리스 길라, 아굴라: 행 18:1-2).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에는 추방된 유대인들이 54년의 클로디우스 황제의 사망과 네로 황제의 등극으로 인하여 다시 귀환하였다. 하지만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돌아 왔다 하더라도, 5년간의 공백 기간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 교회의 주도권을 넘겨 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따라서 교회내에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귀환한 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의 서신에 심화된 양자사이의 갈등에 대한 화해의 시도가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1:18-4:25; 9-11장, 11:18-21, 28-30; 14-15장, 15:8-13, 18; 16:17-18등).
이상의 정황들은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염두에 두었을 사항들이다. 로마서의 기록 목적과 연관하여 고려하여야 할 중대한 사안은 추방되었을 당시에 추방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이 개척한 여러 교회들의 교인들과 접촉하였으리라는 가능성이다. 바울의 교회와 직접적 접촉을 갖고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이고 로마 제국내 각지로 흩어져야 하였기 때문에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을 통하여 바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로 귀환한 이들이 바울에 대한 나쁜 소문들도 듣고 돌아갔다고 보아야 한다. 바울의 다른 서신들을 보면 여러 곳에서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과 암시들이 나오고 있고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바울의 교회에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를 기록하는 시점까지도 바울은 갈라디아, 고린도등의 지역에서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의 방해와 또한 회심자들의 잘못된 이해와 오류에 직면하고 있었다. 로마서 3:8에도 바울을 대적하는 자에 대한 암시가 나타나고 있다.

C. 유대인 추방령과 로마서 기록 목적
바울은 로마의 교인들중에 자신의 복음에 동의하는 자도 있었겠지만 동의하지 않는 자도 있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방인 선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자신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가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고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자신의 복음의 본질에 대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확신을 심어 줄 필요가 있었다. 마찬 가지로 곧 방문할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앞에서도 자신과 복음을 변호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로마서는 바울의 복음을 변호하고 변증하는 성격을 띠고 있는 서신으로 보아야 한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자신의 복음과 입장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로마에 있는 비방자들의 공격과 비방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가 있다. 특히 서바나 선교를 앞두고 로마 교회의 후원을 얻고자 하는 바울이라면 비방자들에게 자신의 복음을 반증하고 변호해야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에서 우리는 왜 로마서가 기독교의 진수를 담고 있는 교리서신이며 로마서의 기록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다.

 

6. 고린도 전서

 

A. 고린도 (역사와 도시)

-- 항구도시 (헬라 본토와 펠라폰네소스를 연결). 서(2km 지점에 레헤움 항구), 동(7km 지점에 겐그레아 항구, 롬 16:1). 남북으로는 육로, 동서로는 해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 군사적으로 상업적으로 번창
--B.C. 146년에 폐허(시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감)
--B.C. 44년에 줄리어스 시이져가 로마의 식민지로서 새로 건설.
--B.C. 27년에 로마 총독이 부임함으로써 아가야 지역의 행정 수도가 됨.
-- 행정 수도가 됨으로써 다시 국제적인 상업 도시로 번성.
: 다양한 헬라종교들이 공존하였고,
: 약 3만의 유대인들이 이곳에 거주: 49년의 Claudius황제의 칙령.
-- 당시 고린도에는 12개 이상의 신전이 존재.
: 사랑의 여신을 섬기는 아프로디테 신전 (1000여명의 종교적인 창녀)
: 사회적 종교적 환경이 고린도를 방탕하고 부패하고 만들었고
(Corinthiazo란 풍자적인 신종어)


B. 고린도 교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로마에서 고린도로 이주 (행 18장 참조).
--바울 18개월 머물며 교회를 개척(예외적).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행 18:5). --성공적 교회 확장중 유대인과의 충돌로 52년 쯤 아굴라 부부와 에베소를 거쳐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떠나고 아볼로가 후임으로 사역 (행 18:27-28).
--아볼로가 유대인과의 변론에서 이김.


C. 고린도 교회의 구성

-- 1:26 (상류층) vs. 1:27-28 (하류층)
--구성원의 대부분이 하층 노예 출신 이방인(1:26-29).
--계층간의 갈등과 위화감이 조성되어 있었음 (10:27; 11:17-34). 성만찬시
-- 교회의 지도자의 이름을 내세워 파당 (1:11, 12).
--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여러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
: 교회내에 계층간, 파벌간 갈등을 늘 안고 있었다.


D. 고린도 교회의 문제

--다양한 구성원의 상황(이원론적 영향, 이교 사회의 혼합주의)은 교회내에 많은 문제점을 야기: 성도덕의 문란, 우상 숭배, 지혜와 지식 자랑, 윤리등.

--대표적인 문제는 성령 열광 주의자들(pneumatic enthusiasm)에 의한 자유 방종주의(5-6장)와 극단적 금욕주의(7장): 성령의 은사를 구원받은 증거로 생각하여 지나친 열광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양 극단의 상황으로 나타남.

-- 분파 문제
아볼로파: 철학과 수사학을 숭상하는 문화의 영향으로 성경 해석의 능력과 수사적 기술을 가진 아볼로에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되어 따르게 됨 (행 18).
-- 부활 문제: 이원론적 사상의 배경에서 ‘육신의 부활’은 이해 불가.
:자신들의 영혼은 이미 구원받은 존재이기에 부활은 불필요없다고 봄.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영적으로 부활하였다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4:8).
-- 은사 문제: 따라서 그들은 미래의 부할보다는 현재 자신들이 받은 ‘성령의 은사’에 관심을 갖게 됨. 경쟁과 질시와 교만과 상호 무시의 분위기 형성.


E.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
1) 50/51-52년동안, 행 18:1-3의 기록에 따르면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천막업에 종사하면서 교회를 개척. 유대인들이 소동을 일으켜 proconsul로 있던 갈리오에게 끌고감. 바울은 풀려나고 소스데네는 태형을 당함 (행 18:12-17).

2) 52-56년. 바울이 52년에 고린도를 떠난 뒤에 다른 선교사들이 고린도에 도착.
3) 고전 5:9에서 바울이 언급하는 편지(현재 남아 있지 않음)를 바울이 보냄. 음행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함.

4) 56년경 바울이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글로에의 집안 사람들을 통해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들음(고전 1:11; 11:18).

5) 거의 동시에(혹은 약간 뒤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로부터 편지를 받음(고전 7:1). 이 편지는 아마도 바울이 먼저 보낸 편지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답장으로 보임.

6)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 전서를 써서 보냄.

 

7. 고린도 후서

 

A. 바울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 (고린도 전서에서는 1-6번, 연결해서 계속되는 것)

1. 교회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썼고 고린도 전서를 쓸 당시에 바울은 오순절 까지 에베소에 머물러 있다가 마케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고 나서 고린도로 와서 겨울을 나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고전 16:5-9). 디모데가 고린도 전서를 전달하기 위해서 고린도로 들어 갔다.

2.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보낸 뒤, 56/57년 초에 디모데가 고린도에 옴 (행 19:21-22; 고전 4:17-19; 16:10-11).

3. 고린도 지역에 위기 상황이 발생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심각한 신학적 문제가 발생하였음을 듣게 된다 (아마도 디모데로부터). 문제의 발단은 고후 11:13-15에 기술되어 있듯이 자신들을 사도라고 지칭하는 외부로부터의 대적자(침입자)들이 들어 와서 바울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10:10
--11:12 (교회로부터 지지를 받기위해 사도권을 자랑)
이 거짓 사도들은 유대적 배경을 가진 자들이 었다.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와 연관이 있는 자들이 아닌가? 추측됨. 11:22하에서 그들은 유대 배경을 자랑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헬라파 유대인 이라기 보다는 예루살렘 (유대파) 유대인에 더 가까움.
--바울의 대적자들은 Jews, Jerusalem Jews, Judaising Jews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세력을 등에 업고 바울의 사도직에 도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cf.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성

--여기서 바울이 공격을 당한 빌미를 제공한 단초가 하나 있다. 고전 16:1-2
당시의 로마 사회에서 유사 이단 종교 단체들이 이러한 헌금 강요를 통하여 착취하고 있었다. 대적자들이 이런 문제를 들고 나와서 사도권 침해.

4.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게 된 디모데가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로 감.

5. Painful Visit: 디모데의 소식을 들은 바울이 긴급상황이므로 원래의 여행계획을 취소하고 (원래의 여행계획은 고전 16:5-7), 에베소에서 뱃길로 직접 고린도로 감. 이 방문에서 바울은 고린도인들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였고 심한 상처를 입었다. (고후 2:5; 7:12; 12:21), 이에 따라 바울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고린도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잠시 냉정을 찾기 위해 마케도니아로 갔고, 다시 고린도로 돌아오지 않고, 마케도니아 방문 후에는 다시 바로 에베소로 돌아감.

9) 눈물의 편지: 고통의 방문에서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은 다시 고린도를 방문하는 대신 그의 고통스러운 경험(“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painful visit, 그 구체적인 내용이 1:23-2:4에 나옴)에 대해 언급하는 편지를 에베소에서 써서 디도를 시켜 고린도로 보냄. 이것이 “눈물의 편지”(2:4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 눈물의 편지는 현재 남아 있지 않음. 이 편지는 디도에 의해서 전달 (고후 7:6-7). 디모데 보다는 디도가 강인한 성격을 가져서 이러한 편지를 전달하는데 적격자였기 때문이다.

