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산의 역사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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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종으로 인한 에덴축출>

 

하나님께서 동방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창 2:8~9) 지으신 사람에게 복을 주셨으나(창 1:28) 사람이 결코 먹지 말라는 선악과 법(창2:17)을 범하여 원수가 생겼고(창 3:15) 땅은 저주를 받게 된 것(창 3:17~)이 창세기가 말하는 에덴동산의 타락과정이다.

이제 한 사람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에덴황폐가 한 사람 예수로 인해 복구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이삭을 하나님에게 제사 하려던 산

 

창 12:1~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는 언약을 세우신 후,

창 22:1~ 모리아산에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고 천하만민(天下萬民)이 복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백성의 인구수를 조사하여 교만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다윗왕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는데,하나님은 3일간 내리기로 했던 전염병을 하루 만에 그치셨습니다(16).

하나님께서 이 재앙 내리심에 대해 ‘뉘우쳤다’는 표현은 ‘스스로를 위로하신다’라는 의미로, 이것은 공의의 심판을 충족시킬 방법을 인간에게서가 아니라 당신 스스로에게서 찾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거두신 것에는 다윗의 회개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하루에 7만 명이 죽어나가는 심판 앞에서 다시 한번 교만의 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깨달았고, 백성들 대신 자신과 자기의 집을 쳐 달라고 매달린 것입니다(17).

한편, 하나님은 선견자 갓을 통해 재앙을 완전히 그치게 하는 방안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18).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이며(창 22:2), 솔로몬 때에는 성전의 터가 되었으며(대하 3:1),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진 곳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공의의 심판을 만족시키고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임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 사무엘하 24장16절~25절 말씀

 


다윗의 대가 지불


아라우나는 다윗 왕으로부터 재앙을 그치기 위해 자기의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으려 한다는 말씀을 듣고는 땅은 물론, 제사에 필요한 모든 제물과 땔 나무를 무상으로 바치겠다고 고백했습니다(22).

그는 비록 이방인이지만 다윗 왕을 존경했고, 여호와를 향한 헌신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23). 하지만, 다윗은 이 같은 아라우나의 호의를 정중하게 거절하고 타작 마당과 소를 사기 위한 정당한 대가를 다 지불하였습니다(24).

그리고나서 다윗은 그곳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땅에 내리는 재앙을 그치셨습니다(25).

 

여기서 우리는 구원에는 반드시 자기의 대가 지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는 그것 자체로 넉넉합니다. 또한, 다윗이 지불한 오십 세겔이 재앙을 그치게 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을 위해 지불하는 대가는 우리가 기대하는 구원의 진실성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성과 솔로몬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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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산 제사

모리아산 - 다윗성(예루살렘)

모리아산 - 솔로몬 성전

 

이 모리아산에 다윗이 나라를 건설하여 33년간 통치하였고(삼하 5:4~10), 솔로몬도 이 모리아산에 성전을 건축하였다(대하 3:1~5).

바벨론 70년 포로생활 후 스룹바벨이 돌아와 성전을 재건한 것도 바로 이 자리이고, 말 1:10~ 성전 문 닫고 (430년만에) 세례요한이 등장하여(눅 16:16) 구약의 약속대로 구주 예수를 소개하였으며 이 예수가 십자가로 승리하신 곳도 바로 골고다 언덕 곧 모리아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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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의 머릿돌

모리아산 제사의 완성 = 골고다 제사

 

예수님만이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셨고(사 53:10), 또 새 일을 성취하실 분임을 알진대, 구약 아브라함에서부터 이어져 예수에게서 완성되는 이 시온산(모리아산)의 축복는 너무도 귀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구약의 모리아산은 참 형상이 아니요(히 10;1), 오직 예수님에게서 완성되는 것만이 진정한 모리아산의 족보요, 아브라함을 모리아산으로 불러 독자(이삭=예수)를 바치라는 제사를 명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경륜과 모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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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역사

* BC 959년 솔로몬 왕 건축

* BC 586년 파괴(바벨론 느부갓네살 왕)

* BC 515년 재건(스룹바벨)

* BC 20년 경 (헤롯 대왕 증축)

* AD 70년 파괴(로마의 티투스 장군)

* 주피터 신전을 세움(로마)

* 비잔틴 시대 - 기독교 건물로 사용함.

