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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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에 대한 초기 자료는 모세가 법정에서 간음한 혐의가 있는 여인을 재판하는 규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규정에 의하면 제사장이 형벌을 선언하고 그 여인으로 하여금 '아멘, 아멘'하고 대답하게 하였다.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로 붓게 하고

네 넓적 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민5:22)

혐의가 있는 여인이 선언된 그 징계에 동의하는 수단으로 "아멘"으로 대답하게 하였다.
이것은 능동적인 아멘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수동적인 아멘이다.
그리고 직접적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율법을 기준으로 한 법정에서 인정심문과도 같은 행위였다.
상대방이 범죄 했으니 그에 따른 죄과를 부여해도 다른 의의가 없음을 시인하게 하는 약속행위였다.

구약성경에서는 여러 가지로 사용되었지만 몇 가지로 구분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야기하는 사람 자신의 말이 진실함을 보여주는 경우에 말머리에 사용하였다.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왕께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 또 여호와께서 내 주 왕과 함께 계심같이 솔로몬과 함께 계셔서 그 위를 내 주 다윗 왕의 위보다 더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아니라"(왕상1:36~37)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되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내 예언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다시 옮겨오시기를 원하노라"(렘2:6)

그러니까 화자가 하는 말이 진리이고 한치도 그릇됨이 없는 사실인 경우에 말 앞의 말머리 처음에 사용하고 잇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화자가 말하는 말이 그만큼 중요하고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는 그 내용이 신뢰할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2) 두 번에 사용된 경우(구약에 전체 5번 사용됨)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로 들어가서 네 배로 붓게 하고 제 넓적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민5:22)

"에스라가 광대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느8:6)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지로다 아멘 아멘"(시41:13)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 지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 지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요하다. (시72:19)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 지어다 아멘 아멘 (시89:52)

선포되거나 자신의 말에 대해 '아멘 아멘'으로 화답한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 반복 사용의 저의는 강조, 그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맹약이나 맹세를 의미한다.

철저한 신뢰, 철저한 약속, 절대적 경배를 말한다.

특이한 것은 시편이 총5권으로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제 1권은 1~14:13(아멘 아멘), 제 2권은 42~72:19(아멘 아멘), 제 3권은 73~89:52(아멘 아멘),

제 4권 90~106:48(아멘 아멘), 제 5권 107~150:6(할렐루야)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께 노래한 찬양 말미에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3) 하나님께 드려지거나 선포되는 메시지에 대해 화답하거나, 기도 및 축도 후에 회중이 창화를 하는 경우에 사용되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 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대상16:36)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 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시106:48)

"에스라가 광대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느8:6)

 

 

신약에 와서도 대부분의 구약의 경우와 비슷하게 사용되었으나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사용되었다.

(1) 예배의 요소 중에 기도, 찬송 뒤에 또는 처음에 썼다.(마31회, 막14회, 눅16회, 요25회)
주기도문(기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아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13)

찬양 화답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도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딤전1:17)

기도나 찬송 뒤에 아멘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드린 것이 확실합니다, 나도 동의하고 함께 찬양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나도 바랍니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경배에 대한 화답으로 "나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동조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의 깊은 속에서 나오는 신앙 고백의 동의 표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철저히 말씀 앞에 굴종하는 경배 행위인 것이다.

(2) 바울의 경우
바울의 경우에는 서신서의 결미어에서 또는 축복으로 즐겨 사용하였으며, 하나님에 대한 묘사와 관련하여 특수하게 사용하였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는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롬1:2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9:5)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1:20)

하나님은 마땅히 찬송 받으실 분이십니다. 진실입니다 확실합니다. 찬송합시다 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3) 요한의 경우 - "예수님 자체가 아멘이다."

구약의 경우에는 하나님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경우가 2곳이 있는데(사65:16),

신약에 와서 요한 사도는 한발 더 나아가 '아멘' 자체를 인격화해서 예수님 자체가 아멘이라고 표현했다.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아멘)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아멘)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앞에 숨겨졌음이니라. (사65:16)

아멘을 요한복음에서는 25번이나 사용하였고 다양한 방법으로 아멘을 9번이나 사용하였으며 계시록 말미에서는 자신이 인격화하였던 그 아멘이 어서 오시어 달라고 하면서 마친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요한이 '아멘'을 인격화하여 '예수님 자체가 아멘이다'라고 선언한다.