10)디도가 돌아오지 않자 바울은 마케도니야로 건너가서 디도를 기다리다 57년 가을 경에 그를 만남(2:12). 디도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줌 (7:6-7).
--눈물의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로 돌아옴.
--디도는 고린도 교회의 위기가 해소되었다고 보고함(고후 7:5-16에 바울이 언급)
--연보 문제도 해결: (고후 2:14-6:13; 7:2-3) 7:2 참조

11) 마케도니아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 문제가 잠잠해 진 후에 쓴 네 번째 편지가 바로 이 고린도 후서. 1:3-4에서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서신을 시작해서 13:11-13의 축도로 마침. 이 편지를 디도가 갖고 다시 고린도로 감.

12) 바울이 고린도에 감 (고후 12:14; 13:1-2). 57/58년 겨울을 고린도에서 보냄. 여기에서 로마서를 씀.

고린도 전서에서는 교회 내부에서 대적자들이 바울을 대적하였고 고린도 후서에서는 교회 외부에서 침입한 자들이 바울을 훼방하였다. 고린도 교회에서 당한 바울의 고통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실패하였다면 바울의 이방인 선교 사역 전체가 무너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바울과 함께 하였다. 그의 복음은 로마 제국을 거쳐서 지금 우리의 손에 전하여 져 왔고 우리의 손을 통하여서 세계로 전하여 지고 있다.

 

8. 갈라디아서

 

(교리 서신, Why?)

A. 바울의 사도권 논쟁
1:1에서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갈라디아 교회들 안에서 누군가가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의심하면서, 그가 사도가 된 것은 “사람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바울이 그것을 편지의 서두에서 미리 반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바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누구로 부터 (source), 누구를 통해서 (agent) 바울이 사도가 되었다고 주장하였을까? 그들은 아마도 바울에게 사도권을 준 사람들 (그를 안수하여 이방 선교사로 파송한 사람들)은 안디옥 교회의 당시 지도자들(행 13:1-3)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사도가 되도록 중간에서 중개한 바나바 (행 9:27)와 같은 인물이 있음으로써 그의 반대자들의 눈에는 바울이 인간을 통해서 인간에 의해서 사도로 세움을 받았다고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혹은 바울이 1:17 이하 자신이 부활한 예수를 만난 후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의 적대자들은 바울이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을 통해서, 예루살렘교회로 부터 사도로 임명되었다고 주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B. 바울의 적대자들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에 교회들(“갈라디아 여러 교회들”, 갈 1:2)을 세우고 나서 그 교회들을 떠난 뒤, 일단의 기독교인들(복수,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이 이 지역의 교회들에 나타났다. 이들은 할례를 주장하는(6:12) 유대주의자들(Judaizers)로서, 이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다른 복음”(1:7)을 전하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인종적으로는 유대인이었으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이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이방인들이 구원받으려면 할례를 받아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5:2,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5:3) 유대인이 먼저 되고,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이 선포하는 복음은 “믿음”만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할례와 율법준수(“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4:10)를 전제로 하는 구원이었다.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동기는 “박해를 면하려는 것”(6:12)이었다 (당시 유대인회당에서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음. 바울도 고후 11:24에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음). 이들은 갈라디아교회의 설립자인 바울과 그 교인들의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했고(4:17), 심지어, 이들은 바울도 할례를 인정한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보인다(5:11).

바울의 적대자들의 출신 지역은 아마도 예루살렘교회인 것 같다. 바울이 두 번째로 예루살렘을 방문해서(2:1), “유명한 자들”(2:6, 야고보, 게바, 요한)과 만나 이야기 할 때, 그 자리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형제(들)”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 거짓형제들은 디도가 헬라인임을 들어 그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 때문에 바울과 논쟁이 벌어졌다. 갈라디아 교회들을 어지럽힌 사람들은 이 예루살렘의 “거짓형제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점은 2:11-14에 나오는 안디옥 사건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이방인들과 함께 식탁교제를 나누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2:12) 도착하자, 식탁에서 물러났다. 바울은 베드로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갔다”(2:13)고 말한다. 이 그룹은 베드로조차도 두려워하는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 출신들임이 분명하다.

바울의 적들은 구원이 믿음뿐만이 아니라, 할례, 율법, 유대교 절기 등을 지키는 것에 의해서 보충되어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는 것은 완전히 유대인으로 개종하고 유대인으로 다시 태어나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바울의 적대자들은 이방인들이 사실상 할례를 통해서 완전히 유대인이 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바울은 할례를 안 받아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이 단일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3:28)을 다시 이 편지를 통해 강조하고 있고, 자신이 세운 교회들에 와서 이런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거짓형제들로부터 자신의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

 

 

 

구약성경 주요내용정리 39권,929장

 

 

● 사해: 399m나 낮은 곳에 위치해 있으므로 물이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 못한다. 다만 증발할 뿐이며 많은 중금속 광물질이 녹아 있어 생물이 살지 못한다. 그래서 '사해' 라고 불리지만 성경에는 사해라고 나오지는 않는다.
● 나일강 : 애굽의 젖줄인 이 강은 쇠스랑 같은 모양으로 삼각주를 이루며 지중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 강 자체가 애굽의 교만을 상징한다.
●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 이 두 강은 코브라의 혀처럼 갈라져 보이는데, 사실은 각각 다른 곳에서 발원하여 페르시아만 앞에서 합해져서 페르시아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두 강의 사이 에 있는 땅이 바로 '메소포타미아' 이다.
● 페르시아만: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흘러들어가는 바다로 인도양과 연결되어 있다.
● 홍해: 돼지 발굽 모양의 이 바다는 시내 반도를 둘러싸고 있다. 모세의 이스라엘 백성이 건넌 곳은 바로 이 바다의 좌측 윗 부분이었다. 오늘날 수에즈 운하 가 뚫린 그곳이다.
팔례스틴의 독특한 기후
팔레스틴은 습윤 기후(지중해성 기후)와 건조 기후(사막 기후)의 경계에 위치한 아열대성 기후입니다. 겨울은 9월부터 4월까지로 우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여름은 6 월부터 10월까지로 건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틴의 지형
● 천수에 의존한 평작: 관개농업을 하던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와는 달리 하천이 별로 없는 팔레스틴은 빗물에 의존하여 파종, 수확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해야만 했다(신 11:9-12).
팔례스틴의 독특한 농산물들
● 포도나무: 가나안은 포도재배의 최적지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였다 (호 10:1). 요한복음 I54, 5에서는 예수님은 포도나무로, 우리는 가지로 표현된다.
● 감람나무: 성경에서 언제나 가치 있는 나무로 묘사(신 6: II; 롬 11:17)된다. 나무는 '번영' , 잎은 '평화' 의 상징이다.
● 종려나무: 요단계곡에 많이 서식(왕하 6:29)하며,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시 92:12) 표현되었다. 또한 신부의 모양(아 7:7)으로 말해지기도 했다.
●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크고 두터워 여름철 더위를 피하는 휴식처로도 사용되었다. (아담과 하와가 몸을 가림 - 창 3장 7절, 평화와 번영의 상징 - 왕상 4:25)
이스라엘을 4가지 지형으로 분류하면
● 해안 평야: 지중해 연안의 비옥한 지대로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먼저 차지한 블레셋 족속과 오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 중앙 고지대: 요단 강 서편의 산악과 고원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이스라엘 족속들이 주로 거주하던 지역으로서, 철기 문명을 먼저 시작한 해안지역의 블레셋 족속에게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 요르단 지구대 : 갈릴리 호수와 사해를 잇는 요단 강 주변의 지역이다.
● 트랜스 요르단: 요단 동편의 지대로서 가나안 정복 당시 갓 지파, 르우벤 지파, 므낫세의 반 지파가 정착한 땅이다.(참고: 수 12:1-6)
성경에 등장하는 유명한 지형들을 익혀두면, 성경을 읽을때 도움이 됩니다.
모압과 이스라엘과의 관계 - 모압의 조상은 롯의 큰 딸이 낳은 아들이었다(창 19:37).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거한 땅을 롯에게 주셨기 때문에 출애굽 당시 "모압과 싸우지 말라' (신 2:9)고 말씀하셨다. 다윗의 증조모인 룻 역시 모압 여인이었다.
왕국이 분열된 후에 모압은 북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쳤으며, 아합이 죽자 메사 왕은 이스라엘과 싸워 독립을 쟁취하였다.
에돔과 이스라엘의 관계 - 에서가 원주민 호리족을 추방하고 에돔족의 조상이 되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에돔 영지내의 왕의 대로로 통과하려 했으나 에돔 왕이 거부하였고, 민수기 22:14-21에 하나님께서 씨우지 말고 다른 길로 갈 것을 명령하셨다. 이스라엘과는 적대관계(느브갓네살이 예수살렘을 파괴할 때 에돔이 기뻐함. 시 137)에 있었으며,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후 에돔 사람들이 유다 남부로 침입해서 '이두메인' 이 되었다.

 

창조시대

 

인간의 기원과 현재의 인간의 상태를 설명해 주고 언약을 통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보여준다. 창조로부터 아브라함 이전까지의 시대로 원 역사라 불린다. 이 시대는 역사적인 관심보다는 인류의 기원과 죄의 근원을 밝히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창조로부터 기원전 2000년 까지의 시기 )

1.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 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하나님은 ( 말씀 )으로 우주를 창조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기적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 합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 창조의 과정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고백적으로 찬양하고 있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적인 지식을 통하여 성경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마치 길이가 변하는 자를 가지고 물건을 재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상과 과학은 변해도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지식 위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첫째 날 빛 - 낮과 밤을 나눔
둘째 날 하늘 궁창
셋째 날 땅과 바다, 풀과 채소
넷째 날 해, 달, 별
다섯째 날 물고기와 새
여섯째 날 동물과 사람
일곱째 날 안식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가장 나중에 창조 하셨다. ( 다른 것들은 인간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하셨다.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 이것은 인간을 영혼이 있는 영적 존재로 만드셨다는 뜻이고 세상의 모든 것 중에 오직 인간만이 이 영을 통하여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교통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인격적인 관계로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셨다.