 

AD70년 로마에 의해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졌으며 (마24:2)

 

이슬람교도 또한 이곳을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엘을 바치려한 곳으로 숭배하는데

지금은 아예 성전이 재건될 수 없도록 이슬람의 황금사원이 세워져 성전재건이 불가능한 상황이며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성지이자 갈등의 장소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성전재건

 

마태복음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데살로니가후서2: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다니엘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며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위의 말씀들과  지금의 현지 이스라엘이 제3성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볼때에  성전이 다시 재건되며

적그리스도가 출현함을 예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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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에덴

타락을 마지막 아담 예수님의

순종으로 복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예수님의 재림

 

 

 

  예수님이 재림은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곳이요(슥14:4, 행1:11)"로 보아 감람산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계시록 14:1에는시온산에 십사만사천인과 함께 서  있는것으로 보아 성전을 중심으로한 예루살렘에서

천년왕국이 시작되지 않나 짐작해 봅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나 어디까지나 저의 한 견해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1)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
행 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2)모든 사람들이 볼수 있게 임한다
계 1:7-8,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시록 20장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사람들의 혼들도 보았는데, 그들은 그 짐승에게나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 위나 손에도 받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을 살면서 왕노릇하더라” (4절-킹 제임스 역).

 

 

 

 

 

∴ 모리아산 = 시온산성터 = 성전산 = 골고다언덕의 공식에는(아래와 같이 논란의 있습니다)

 

 

 모리아 땅 : 아브라함이 명령을 받았을 때 살았던 지역인 브엘세바에서 사흘 길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그곳의 정확한 위치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예루살렘'이며, 사마리아인들의 전통으로는 '그리심 산'이라 전해집니다.

그러나 대하 3:1에 따르면, 솔로몬 성전이 모리아 산에 건축되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나타나셨던 산도 모리아 산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지시되었던 '모리아 땅'과 동일한 곳이라고 보여집니다.

 

 

 

 

시온산

처음에 시온산은 황금사원이 있는 성전산과 그 아래 다윗성을 의미하였다가

구 예루살렘을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이후 구 예루살렘 성밖 마가다락방쪽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시온산은 봉오리라는 뜻을 가졌고, 문맥에 따라 주의종, 교회, 성도 의 의미를 갖는다.

예루살렘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육으로는

나사렛 동쪽 다볼산 남동쪽 약 25Km지점 또는 아윤 에쉬 샤인, 혹은 시린으로 추정한다.

예루살렘 남서쪽 해발 765m의 언덕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시온은 처음에 기드론-두로베온 골짜기 사이에 솟은 절벽으로 된 남쪽 봉우리 였다.

후에는 예루살렘 동쪽 능선 전부를 시온이라 부르다 그 후에는 예루살렘 전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1, 시온이 예루살렘 전부를 지칭하는 변증.

본래 예루살렘의 기드론과 두로뵈온 두 골짜기 사이에 솟은 절벽으로 된 남쪽 봉우리

그 후에는 동쪽 등성이를 시온이라 불렀고 예루살렘을 시온 성이라 불렀다.

시편 126편 1절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이사야 1장 26절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시온을 두고하신 말씀 27절)

이사야 10장 24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뭉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2, 다윗이 수도로 삼고 정치적 중심지로 만들고, 법궤를 옮겨 종교적 중심지로 삼았다.

사무엘하 5장 6-9절 다윗이 여부스사람을 치고 시온 산성을 빼앗아 다윗성이라 부름

역대상 11장 5절 여부스 토인이 다윗에게 이르기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

다윗이 시온산 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사무엘하 6장 12-18절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옴

열왕기상 8장 1절과 역대하 5장 2절은 같은 내용으로 사무엘하 6장과 비슷한 내용임


3, 시온은 "거룩한 산""여호와의 산으로 불렀고" 시적 표현으로 사용

시편 2편 6절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시편 9편 11절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시편 24편 3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편 48편 2절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산이 그러하도다

시편 69편 35절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 거하여

소유를 삼으리로다

시편 76편 2절, 시편 132편 13절, 시편 133편 3절

이사야 2장 3절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이사야 3장 16절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이사야 4장 3절, 이사야 52장 1절, 이사야 60장 14절 등등

4, 시온의 딸이란 말은 예루살렘 주민의 시적 표현

시편 9장 14절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이사야 1장 8절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사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아가 3장 11절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스가랴 2장 10절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


 

5, 신약에서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으로 상징

히브리서 12장 22절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요한계시록 14장 1절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시온산은 사방 어디에서 보아도 잘 보이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구약성경에서 처음 사용되는 곳은 예루살렘의 가나안 원주민이었던 여브스족이 머물던

"시온산성을 다윗이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라 " (삼하 5:7, 왕상 8:1) 일컬어졌다.

지형적인 의미에서 '시온'과 예루살렘, 그리고 성전의 산이 각각 구별되기도 하였다 (미 3:12)

그러나 시온은 넓은 의미에서 예루살렘 전체를 지칭하기도 하였으며 (사 2:3, 33:14, 요엘 3:5),

'시온의 딸' (사 1:8, 30:16, 아 1:5),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 (사 10:24, 51:11),

'유대백성' (사 51:16, 59:20), '성전산','시온에 거하는 하나님' (요 4:17, 시 20:3) 등.