요한사도의 이 아멘을 인격화 한 것은 요한의 신앙 고백이며 영적인 요한의 깊은 복음에 대한 비밀을 그대로 묘사하여 확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실 예수님이 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멘' 자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아멘(진실, 확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고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4) 예수님 자신
예수님은 특이하게 자신의 말씀 앞에 반복해서 2번씩 사용하였다.

이것은 당시 헬라문화적 배경에서 아멘 사용은 계약을 맺을 때 '내가 꼭 지키겠습니다', '못 지키면 내 손에 장을 지지십시요'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러나 반복해서 두 번 사용하는 것은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만약에 못 지키면 목숨을 내놓겠습니다.'라는 뜻으로 사용했다고 한다.(페트라 연구원 김선기 목사, 침신대 교수).

그러니까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확실한 진리이니 '그대로 꼭 믿어도 됩니다.'라는 의미로 쓰여졌다. 주님은 그 약속을 철저히 지키셨다.

자신이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오셨다고 아멘 아멘 하셨는데, 그 약속을 생명까지 던져 주시면서 까지 확증해 주셨다.

우리는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 우리 손에 들어온 성경이 얼마나 확실한 진리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주님이 생명을 던지기까지 하시면서 진리라고 하셨던 그 약속이다.

그것을 의심 없이 확실히 믿는 것만이 구원이다. 단순하게 믿는데는 우리의 이성이 구차한 방해거리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이 생명까지 던져 주시면서 진리라고 외친 말씀을 , 그리고 자기 자신이 구원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고 '아멘'으로 화답하여 영광 돌리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20:28)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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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에 대한 성서적 이해

 


- 바로 사용해야 할 예배 용어 -

 

한국교회는 아멘의 신앙을 가진,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교회라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도 예배시에 할렐루야, 아멘을 부르는 교회들도 있지만,
한국교회만큼은 아니고, 무엇보다 대중기도시에 아멘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신식교회라 해도 대중기도시에 아멘 아멘
하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리고, 기도 끝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하면 온 회중이 큰 소리로 "아멘"한다. 그런데, 미국 교회는
대중기도 끝에도 아멘하는 사람이 없다. 기도자 혼자만 "아멘"하고
만다. 그것은 기독교 문화의 차이겠지만, 대중기도 끝에 모든 회중이
한 음성으로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전통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한편 아멘에 대한 넌센스도 적지는 않다.
어떤 설교자는 설교시간에 청중의 아멘을 요청하기도 하고. 어떤 부흥사는
한시간 설교에 수십번 청중의 "아멘"을 유도하기도 한다. 

"믿습니까?” "아멘입니까?" 하면, 대접상 그저 아멘하는 사람도 있고,
아멘 소리가 적으면, 강사는 다시 묻는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영락없이  아멘 소리가 커진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설교시간에
딴 생각을 하거나, 졸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효과가 크다.

뿐만 아니라 아멘을 바로 이해하고, 바로 사용하면  아멘 소리가 클수록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아멘은 하나님의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흥사가 아멘을 난발하거나 장난끼가 썩인 음성으로 아멘을
유도한다면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요4:23, 24) 앞에 불경죄를 범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아멘이 무엇인가?>

'아멘'은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원입니다.'라는 뜻을 가지며, 
'의지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아만'(aman)에서 파생된 부사로
구약시대부터 예배용으로 사용되어 왔다.(신27:15, 고전 14:16)

<아멘은 언제 사용하는가?>

1. 말의 어두에 사용되어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 동의와 약속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왕상1:36).
2. 아멘 자체만으로 사용되어 진실에 대해 맹세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민 5:22).
3. 기도나 찬양의 마지막에 사용되어 그 내용과 같이 이루어지기를 원할 때
   사용되었다(대상16:36).
4. 편지(메세지)를 끝맺을 때에 축복의 말과 함께 사용되었다(갈6:18).

5. 예수께서 자신의 말을 확언하고 강조할 때 사용하셨다(마5:18).

6.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구원
   약속의 성취임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계3:14).

<아멘을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은 누구인가? >

아멘의 원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다.