2. 불순종한 인간은 타락했습니다. (창세기 3- 4장)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처음이자 유일한 금지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창조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허락하셨고, 자유의지로 이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며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뱀으로 가장한 사탄의 “ 하나님과 같이 되라”(3장5절)는 유혹에 인간은 그 명령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관계의 변화는 곧바로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감정은 이제 시기, 질투, 분노와 급기야는 살인이라는 타락의 나락으로 빠져만 갔습니다. 결국 인간의 불순종은 모든 관계의 파괴와 타락을 낳았습니다.

3. 죄의 관영함을 보시고 홍수로 심판 하셨습니다.( 창세기 6 -10장 )

인간의 죄악이 얼마나 컸던지 하나님은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나 홍수로 세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실 것을 계획하시고 또 동시에 노아라는 의인을 통한 구원의 방주를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자비’의 하나님이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묵과 하시지 않으십니다. 죄는 분명히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 그자체가 아니라 구원이 목적이시기 때문에 심판과 구원을 동일한 사건으로 행하십니다. 노아의 방주는 죄인들에게는 ‘가능성’이었으며, 홍수심판 이후의 무지개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4.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과 인간들을 흩으셨습니다.(창세기 11장)

바벨탑은 스스로 높아지려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롬1:25)”고 말하였습니다. 인간들은 다시 범죄하고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바벨탑을 쌓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교만과 허영을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지 않으시고 언어의 혼잡이라는 방법으로 흩어 버리셨습니다.

족장시대

성경에서 이 부분은 주요한 네 인물을 중심으로 한 족장시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고난을 이겨낸 믿음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1. 아브라함: 믿음으로 선택받고 언약의 기초가 된 믿음의 조상 ( 12-23장)
2. 이삭: 순종함으로 언약의 계보를 이어감 ( 24-26장)
3. 야곱: 하나님을 향한 특심함으로 약점을 극복하고 복을 받음( 27-36장)
4. 요셉: 섭리 가운데 준비하선 하나님의 연단을 이겨냄으로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을 거대한 민족으로 일궈낸 지도자 ( 37-50장) 

 

## 언약이란?

 

'언약' 이라는 단어는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중요한 주제이다. 언약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계약이 아니다. 계약은 두 사람 사이 혹은 집단 사이의 합의 사항이다. 그러나 언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그 언약관계를 주도하시고 규정하신다. 백성?들은 다른 조건이나 계획을 제시할 수 없고, 단지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의 선택권이 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신뢰와 순종에서 온다.
'언약- 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약 296번 사용되었다. 구약에서는 언약이라는 단어가 쎄리트라고 발음 되는데 그것은 '서약' , '계약' . '쪼개놓은 짐승의 조각 사이를 통과함으로써 만들어진 맹약, 동맹, 연맹' 을 의미한다.

1 . 아브라함 - 하나님의 ( 선택 )과 아브라함의 ( 순종 ) (창 12-2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역사를 시작하시기 위해서 누군가를 택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75세였던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그의 삶의 근거였던 땅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 언약을 주셨습니다.
첫째,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
둘째, '내가 이 땅(가나안)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셋째,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을 믿고 하란을 떠났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민족을 이룬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칠십오세가 되었어도 아들 하나 없었고. 주신다는 땅을 가보았지만 심한 기근으로 결국 애굽으로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실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시초가 되는 이삭을 주셨고. 약속을 이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순종이 진심인지 알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시련" (test) 과 "시험" (temptation)
아브라함이 당했던 시험을 영어로는 'test' 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또 다른 시험이 나온다. 그것은 예수님이 당하셨던 시험으로 영어로는 'temptation' 이라고 한다. 이것은 시험하는 자의 의도 자체에 '불순' 이라는 의미 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이 두 가지의 시험을 모두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현재 당하는 시험이 어떤 종류에 속하는 시험인지를 지혜롭게 분별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나를 'test' 하는 것이라면 감사함으로 받고 이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유혹하는 'temptation' 이라면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물리쳐야 할 것이다

2. 이삭 - 순종으로 이어진 언약의 계보(창24-26장)

쌍둥이 두 아들을 낳고 차자인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었습니다. (창 27:18-29) 이삭은 평생을 조용히 살아간 인물입니다. 족장시대의 네 인물 가운데 이삭처럼 무난하면서도 조용한 삶을 살다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어린 시절 인간 제물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철저히 하나님과 아버지의 언약을 믿고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순종으로 이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의 제사 경험을 통하여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자기의 생명 대신에 예비하신 한 마리의 양으로 인하여 다사 살아나게 된 생명, 그는 이러한 은혜의 체험으로 인하여 다시 한껏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 은혜가 동기가 되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이상적 가정의 장막을 차며 자신과 이웃의 번영을 위하여 우물을 파는 자가 되었다 이러한 이삭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 신자상을 찾아볼 수 있다.

3. 야곱 - 약점을 이겨낸 하나님께 대한 특심 (창 27-36장)

야곱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 사이에서 태어난 에서의 쌍둥이 동생입니다. 그의 이름은 '발꿈치를 잡았다' 는 뜻으로 경쟁적이며 투쟁적인 성품의 소유자임을 발해 줍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축복을 받기 위해 끈질긴 투쟁을 벌임으로 그의 삶은 투쟁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의 여정이 복잡했던 만큼이나 이동 지역 또한 넓었고, 생의 마지막을 애굽에서 맞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다른 이름인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을 통해 비열함과 투쟁성과는 다른 하나님을 향한 특심한 마음이 그에게 있었음을 보게됩니다.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살았고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다음과 같은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 28:13-14).
이스라엘은 비로소 그의 아들들을 통하여 열두 지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제 창세기 30:1-13에 등장하는 아곱의 열두 아들의 이름을 찾아봅시다.

1.르우벤 2.시므온 3.레위 4.유다 5.단 6.납달리 7.갓 8.아셀 9.잇사갈 10.스불론 11.요셉 12.베냐민

※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야곱의 열두 아들에서 나온다. 그러나 가족에서 지파로 형성되는 과정 중에 약간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레위는 제 사장의 직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지파에서 빠지게 된다. 그리고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열두 지파에 포함되게 된다. 에브라임은 차자였지만 야곱의 축복에 의해 므낫세보다 더 강한 지파가 된다. 그래서 열두 지파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레위와 요셉이 빠지고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포함되게 된다.


4. 요셉 - 연단을 거쳐 하나님의 언약을 구체화한 완벽한 지도자 (창 37장-50장)

요셉이라는 이름은 '그는 더하실 것' 이라는 뜻입니다. 요셉은 라헬의 첫 번째 아들이며,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입니다. 그는 성품이 온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매우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 늦게 얻은 아들이었기에 아버지의 총애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해와 달과 볕들이 자기에게 절하고, 열한 단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형들에게 말함으로 미움과 시기를 받았습니다(창 37:3-11). 요셉은 그 형들이 도단에서 양을 칠 때 그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형들의 목장을 찾아갔습니다. 이때 형들은 요셉을 죽이기로 결의하였고 르우벤의 제의에 따라 구덩이에 넣었으며, 다시 유다의 제의로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포함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후 요셉은 애굽의 장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나 보디발의 아내의 끈질긴 유혹을 거절하여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이렇게 반복된 고통은 애굽의 총리가 되는 첩경이 되었습니다. 총리가 된 후 그는 자신의 가족들을 애굽 고센 땅에 이주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아버지 야곱의 장례식을 애굽의 국장과 같이 치릅니다. 요셉 또한 110세에 이르러 세상을 떠났으나 모세가 그의 유골을 들고 나와 세겜에 안장하였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수많은 연단을 거친 후에 정금 같이 나온 인물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구체화한 지도자였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후손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씨족의 모습에서 벗어나 이스라엘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약속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사람은 물론 하나님 보시기에도 가장 완벽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초반 삶은 가족의 배신과 억울한 옥살이 등으로 고통 받았지만 총리가 되어 가뭄에서 가족과 세상을 구원했고 출애굽이라는 구약 제일의 사건에 기틀을 닦은 인물로 남았습니다.

 

출애굽 시대

 

모세의 탄생과 부르심

I . 모세의 탄생(출 I :1 - 2:1 0)

히브리 민족의 수가 늘어나 히브리 남자아기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진 시기에 태어나 몰래 길리우다가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강으로 띄워 보내어지고 바로의 공주에게 건지워져 자라나게 됨

2. 한 젊은 남자 모세

모세는 비록 자신이 왕의 궁정에서 자라났지만 자신이 히브리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동족들의 고된 삶에 충격을 받았고, 그들의 운명에 대한 의분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 감정은 이집트인을 덮쳐 땅에 엎드러져 죽기까지 무섭게 쳐죽인 사실을 통해 표출되었습니다. 이 일은 그의 동족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였고(출 2:1-0. 이 일이 발각되자 모세는 도주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상황이 악화된 모세는 광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고 야곱처럼 망명자가 되었으며 요셉처럼 모세 또한 모든 것(궁정에서의 호화로운 지위. 자신의 친구들과 보호자들, 장래가 보장된 출세)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히는 사건의 경험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것처럼 불붙 는 떨기나무와 호기심에 사로잡힌 경험은 모세의 삶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가져오게 됩니다. 불 속에서 들리는 그 목소리는 모세가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선조들의 하나님 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목소리를 듣고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먼 여행을 했었고, 야곱은 하늘까지 닿아 있는 꿈을 꾸면서 이 목소리를 듣고 그의 이기심이 중심까지 흔들렸었습니다. 이제 모세에게는 자신의 조상들로부터 이어져온 민족의 리더로서의 장자권이 주어진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아마도 지금껏 모세는 하나님을 소문으로 들어서 알거나 아니면 노예가 된 자기 민족 사이에 있었던 잊혀진 전통쯤으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을 직접 알게 되었는데, 더 이상 어떤 희미한 형태의 방법이나 전통에 의해서 믿고 있던 큰 능력이 아니라 그가 경험하여 알 수 있는 실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때부터 모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지식은 그의 삶을 평안케 하기보다는 고난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반면에 그의 삶을 더할 나위 없이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인공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런 존재가 되기 싫어서 일련의 변명들을 늘어놓았고 끝내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구실을 다하자 좌절 속에서 자기의 주장(속마음, 진실)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모세는 진정 주인공이 되기를 꺼려했었지만 일단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이고 나서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만약 야곱의 위대한 정신적 장점이 자신에 대한 정직성이었고 ,요셉의 뛰어난 능력이 꿈을 해석하는 것이었다면, 모세의 가치는 그가 자기 인생의 과업을 일단 받아들이고 나서 보여 준 확고한 인내와 목적에 대한 불변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드라마(출 1 - I 8장)

출애굽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합니다. 구약 제일의 사건으로 불리는 출애굽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보시고, 아시며, 기억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억 속에 머물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가 애굽의 바로 왕 앞에 서야만 했던 것은 출애굽이라는 실제적인 삶 속에게 부딪치게 될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강팍해진 바로는 노예와 진배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려 하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을 내리게 됩니다. 피로 변한 하수.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의 아홉 가지 재앙이 애굽 땅에 내렸지만 바로는 계속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포함한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을 치신 후에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나갔다는 말을 들은 바로는 다시 마음이 변하여 모든 병거로 이스라엘을 뒤쫓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거대한 홍해 바다가 흐르고. 뒤에는 질풍처럼 애굽의 병거가 달려옵니다. 그러나 절망의 순간에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건넌 후에야 뒤따르던 애굽의 병거가 모두 수장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제 장정만 육십만 명으로 성장한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 들어온 지 사백 삼십 년 만에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약속의 땅으로 그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우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애굽 신들과의 전쟁이' 라고 볼 수 있으며, 아홉 번째의 암흑 재앙은 애굽의 주신(해)인 태양신 라(Ra) 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리고 재앙을 보이신 이유는 애굽과의 확실한 결별을 위하여, 구별을 확실히 보이기 위하여, 그리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유월절(Passover)은 문자적으로 '넘어 지나가는 것'을 말한다(출 12:11-14). 이스라엘 사랑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놓았기 때문에 장자 사망의 재앙이 그들의 집을 넘어갔다는 뜻이다.(예수님이 유월절의 어린 양으로 상징되는 것을 기억하라.)

 

광야 시대

 

1.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남(출 19-40장: 레위기 I -27 민 1 -9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당신의 백성이 되도록 훈련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는 동안 우상에 찌들었던 이들의 삶이 정화되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광야 한가운데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백성이 되도록 훈련시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고통 가운데 머물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계명을 주시면서 그것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들로부터 예배를 받으시는 이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로 작정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언약과 계명과 절기를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9:1-35:3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언약, 십계명, 안식일에 관한 율법, 성막에 관한 지시, 언약의 파기와 갱신, 유교절과 무교절 등의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35:4 :38에서 성막을 건축할 것을 명하시는데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은 해방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며 예배하는 공동체로 세우시는 것과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모세에게 성막 (Tabernacle)을 지으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2. 성막의 내부

 

성막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 부분은 성막 뜰로 놋 제단과 대야가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은 성소(Holy)로 금 식탁과 금 촛대, 향단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Most Holy) '지성소' 라 불리웠는데
여기에는 언약궤가 놓여 있습니다.

민수기 13장은 이 과정을 거친 이스라엘 백성이 첫 번째로 맞이하는 시험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 가데스 바네아 )에 이르러 열두 정탐군을 뽑아 정복할 가나안 지역을 탐지했습니다.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지만 정탐꾼으로 보낸 열두 명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열 정탐꾼은 도저히 저 땅을 정복할 수 없다는 보고를 합니다. 현실적으로 견고한 성읍과 장대한 대장부들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언약은 없었습니다. 언약과 현실 사이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지 못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들을 다시 한 번 훈련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시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는 언약 백성이 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 언약과 현실 사이에서(민 10-14)

4. 새로운 믿음, 새로운 이스라엘(민 20-36장; 신 1 -34장)
언약을 잊고 현실만 바라본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사십 년간의 광야 재활훈련을 시작합니다. 이 기간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언약을 받을 수 없는 불신의 세대가 물러가고 모두 새로운 세대로 채워집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의 탄생입니다.
불신의 구세대는 애굽에서의 생활을 잊지 못했고 언약보다는 현실의 상황에 이끌리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연단과 정화의 훈련 속에서도 그들의 부족함은 곧 드러나 버렸습니다. 사십 년의 광야 생활, 이 시간은 새로운 믿음으로 무장한 새로운 이스라엘이 언약의 백성으로 거듭나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기다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받은 고생에 함께 하시면서 언약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구세대 중 마지막으로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숨을 거두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정복시대 - 소유와 율법

 

출애굽 사건은 약속된 땅 가나안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노예였던 히브리 백성, 땅이 없어 광야를 떠돌던 백성이 이제 자신들의 땅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율법도 함께 주셨습니다.
이제 이들은 새로운 땅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과 함께 살아가는 법 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필요를 충족시키시려고 장막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의 백성이 장막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법을 가르쳐 주심은 그분이 백성의 진중에 거하시면서 그들에게 계속하여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땅을 주시기 전에 거룩한 백성이 되는 법을 먼저 알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소유와 율법' 이 동일선상에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 세가지 (레위기 1-17장) - 제사, 대제사장, 결례
하나님께서 주시는 법 중에 전제하는 것이 있습니다.
;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레 20:3, 7, 26).
; 사람은 죄인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레 5:3).
;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는 길을 주셨다
;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수준이 있다.

1. 제사를 통하여 (레위기 1 - 17)

① 번제(레 l:5-l7. 6:8-13)
; 제사의 상징: 완전한 헌신
; 번제물: 소. 양, 염소(흠 없는 수컷). 새(집, 산비둘기 새끼)
; 제사방법: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단 위에서 모두 태운다.

② 소제(레 2:1-16, 6:14-23)
; 제사의 상징 : 단 하나의 피 없는 제사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봉사한다.
; 번제물: 땅의 소산
; 제사방법: 곡식의 구운 가루를 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쳐서 화제로 드리며 꿀이나 누룩을 섞을 수 없다.

③ 화목제(레 34-17, 7:1-34) - 로마서 5:1을 읽어보십시오.
; 제사의 상징: 하나님과의 교제
번제물 : 소 , 양 (흠없는 수컷), 염소
; 제사방법: 드려진 죄인의 제물을 이웃과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제사

④ 속죄제(레 4:1-5:13, 6:24-30)
; 제사의 상징: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대속. 고범죄는 해당되지 않는다.
; 번제물: 제사장과 온 회중은 흠 없는 수송아지 , 족장은 수염소, 평민은 암염소, 어린 양의 암컷, 산 집 비둘기 새끼 , 고운 가루
; 제사방법: 피를 성소장 앞에 7번 뿌리고 향단 뿔에 바르고 남은 피 전부를 번제단 밑에 쏟는다.

⑤ 속건제 (레 5:14-6:7, 7:1-7)
; 제사의 상징: 성물에 대한 죄나 인간 대 인간의 죄를 속함
; 번제물 : 흠 없는 수양
; 제사방법: 사람에 대한 피해 보상을 하는 것이 속건 제물을 드리는 전제 조건
** 제사 5가지- 번제, 소제 ,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2. 대제사장을 통하여(레위기 8 - 10장)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은 더 나은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입니다.

3. 성결케 함으로(레위기 11-17장)

① 육체적인 정결(레 11-15장): 회막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몸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지켜야 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먹을 수 있는 음식, 질병, 출산, 죽은 시체 등에 대한 규정을 하셨다. 이렇게 육체적으로 깨끗함을 유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② 영적인 정결(레 16-17장) - 속죄일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이 가장 강하게 표현되는 날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일 년 중 단 하루의 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사함은 받는 날

히브리 예배의 세 요소 - 기억, 속죄, 감사


이스라엘의 7대 절기

** 7대 절기 -- 유무초 오나속초
1 . 유월절(레 23:4-5; 고전 5:7)
히브리어로는 '넘어가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니산월(아빕월, 1월) 14일 해질 무렵, 나흘 전에 준비한 수양을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태워 버린 다. 애굽이 하나님의 진노로 장자를 잃는 열 번째 재앙을 당할 때 구원받은 것과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다.
2. 무교절(레 23:6-8: 고전 5:7,8)
히브리어로는 맛차로. 니산월(아빕월, 1월) 15일부터 7일 동안(21일 까지)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는다. 절기의 이름도 이 누룩 없는 떡을 먹는다하여 무교절이라 불리웠다. 무교절이 시작되는 첫 날과 마지막 날은 '성회' 로 백성이 모이고 노동을 하지 못했으며 매일 하나님께 화제를 드렸다
3. 초실절(레 23:9-14: 고전 15:20)
초실절은 히브리어로 바쿠림이라 불리며 무교절 기간 중에 있는 절기로,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 날이다. 추수 전에 곡식의 첫 이삭 한 단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로써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다. 초실절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는 떡이나 볶은 곡식, 생 이삭이라도 먹지 않았다.