이성호 목사의 "성구대사전" (서울:혜문사), 546쪽)에 보면,
'믿음' 혹은 '믿으니'는 히브리 말 '아만(aman)'의 히필(hiphil)동사이다.
히필동사를 사역능동태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내 스스로 믿는 게 아니고, 
믿음의 대상이 나로 하여금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함으로 믿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아멘이다. 아멘은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과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아멘은 내가 스스로 믿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믿게 하신
것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과 이를 성취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使役)에 대한 인간의 응답(response)이 곧 아멘이다.

바울의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사상(롬1:17)도 바로 이 아브라함의
'아멘'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절)

여기 본문에 나오는 '믿으니'(heemin)는 히브리어 '아만 aman' 동사의
사역능동태(Hiphil)인데. 아멘이라는 믿음은 아브라함 스스로가 믿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믿게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본문 전후 문맥을 보면 하나님은 무자한 노인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약속하셨다. '네 자손이 저 밤 하늘의 별같이 되리라' 하셨다.

이 세상에서 이 이상의 더 기쁜 소식은 없다.  이것이 복음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고, 없는 데서 있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믿게 하셨다.
따라서 이 믿음이 곧 기독인의 믿음이 되어야 하고, 이것이 아멘의 기본이다.

출애급기에도 '아멘'에 대한 실례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넌 후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다'는 기록이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에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급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급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출14:30, 31).
즉 하나님께서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셨고, 이스라엘이 그것을 친히
보았음으로 여호와를 믿고 모세를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때의 '믿었더라'는 말도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말과 같은 어근(aman)
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오늘날  부흥사가 강단에서 아멘을 강요할 일이 아니고.
먼저 청중이 믿을만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에
스스로 마음에서 아멘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멘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요, 말씀의 응답이다. 
결코 설교자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아멘과 함께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할렐루야'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Praise The Lord)는 것이다.
아멘은 하나님에 대한 응답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단이다.
결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유다 마카비어스'의 마지막 합창에 '할렐루야 아멘'
이라는 곡이 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주로 세속적  음악을 작곡한 헨델이 '메시야'는 물론 '할렐루야 아멘'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분명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 위대한 성곡의 결론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의 모든 결론이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아갈 때에 그 모든
영광은 다시 영원한 축복으로 인간에게 되돌아 온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할렐루야 아멘으로 화답해야 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 Amen(αμην) ☆

 

아멘에는 하나님의 아멘이 있고 크리스천의 아멘이 있다. 성도가 기도가 끝날 때 일제히 “아멘”이라고 하면 그 뜻은 “그렇게 되어지이다.” 혹은 “진실로 그렇습니다.”의 뜻이다. 원래 어원적으로 음미하면 신앙의 확실성이며 “음성으로 기도한 그분과 나는 연합하여 있습니다.”의 서약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멘은 "약속에 신실합니다."의 의지를 말한다. 기독교의 해석은 “Amen of God is Jesus Christ" 즉, 하나님의 아멘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사상이다.

그런데 신약을 읽으면 놀라운 사실에 부딪치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기도의 끝이 아니라 그 말씀의 처음에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멘은 우리말로 ”진실로“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그것은 정확한 번역이 아니라. 이 ”아멘“이라는 말이 앞에 나옴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신적 자기 선언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뜻밖에도 두려운 사실로 요한복음의 경우에는 ”진실로 진실로“(아멘 아멘)라고 두 번 이중적인 강조법에 의해서 앞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어떤 랍비나 예언자나 교사에게 들어보지 못한 신탁의 선포형식인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타자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요한복음에 의하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고백한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하나님과 동등함을 아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자기 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요한복음에서 읽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한복음 전체에 줄기차게 흐르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선언이다. 6:35에 나오는 ”나는 생명의 떡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하나님 선언이다. 8:12, 9:5에 나오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10:7의 ”나는 양의 문이다“, 10:11의 ”나는 선한 목자이다“, 11:25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그리고 도마가 ”나는 나의 길을 모른다“고 한 것에 대한 답변으로 주신 말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에도 “εγω ειμι”가 나온다. 15:1의 “나는 참 포도나무”를 비롯한 그 밖의 요한복음을 단번에 읽어 나가 그 역사적인 충격을 느끼는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명한 인식으로서 말씀하시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George Frideric Handel, "Hallelujah Amen"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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