4. 오순절(=칠칠절=맥추절) (레 23:15-21 : 행 2:1-47: 고전 12:13: 엡 2:11-22)
히브리어로는 솨부아 '맹세하다' 라는 뜻으로 밀을 수확할 수 있도록 복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다. 칠칠절은 초실절로부터 50일째에 해당하는 날로써 보통 시완월(3월) 6일경이 된다. 이 날은 하루만 절기로 지키는데 성회를 공포하고 노동이 금지되며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수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렸다. 특이한 것은 모든 절기에는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쓰지만 칠칠절만은 누룩을 넣은 유교병을 소제로 사용한다.
5. 나팔절(레 23:23-25)
나팔절은 티쉬리월(7 월) 1일로 유대 민간력으로는 1월에 해당하는 새해 첫날이다. 이 날은 나팔을 하루 종일 일정한 간격으로 불었으며 성회가 선포되고 노동을 금했다. 그리고 속죄제로 수염소 한 마리를 드렸다.
6. 속죄일(레 23:26-32; 히 9:25, 26)
이 날은 성회가 선포되고 노동을 금하며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로 티쉬리월( 7월) 10일이다. 특별히 연중 이 날만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갔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수염소와 아사셀을 위한 수염소를 드렸다.
7. 초막절(레 23:33-34)
수장절, 장막절이라고도 불린다. 티리쉬월(7월) 15일부터 8일 동안 행해진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 광야에 머물었던 것을 기념하는 동시에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이다. 첫날과 여덟째 날에는 성회로 모이고 노동이 금지되었으며 각 날마다 그에 상응 하는 제사를 드렸다.

믿음과 순종을 통한 약속의 실현 - 땅의 소유


1 . 땅의 진입 - 믿음과 순종에 의한 진입(수 I -4장)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든 백성과 더불어 요단강을 건너라고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수 1:1-9)

이스라엘은 믿음과 순종으로 요단강을 건너갑니다(수 3:1-5:1).
- 시기적으로는 물이 언덕까지 넘치는 때
-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매고 요단강에 들어가라는 명령 -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
- 백성들은 믿음과 순종으로 도강 (물이 끊어진 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2. 땅의 정복 - 믿음과 순종을 통한 정복 (수 5―12장)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요구하셨습니다. '할례'를 받을 것과 '유월절' 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동일하게 믿음 과 순종' 이라는 도식이 성립됩니다.
? 믿음 - 할례와 관계된 하나님의 언약(땅의 소유)을 믿을 것입니다(창 17:1-14)
? 순종 - 적을 앞에 두고 도강 후 배수진을 치고서 며칠 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육체적 수술을 단행한 것입니다.
? 여리고 성의 점령은 믿음과 순종에 의한 승리입니다(수 6:3-9; 히 11:30).
? 반면 아이 성의 패전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자만심(수 7:3)과 하나님의 언약 을 어긴 아간의 죄(수 7:10-12, 20-21) 때문이었습니다.

3. 땅의 분배 - 믿음과 순종을 통한 소유(수 13 -22장)
'땅의 완전한 소유" 역시 믿음과 순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4. 여호수아 생애의 종결 - 믿음과 순종을 다짐함(수 23-24장)
여호수아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세겜에서 언약을 새롭게 다짐합니다. 세겜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처음으로 약속한 장소(창 12:6-7)요, 야곱이 단을 세운 곳(창 33:20)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을 통한 삶의 질곡 속에서도 확신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분명하게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삶을 마감하는 순간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고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를 대속하여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의 공로를 입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의롭게 된 백성들도 주님의 구원하여 주심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매일 매일의 삶이 필요하며 시기를 따라 주님께 나아가는 특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따라서 거룩한 삶을 살고 믿음으로 이 모든 것에 순종하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형통케 하시며 우리가 짓지 않은 집을 주시고 우리가 심지 않은 것을 먹게 하실 것입니다.

 

사사시대

 

사사란?
사사는 히브리어로 솨파트라고 하며 원뜻은 '판결을 선고하다' . '다스리다' 라는 의미이다. 영어로는 사사를 'Judges' 라고 쓰지만 재판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한 후부터 사무엘에 의해 사울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고 왕정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이스라엘 의 군사, 정치, 사법의 지도자였다.

사사의 역할 = 왕 + 제사장
왕 - 재판을 하며(평시), 전쟁을 지휘함(전시).
제사장 - 백성들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

사사시대는 가나안 진입 이후 왕이 없던 시대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계는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왕은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에게 자율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였으며, 하나님은 압제자를 통하여 징벌하셨습니다. 징벌은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가져다주었고. 고통 받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이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사사들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사사시대 배경
시대적으로: 여호수아의 죽음으로부터 왕정국가(사울 왕)가 생기기까지
경제적으로: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생활양식이 변하던 시대


하나님의 구원(삿 2: 16-18 상반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을 위해 사사를 세우심
; 사사가 사는 동안에는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심

사사시대 죄의 악순환
사사시대 죄의 악순환은 우리 인간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죄가 악순환 되는 원인(삿 2:2, 10)
- 이방의 우상 제단을 헐지 않고 오히려 숭배함
- 이방인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
-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함
-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지 못함

I. 이스라엘의 범죄(삿 2:6-10: 3:5-6)

1) 불완전한 순종으로 이방 민족과 타협함
2) 이방인과의 혼인
3) 우상 숭배
4) 후손에 대한 교육 부재


2. 이스라엘의 타락상 (사사기 후반 부록)

대표적인 두 사건
1) 종교적 타락상 - 단 지파의 우상 숭배(삿17-18장)
미가의 가족과 사회의 타락상
● 그들의 의도 - 여호와를 섬기는 것
● 그들의 방법 -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 결론 - 혼란, 우상 숭배 , 하나님으로부터 분리
교훈 : 사람들은 사람의 이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 그러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2) 사회적 타략상 - 베냐민의 부도덕, 무법(삿 19-21 )
범죄의 내용: 레위인의 축첩과 첩의 음행. 베냐민의 기브아 비류들의 동성연애, 레 위인의 첩을 윤간하여 죽임.
교훈: 영적 건강은 도덕적 수준을 결정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사회는 혼란, 부패, 타락이다.

3. 징벌과 구원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하나님의 관심은 징벌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이들을 교정 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가나안에는 많은 이방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 고 이들은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삿 2:14-15)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은 징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징계 받는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마다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사사들을 통하여 구원하신 사실이 이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에는 많은 사사들이 등장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사사들로는 옷니엘과 에훗(삿 3:7-31), 드보라와 바락(삿 4:1-5:31), 기드온(삿 6:1-9:57). 입다(삿 10:6-12:7), 삼손(삿 13:1-16:31)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여사사인 드보라가 가나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물리치는 승전가의 노래(삿 5장),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 족속을 물리치는 나팔과 횃불전쟁 이야기(삿 7장), 외동딸을 제물로 바치는 안타까운 입다의 이야기(삿 11:30-40), 천하무적의 힘을 가졌던 삼손과 그를 유혹하는 들릴라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우리들을 흥미롭게 해 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이밖에도 소사사들에 대한 기록들이 간략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삿 10:1-5; 12:8-15).

4. 사사 기드온을 통해 바라본 죄의 악순환(삿 6:1 -8:35)

많은 사사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죄의 악순환은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유명한 사사 중의 한 사람이었던 기드온을 통해 사사시대를 조명해 볼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의 배교 내용을 찾아보십시오.
삿 6:1 -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함
삿 6:10 -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고 아모리 사람의 신들을 두려워 함
삿 6:25 - 바알과 아세라를 섬김
2) 이스라엘이 당한 압제의 내용을 찾아보십시오.
삿 6:3-6 -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이 올라와 식물과 가축을 빼앗아 감

3) 이스라엘의 회개의 내용을 찾아보십시오.
삿 6:6-7 - 여호와께 부르짖음

4)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까?
삿7:15 -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기드온과 300용사에게 붙이심

 

통일왕국 시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 죄악 된 세상의 현실들과 깊게 관련 맺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오염시킨다.
-> 우리는 죄와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
●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나쁜 결과들을 낳게 한다.
● 우리는 우상과 부도덕성을 판단해야한다.
● 하나님은 진정한 구원의 요청에 응답하신다.
●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삶을 돌리고 회개할 때 죄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다.
● 하나님의 긍휼과 인내는 매우 크시다.


1. 사무엘의 출생과 사역 -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 시대의 개막

 
사무엘상 1-3장은 사사시대의 종말에 대한 기록으로써, 사사기에 나타난 일반 백성들의 타락을 넘어서 하나님의 전에서 사역을 하는 제사장들까지도 타락해 버린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면이 철저하게 타락해 벼린 세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할 권위 있는 선지자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 때 부름 받은 자가 바로 사무엘 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선지자들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선지자 시대의 시작
선지자 시대는 가장 타락한 시대에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필요한 때는 어두움이 짙을 때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곳은 교회가 아니고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사무엘' 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 구하였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무엘 의 출생의 배경을 아는 사람에게는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는 이름입니다. 무자 하였던 여인 한나가 기도로 구하였을 때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한나는 서원한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삼상 1:10-11. 27-28).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는데. 그것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인물 사무엘을 통하여 구원 사역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제사장의 타락
시대의 마지막 보루는 성직자이다. 그런데 성직자마저 타락했다는 것은 그 시대가 희망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사무엘 당시의 제사장은 엘리로, 그 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엘리와 같은 제사장 반열에 있었으나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고,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다 (삼상 2:12-22). 그러나 엘리는 이 아들들의 잘못을 징계치 않았다(삼상 2:23-25).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들이 특별하게 구별되어 있었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모두 제사장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2:9에서 말씀하신 바대로 이 시대의 마지막 보루는 택하심을 받은 우리들 자신이다.

그러나 고집스러운 백성들은 거듭된 경고에도 듣기를 거절하고 왕을 요구 하였습니다. 이제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관계 사이에 문제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이상은 하나님께 복종하고 화목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사무엘과 같은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히브리 민족의 왕이 되실 것을 바랬었습니다. 그들의 안전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하고 열방 과 같이 되고자 했기(삼상 8:7) 때문입니다. 또한 부수적인 이유가 있다면 사무엘이 늙게 되자 그의 아들들의 부정과 불의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왕은 세금을 인상할 것이며, 백성들 징용해 가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삼상 8.10-18).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는 왕은 백성들을 이로운 길로 인도하겠지만 불순종하는 왕은 비극적인 결과로 그들을 인도할 수 있음도 말하였습니다.

3. 왕국의 확립과 초대 왕 사울(삼상 8-31 )


이제 왕국이 확립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로 하여금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왕으로 뽑으셨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왕이 될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외적인 면에서(삼상 92, 21): 준수한 소년이었으며 겸손한 사람이었다.
◆ 종교적인 면에서(삼상 19:23-24):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라마나봇에서 예언할 정도로 신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불순종으로 버림을 받고 몰락하게 됨

사울을 몰락하게 만든 4가지 문제
1) 불신과 불순종(삼상 13장):
2) 자의적 신앙(삼상 15장):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다. 이유가 하나님께 제사하려 하였다 할지라도 이것은 자의적 신앙이다.
그래서15:22에서"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말을 듣게 되었다.
3) 질투로 인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반항(삼상 18:6-16): 골리앗을 죽이고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질투하여 죽이려 하였다.
4) 형식적 신앙(삼상 28:3-7):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아감

4. 다윗(삼상 15장-삼하 24장) -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부분과 정치적인 부분에서 가장 균형잡힌 왕

다윗은 이새의 여덟 번째 막내아들이요, 양치는 목동이었으며, 보잘 것 없는 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 중 하나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찾아갔을 때 다윗은 아예 마음에 두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유명한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삼상 16:7)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도 오랜 기간을 왕으로 세움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삼상 17-18장)에서 골리앗을 죽이고 난 후에 사울의 질투로 인해 목숨을 건 망명생활에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이 기간을 우리는 다윗의 훈련기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울의 박해 아래 피난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다윗은 불안과 두려움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면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때 그는 아름다운 시편을 많이 기록하였습니다.

디윗의 장점
1) 다윗의 성품(삼하 1장) - 사울의 가정이 몰락되어 가는 것을 슬퍼하는 다윗의 위에서 그의 아름다운 성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적에 대한 연민의 정과 사랑으로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2) 하나님 중심(삼하 5-6장) - 다윗은 왕이 된 후 예루살렘을 정치, 종교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사울이 언약궤에 무관심했던 반면, 다윗은 통치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이 부분에 관심을 가졌고,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가져옴으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3) 다윗과의 언약(삼하 7장) - 다윗은 자신의 궁전을 지은 후 하나님의 궤가 아직 막에 그대로 있는 것을 민망히 여겨 성전을 건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린 까닭에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상 22:8; 28: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칭찬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이루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삼하 7:8-16).


다윗의 범죄(삼하 1 )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아 후궁으로 삼음

징벌을 받는 다윗의 태도 - 전적인 순종
● 언약궤 앞에서(삼하 15:25-26) 하나님의 처분에 맡김
● 시므이의 저주 앞에서(삼하 16:11) 저주를 받아들임

다윗의 고난과 하나님의 심판
1) 심판의 예언(삼하 12:10-14): 나단 선지자를 통한 심판의 예언
- 칼이 그 집에서 떠나지 않을 것
- 다른 사람이 그 처들을 범할 것
- 밧세바에게서 난 아들이 죽을 것
2) 다윗이 받은 심판(삼하 12:15-20:26)
- 빗세바가 낳은 아들이 죽음(12:15-18)
- 딸 다말이 아들 암논에 의해 강간을 당함(13:7-19)
- 셋째 아들 압살롬이 장남 암논을 죽이고 왕위를 탐냄(13:28-29)
- 압살롬이 왕위를 노리고 반란을 일으킴(15:12-14)
- 압살롬이 다윗의 처첩들을 공중 앞에서 강간함(16:21-22)
- 압살롬과 다윗의 전쟁으로 압살롬이 죽음(18:14-15)
- 다윗의 뼈저린 슬픔
이 기간 동안 다윗은 아름다운 시편을 기록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윗의 성품이 드러납니다.

5. 솔로몬(왕상 1 -11 장)


- 최고의 영화와 번영을 누렸으나 범죄와 우상 숭배로 왕국 분열의 원인을 제공
솔로몬은 부자로 태어났습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차를 좋아하는 것처럼, 그는 애굽에서 병거를 구입하였고, 아라비아에서 말을 들여왔습니다. 그의 말을 위한 마구간은 3만개나 있었고, 수영장, 여름 휴양지, 동계궁 등을 짓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스바의 여왕까지도 내방을 하여 솔로몬 궁정의 화려함을 구경 하였습니다(왕상 10장). 아내들은 지위의 상징이었는데 그는 700명의 후비와 300명의 첩이 있었고(왕상 11:3), 그 중에 많은 후비들은 정치적으로 얻은 후비들 이었습니다. 결혼을 통하여 이방국가들과 친화를 유지하였으며, 그의 가족과 궁중 요인들을 먹이기 위하여 하루에 백 마리의 양과 삼십 마리의 소가 필요하였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통치기간 중 이스라엘은 경기가 좋았습니다. 솔로몬 왕국의 명성은 전 세계의 화제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왕국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징용에 지치게 되었고, 관료제도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으며, 수도에 있는 관리들의 교만에 불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죽음과 함께 왕국은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왕국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영적인 면에서나 정치적인 면에서 일체감을 잃게 되고. 후에는 강대국의 군화에 짓밟히고 맙니다.

1) 솔로몬 성전 건립
솔로몬 왕은 B.C. 957년 모리아 산에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여 7년 만에 완공했다. 이 성전 건립에만 소요된 감독자가 3,300명, 동원된 인부가 10만 명이었다. 특히 두로 왕 히람 으로부터 일꾼과 건축자재를 받아 건축했는데, 길이가 60 규빗, 너비가 20규빗, 높이가 30규빗에 해당하는 건물이었다 (왕상 5장, 6장. 7 장: 대하 3장, 4장).
솔로몬 성전은 규모나 들인 노력, 아름다움 등에서 당시의 어느 건물보다 훌륭하게 지어졌다. 특히 거대하고 웅장한 기물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기물은 두로의 히람 또는 후람아비라고도 불리는 뛰어난 예기릅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그는 야긴과 보아스라는 길이가 23규빗(12m)에 이르고 머리에는 백합모양과 수 백 개의 석류로 장식된 거대한 기둥과 직경이 10규빗(5.2m), 높이가 5규빗 (2.6m), 둘레가 30규빗(15m)이나 되는 거대한 '놋바다' 도 만들었다..
또한 지성소 앞에는 금으로 장식된 백향목 제단이 있었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 가 보면 금으로 장식된 두 개의 감람목으로 만튼 거대한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의 높이와 펼친 두 날개의 길이는 모두 10규빗에 이르러 날개과 양쪽 벽에 닿아 있었고 언약궤는 그 두 그룹 사이에 있었다.

2) 솔로몬 성전의 파괴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도 헌납 된지 34넌. 솔로몬의 사망 후 불과 5년째 되던 해부터 성전의 영광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애굽 왕 시삭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성전의 보물을 무수히 몰수해 갔고(왕상 14:25-26) 다른 많은 사람들은 성전의 성물을 훔쳐가서 바알에게 바쳤다(대하 24:7).
시삭 왕의 약탈 후 수세기에 걸쳐서 신성모독 행위가 계속 되다가 216년 후에 유다 아하스 왕이 성전의 남은 보화를 앗수르 디글렛빌레셀 왕에게 뇌물로 바치고 다른 기물들도 자신 마음대로 처분했다(왕하 16:7-9, 17. 18: 대하 28:24-25).
마지막으로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성진에 남아있던 소수의 보물마저 모두 약 탈한 후 건물에 불을 지르고 만다(대하 36: 18-19: 왕하 24: 13, 25:9).

 

분열 왕국 시대

 

이제 하나님의 징계와 왕국의 분열이 예언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죽고 다음 세대 가 시작되었습니다. 솔로몬의 무거운 세금 아래서 고통 받던 백성들은 그 아들 르호보암이 세금을 경감하여 선정을 베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지혜롭지 못하게 노인들의 진언을 버리고 젊은이들의 제안을 따라 백성들을 위협합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르호보암은 18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통일왕국을 유지하려 했으나 선지자 스마야의 말을 따라서 포기합니다. 왕국분열의 이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유다 지파가 강성해 지파 간의 연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다른 지파들이 소외됨
2) 애굽의 왕 시삭이 솔로몬의 통치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후원하여 솔로몬 왕국에 반체제 세력을 강화시킴
3) 르호보암의 그릇된 야망과 백성들의 신임을 잃음

1 . 왕국 분열의 이유


솔로몬은 통일왕국을 다스린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이 됩니다. 그 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난 자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며 기도할 때, 지혜와 더불어 부와 영광을 약속 받았던(왕상 3장) 사람입니다. 봄에 성전 공사를 시작하여 7년 만에 완성 하여 하나님께 드렸던 그는 국방에서, 명성에서, 부에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영화를 누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이 땅에서의 명성과 부로써 평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우상 숭배자로 타락하였으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2. 북왕국 이스라엘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통해 세워졌습니다. 여로보암은 르호보암의 그릇 된 야망으로 돌아선 백성들을 규합하여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범하였고 계속되는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는 조상들이 심어 놓은 파멸의 열매를 거두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운명, 또는 한 나라의 운명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이 삶의 원리입니다.

1) 여로보암의 죄(왕상 12:25 - 14:20)
- 백성들의 마음이 유다로 향할 것을 두려워하여 새로운 제사법 제정.
-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벧엘에서 분향하는 왕을 책망, 아들이 병들었을 때 책망하며 파멸을 예언).

2) 오므리 왕조와 아합의 통치
수도를 '디르사' 에서 '사마리아' 로 옮기고 북왕국의 번성기를 열었던 오므리 왕과 그 아들 아합도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왕들입니다. 나라는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온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의 우상, 특히 아합의 왕비였던 이세벨을 통해 들어온 두로와 시돈의 우상 바알과 아세라를 음란히 섬기게 한 죄가 큰 왕들입니다. 오므리 왕조 시기는 군사적? 물질적 번영기간으로 안정을 추구하여 국제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적 타락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합 왕 시대가 가장 타락한 시기였다면, 동시에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하나인 엘리야의 활약이 가장 돋보이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7-21장 까지는 엘리야의 활약상이 나오는데,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홀로 선 자의 승리' 입니다. 그는 혼자인 듯 하나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과의 대결하여 이길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승리는 숫자에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엘리사(왕하 1-8장)는 은총의 선지자로 기적을 통하여 개인과 나라를 도운 사람입니다. 엘리사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스라엘의 요람 왕이 통치하던 시대로 이 당시 시리아의 침공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엘리사가 구해 주었지만 요람 왕은 감사하기 보다는 오히려 엘리사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엘리사는 구약의 예언자 중에서 가장 많은 이적을 행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3) 예후 왕조 - 선지자 요나와 아모스
예후는 개혁을 시도한 왕이었지만 그의 개혁은 불완전했습니다. 그는 바알 숭배를 심판하여 이스라엘의 요람과 이세벨, 아합 왕에 속한 자, 바알의 선지자들과 유다 의 아하시야 왕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금송아지 숭배를 계속했습니다. 성경은 그의 개혁이 종교적인 동기가 아니라 정치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왕하 10:29).
당시에 요나는 옛 왕국의 지경이 회복될 것을 예언했으며, 여로보암 2세에 의하여 그 예언은 실현되었습니다. :그 다음 활동한 선지자는 아모스입니다. 그는 사회정의가 서지 않은 나라와 도덕성이 없는 종교에 대한 심판을 말하였습니다.

4) 말기의 왕들과 호세아
북이스라엘의 말기는 정치적으로 무정부 상태이며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이때에 '사랑의 선지자' 라 불리는 호세아는 사마리아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예언했으며, 여호와께 돌아오면 용서하시리라는 복음을 끊임없이 선포했습니다.


3. 남왕국 유다

1) 파멸의 씨앗 - 정략결혼(왕하 8:16-24)
여호람의 정략결혼은 바알 숭배의 길을 열었습니다(북왕국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 결국 아달랴는 왕위를 찬탈하고 자신의 손자들인 왕자들을 모두 죽이고 바알 신을 퍼뜨렸다가 대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2) 파멸의 재촉 - 하나님을 버림
아하스는 미가 선지자와 이사야 선지자의 권고를 무시하고 바알을 숭배하고, 영적, 윤리적 퇴폐, 가나인 족속의 가증한 행위, 어린이 제사 등을 일삼았습니다.

3) 파멸의 보증 - 가장 악하고 반역적인 왕, 므낫세 (왕하 21 :1 -18)
므낫세는 개혁자 히스기야의 아들이었으나 극심한 우상 숭배로 유다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과 포로를 예고하였습니다 (왕하 21 :12-14).
4) 유다 말기의 종교개혁 - 요시야와 예레미야 (왕하 22:1 -23:30)
요시야는 개혁자로 종교 부흥을 시도하였습니다. 남왕국 유다에서 우상을 제하고 산당들을 헐어버렸습니다.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 지경까지 가서 정화 작업을 하였으며, 산당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우상 숭배자의 해골을 불살랐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마음 중심에서 회개치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끊는 가마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즉 재앙이 북에서부터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이틀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렘 1:13-14).

 

포로 시대

 

포로시대는 역사적으로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후 끊임없이 말씀 하신 것이 있습니다. 즉 "너희가 내 계약 백성이 되었으므로 나의 율례를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라."는 것이었습니다. 포로시대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특히 역대기는 포로가 된 후 이스라엘 역사를 다시 한 번 조명하고 있습니다. 열왕기가 역사와 정치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고 있다면, 역대기는 신앙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 것입니다. 다기 말하자면, 자신들의 포로생활이 일반 역사 가운데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일어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므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로시대는 단순히 징계 받는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로 기간 중에 유대 백성이 선민임을 다시 한 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집안의 왕권과 영광스러운 과거, 그리고 죄에 대한 심판을 알려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하여 성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의 회복은 성전 재건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는 눈 (열왕기와 역대기의 비교)


열왕기 역대기
왕들의 전쟁에 관심 - 정치적 관심 성전과 의식에 관한 기록 - 신앙적 관심
남북 왕조에 대한 기록 남왕국에 대한 기록
(여러 왕가에 대한 기록) (다윗 왕가에 대한 기록)

우리가 여기에서 보아야 할 것은 '파멸의 원인' . '하나님의 심판' . 그리고 '포로 생활의 현실과 의미' 입니다.

1 . 파멸의 원인 - 불순종의 결과

북왕국 이스라엘 (수도-사마리아)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점령당하였고, 남왕국 유다 (수도-예루살렘)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점령당하였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에서는 비슷한 역사가 되풀이해서 기록되어 있고, 그에 대한 해석이 뒤따릅니다. 열왕기하 17-25장에서 보듯이 우선 북왕국의 파멸이 언급되고, 이어서 남왕국 특히 성전의 파괴와 예루살렘의 함락 기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이 사건들을 해석하면서 두 가지를 강조하였습니다.


첫째. 책임은 이스라엘백성 자신들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분을 더디 내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번 경고를 받았었습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에게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시킬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단계에 가서 백성들은 손을 쓰려 하였으나 그들의 병은 너무도 깊어졌기에 아무런 효험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기도와 절기를 지킴도 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 '종교의식' 이 사회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 해결의 방법을 하나님에게서 찾지 않았습니다.
멸망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다른 민족과 군사동맹을 맺으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애굽의 군사력에 의존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야 와 같은 선지자들은 지도자들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 지도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너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강대하게 비치는 애굽 또한 하나님이 세우시고 버리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했어야 했습니다. 외국과의 동맹은 해결책 은 아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동맹을 배교 행위라고 힐책 하였습니다

2. 이스라엘과 유다의 파멸 - 하나님의 심판


선지자들은 그들의 하나님. 언약, 성전, 백성들. 그리고 그들의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이들의 마음은 탄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눈물로 배교와 반항, 불륜과 사회 부정의 무서운 결과를 정지 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국은 무너지고 왕자들은 쇠사슬에 매여 끌려가게 될 갓입니다. 똑똑하고 건강한 백성들은 병거에 묶여 짐승처럼 포로로 잡혀갈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불바다가 되고 폐허가 될 것입니다. 경제가 파탄나고 솔로몬과 다윗이 정한 장소에 세운 성전도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 희망의 메시지: 만약에 너희가 회개하고 악에서 떠나 하나님께 순종하면 .,,
● 심판의 메시지: 그러나 만일 너희가 회개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시대에 따라 구분한 선지서
● 포로이전
이스라엘에게: 호세아, 아모스
유다에게: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요엘, 미가, 하박국. 스바냐
앗수르에게: 요나. 나훔
에돔에게 : 오바댜
● 포로기
바벨론에서 : 에스겔, 다니엘 (다니엘은 묵시문학으로 구분)
● 포로후
포로 귀환자들에게: 학개. 스가랴, 말라기
1) 북왕국 이스라엘의 패망(주전 722) - 앗수르에 의해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의 설교와 예언에 따라 앗수르 군대가 지중해 연안을 따라 진군하여 내려왔습니다. 수도 니느웨를 본거지로 한 앗수르는 세계를 정복하려 하였고. 대부분의 근동지방을 통일하여 제국을 건설 하였습니다. 결국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독립을 잃었습니다.
예언한대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급들과 기술공들은 앗수르 제국 각 곳으로 잡혀갔고, 앗수르 제국의 각 곳으로부터 수천 명의 다른 민족이 이스라엘 땅으로 옮겨왔습니다. 이것은 결혼을 통한 혼합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는데, 이스라엘의 민족적 자부심을 깨뜨리고 앗수르 왕국을 통일하고자 하는 목적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만백성의 주님 되신 하나님께서는 이방민족들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앗수르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2) 남왕국 유다의 패망(주전 586) - 바벨론에 의해
남왕국 유다는 앗수르에 조공을 바침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외부의 압력이 다소 약화되자 유다 왕 요시야는 중요한 종교개혁을 추진합니다. 성전 수리 중 발견된 율법서의 말씀을 듣던 요시야 왕은 크게 감동되어 예배의 순수성을 부활시키고, 왕국의 정직성을 유지하고, 사회법규를 제정 하였습니다 (왕하 22-23장). 요시야 왕은 제식 매춘행위를 폐지하고 앗수르인과 바벨론의 별 숭상 및 동물숭배를 금지시켰습니다. 또한 유월절을 다시 지키게 하고 모세의 율법을 재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바벨론의 세력이 강해지고 주전 609년 요시야 왕이 죽자 유다는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때에 다가올 하나님의 심관을 예언했으며 그 심판으로서 의 포로생활을 예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예언의 내용은 '바벨론의 침략은 유다 의 영적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므로 받아들이고. 포로생활까지 감수하라 ? 다만 회개하는 마음으로 포로생활을 하다보면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그 기간이 70년 일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주젼 597년에 여호야긴 왕과 지도자 들이 I차로 포로가 되었고, 주전 586년에는 시드기야와 지도자들이 2차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3. 포로생활의 현실과 의미 - 영적 유익과 각성

1) 현실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 왔다는 사실은 유다 백성에게 신앙 의 큰 혼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위가 영원하리라는 말씀에 따라 자신들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잡혀온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그곳에서 자신의 신앙을 다시금 조명해 보아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왔지만 다른 전쟁포로와는 달리 심한 노역을 하거 나 고역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을 잡아온 목적이 노예로 삼기 위해서가 아닌 반란을 막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 이것을 잘 설명해 줍니다.(왕하 25:27-30) 유다 백성들은 비록 포로생활을 했지만 어느 정도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영적 갈망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시온은 망하지 않을 것이며 영원할 것 이라고 부르던 시온의 노래는 이제 이방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편 137편은 영적인 회복을 갈망하는 그들의 모습을 잘 나타냅니다.


2) 의미
포로생활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가치관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포로생활은 타락한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자신들의 신앙을 정 화하는 하나님의 연단의 과정이었습니다. 포로생활을 통해서 그들의 신앙에는 새로 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① 성전회복에 대한 갈망
② 하나님의 관점에서 역사와 신앙을 이해하기 시작함
③ 하나님의 언약과 긍휼을 배움
④ 흩어진 백성들의 회당중심의 생활
3) 희망
이스라엘 민족은 잘린 나무처럼 될 것입니다.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 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사 6:13). 하나님의 목적은 파괴에 있지 않고 징계에 있습니다. 그들을 전멸시키는데 있지 않고 그들을 정결케 하여 구원하자는 데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 한 자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징벌이 이루어실 때에 구원의 손이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전과 같지 않으십니다. 성전은 무너져도 하나님 은 살아계십니다. 약속된 땅은 황폐케 되어도 약속의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그들을 다스리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흩어지고 죽어도 남은 자(Remnant)가 그루터기가 되고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재건됩니다.
"??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사 28:16).

포로생활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욱 정련되는 연단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회복될 수 있었던 것은 주의 인자와 자비가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포로 귀환 시대

 

이스라엘이 바벨론 왕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엄중한 심판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인과응보의 법칙에 대한 전형적인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역대하 36:17-20). 이제 이스라엘은 새로운 시대(포로시대)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그 백성을 기억하시고 은총을 베풀어서 포로상태에서 회복시키십니다. 이 회복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메시아를 통하여 그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회복의 역사는 , 3차에 걸친 포로귀환과 함께 진행됩니다. 또 한 포로귀환과 함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 사건이 함께 진행됩니다.
; 1차 귀환과 성전 재건 (에스라 1 - 6장) - 스룹바벨
; 2차 귀환과 개혁 운동 (에스라 7 - 10장) - 에스라
; 3차 귀환과 성벽 재건 (느헤미야 1 - 7장)- 느헤미야

1 . 포로귀환


포로귀환의 역사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른 결과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정세의 변화를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바벨론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셨지만 징벌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당신의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셨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벌은 또 다른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징벌이 하나님에게서 왔듯이 위로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의 종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재확인하신다. 죄의 값은 지불되었고 수립되었다(사 42: 1-4). 모세가 홍해를 건너고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던 아름다운 광경을 회상하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약속을 하신다. 그리고 이제는 화해가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되심을 재천명하신다.

바벨론의 타락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바사(페르시아)제국 고레스의 등장으로 바벨론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바사의 고레스는 유다 포로들을 관할하면서 포로 귀환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것은 바사의 새로운 정책에 의한 것으로, 피지배 민족의 본국 귀환과 그들의 종교를 장려한 것입니다.
백성들의 귀환은 고레스의 칙령이후 세 차례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바벨론에 정착을 시작한 백성들은 새롭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공동체를 재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민족 지도자들의 열심을 통해서 백성들은 귀환하기 시작했고. 귀환한 백성들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과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통해 회복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건축하고 다시 재건하는 일은 하나님을 향해서 무너진 그들의 신앙을 바로 세워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2. 1 차 귀환과 성전 재건 (스 1 - 6장)

고레스 왕의 칙령 이후 고국으로 돌아온 백성들의 현실은 암담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은 고국의 언어를 잊었으며 많은 혼혈아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혈통을 강조하며 선민의식을 가졌던 이 백성에게는 이러한 현상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먼저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재건은 스룹바벨과 학개, 스가랴 선지자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성전 재건은 다리오 왕 6년에 봉헌하게 되는데 이 성전을 제2성전, 혹은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 성전의 모양은 솔로몬 성전께 비해서는 매우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3. 2차 귀환과 개혁운동 (스 7-1O장: 느 7-1O장)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영적인 개건에도 힘을 썼습니다. 에스라는 아론의 16대 손 으로 율법에 익숙한 학사겸 제사장이었고. 말씀 부흥에 사명을 가진 자였습니다. 2차 포로귀환은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 기간 중 에스라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성전이 완공된 후 58년이 지난 후로 포로 귀환자들이 영적으로 타락한 기간이었습니다.
학사 에스라는 성전과 성벽의 재건 못지않게 내적으로 무너진 백성들의 영성 재건이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에스라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 백성을 회복시킬 수 있음을 확신하고 말씀으로 영적 각성운동을 전개해 갔습니다.

4. 3차 귀환과 성벽재건 (느 1 - 7장)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의 술 맡은 고위 관원이었습니다. 당시 근동지방의 풍습에 의하면 술잔을 맡긴다는 것은 목숨을 맡기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당시의 정세는 권력의 투쟁과 음모가 상존하고 있어서 독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술관원 이었다는 것은 그가 대단히 높은 자리에서 왕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왕궁의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자원하여 유대 총독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이로써 그는 제 3차 포로귀환과 예루살렘 성벽재건이라는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미 예루살렘에는 이방인과 예루살렘의 재건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지만 느헤미야는 용기와 지혜로 이들을 물리치고 52일 만에 성벽을 완성하였습니다. 성벽의 완성은 이 공동체의 회복과 영성회복에 대한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5. 느헤미야의 지도력

느헤미야는 2차 포로시대에 돌아와 에스라와 함께 개혁을 단행했던 지도자였습니다. 느헤미야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공동체를 회복해 가는 하나닝의 열심과 지도자로서의 느헤미야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무너진 공동체를 보고 아파한 지도자(느 1 장)
느헤미야는 왕궁의 술관원으로 있으면서도 늘 고국의 형편들 물었으며 그 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2) 공동체 회복과 개혁을 단행한 느헤미야(느 2 - 13장)
① 기도와 준비(2장) -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왕에게 필요한 도움을 일목요연하게 요청함으로서 규모 있게 사역을 진행하였습니다.
② 원인과 상황을 살펴보고 동역자를 격려함(2장) - 직접 무너진 성읍을 돌아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을 격려하였습니다.
③ 팀으로 사역함(3장) - 느헤미야는 성벽의 건축 부분을 모두에게 골고루 할당하고 함께 팀의 형태로 사역을 진행해 갔습니다. 그리고 협조하지 않는 내부의 적들 즉 귀족들을 통합해 갔습니다.
④ 모범을 보임(3장) - 느헤미야는 성벽의 한 부문을 자신이 직접 맡음으로 사역에 있어서 지도자로서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⑤ 적의 공격에 대하여 대처함
; 적의 공격유형 - 내부 분열을 조장함, 사기를 꺾어 놓음, 공격하려고 함. 지도자를 시해하려고 함
; 대처 방안 - 하나님께 간구함, 백성들을 격려함, 조직을 정비하여 공격에 대한 방비와 더불어 사역을 진행해 감
⑥ 부서져 가는 가정을 살림 - 포로 이후 가난으로 인해 자녀를 종으로 내줘야 하는 일들이 발생하여 공동체의 분열이 가속화 되었을 때 이자 받는 제도를 개혁하고 일정량을 돌려주게 함으로써 가정을 보호하였습니다.
⑦ 토색하지 않음(5장) - 자도자로서 마땅히 받을 수 있는 녹을 받지 않고 남의 것을 토색하지 않으며 청렴결백 하였습니다.
⑧ 사역을 나눔 - 성벽 건축이 완성된 이후 필요한 자리에 사람을 세움으로서 건설 이후의 유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⑨ 신앙의 부흥을 주도함(8장) - 학사 에스라와 함께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했으며 이방인들을 멀리하게 했습니다.
⑩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언약 위에 견고히 세움(9장 이후) -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키고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스스로 맹세하는 의식을 갖게 함으로 공동체를 바로 세워갔습니다.
⑪ 분리함(13장) - 언약 백성 가운데 섞여 있는 이방 민족들을 분리해 냄으로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해 갔습니다.
⑫ 안식일과 십일조와 절기를 바로 세움(13장) - 말씀대로 바로 살게 하기 위해 성경대로 레위인들에게 드릴 십일조를 드리게 했으며, 절기와 안식일과 십일조를 바로 드리게 했습니다.

♥ 이 성전과 성벽의 건축이 마무리 되고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약 40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이 태어나서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동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태어 나셔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사 의인으로서 죄인을 대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제사는 사라지고 성령과 교회의 시대가 열리게 되고 온 세상의 모든 민족을 향하여 이 복된 소식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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