 

그런 점에서 '시온산'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의 이룩된 대전환점은 다윗왕 때로써 왕권의 형성과 성전의 건축으로 인한

종교제도의 확립을 통해서 이룩한 변화를 지적할 수 있다.

이때 계약의 내용으로 허락한 것이 땅과 집이다. 이 계약이 행해진 곳이 곧 예루살렘, 시온성이었다.

다윗의 무덤과 역대 왕들의 무덤이 바로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왕상 2:10, 느 3:16, 행 2:29)

 

 

 

 

성묘교회 예수님무덤의 역사적 진실성(모리아산과 골고다 언덕)

 

모리아산이 골고다 언덕과 같은 곳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고 다음의 경우가 신빙성이 더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십자군이 1099년 예루살렘 도착 38일 만에 예루살렘성 탈환

1099년 6월 7일 예루살렘에 도착한 십자군들은 성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부족한 물과 식량, 그리고 더위 때문에 십자군들은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성을 공격하고자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 달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을 공략할 수 없자 7월 6일 아침 십자군의 한 사제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3일 동안 금식을 하고 9일 동안 맨발로 예루살렘 성 주위를 돌 것을 제안했다. 그 사제는 요단강을 건넌 여호수아의 군대가 여리고 성 주위를 돌고, 7일째 성벽이 무너진 기적을 다시금 재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러한 제의 행렬과 함께, 멀리 사마리아 산지에서 운반해 온 목재로 공성용 장비들을 보강했다.

7월 10일 잘 만들어진 3개의 공성용 탑이 북쪽 성벽과 시온산 근처에 설치됐다. 1만 2천명의 보병과 1300명의 기병들로 구성된 십자군은 7월 13일 밤 본격적인 성 공격을 시도했다. 쏟아지는 대포알과 불화살을 뚫고 14일 밤 공성탑을 성벽 가까이에 접근시키는데 성공했다.

 

예수님무덤이 450년만에
이교도의 손에서 기독교인들의 성지로 회복됨
마침내 서기 1099년 7월 15일 아침, 예루살렘은 함락됐다. 십자군들은 눈물을 흘리며 골고다의 성묘교회로 들어가 예수님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서기 638년 예루살렘이 이교도의 손에 들어간지 450년 만에, 예수님무덤이 다시금 기독교인들의 성지로 회복된 것이다.

동굴무덤이 아니라, 건물 원형 광장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골고다 성묘교회가 과연 역사적 신빙성이 있을까?

오늘날 골고다를 찾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예루살렘 성 내부의 복잡한 골목과 붐비는 인파 때문에, 그리고 무덤 자체가 건물 내부에, 그것도 원형 광장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서 도저히 예수님무덤을 방문했다는 감동을 느끼기 어려운 실정이다.
수많은 십자군들이 목숨을 걸고 탈환하고자 했으며, 신약시대 이래 전세계 수십억 기독교인들이 최고의 성지로 여겨왔던 예루살렘의 골고다 성묘교회는 과연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곳일까?


원래 신약시대의 골고다는
채석장으로 '성벽 밖' 있었음
원래 골고다 지역은 구약시대부터 채석장으로 활용되던 곳이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 이 곳은 더 이상 채석장으로 사용되지는 않았고, 여러 개의 바위굴 무덤들이 뚫려 있었다. 이때는 골고다가 '성벽 밖'에 있었다.
서기 41년 헤롯의 성벽 확장으로
골고다가 '성안'에 들어오게 됨
그러나 서기 41년 예루살렘의 헤롯 아그리파가 성벽을 확장했기 때문에, 골고다가 '성안'에 들어오게 됐다. 따라서 당시 유대교 율법에 따라서 골고다에 매장됐던 모든 유골들은 성밖으로 이장됐을 것이다.
로마 하드리안 황제가 골고다를
거대한 언덕으로 만들어 비너스 신전 건설

서기 135년 바르 코크바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는 예루살렘의 명칭을 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바꾸고, 전형적인 로마식 도시로 재건했다. 이 과정에서 골고다 채석장 자리는 흙으로 메워 거대한 언덕이 만들어졌고, 그 위에 비너스 신전이 건설됐다.

헬레나, 비너스 신전 파괴하고 예수님 무덤 발견

기독교를 받아들인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서기 326년 비너스 신전을 헐어버리고 흙 속에 파묻힌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냈다.
서기 4세기 가이사랴의 대주교로서 교회사를 집필한 유세비우스는 당시 인부들이 신전을 헐었을 때의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공사가 진행되어 지표의 흙을 파내었을 때,
주님 부활의 거룩한 현장이 드러났다’.
이 구절은 훗날 그리스도의 나무 십자가를 발견했다는 전승으로 확대된다.
10년의 대공사로 최초의 성묘교회 완성되고,
부활을 뜻하는 '아나스타시스 돔' 건설.
10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서기 335년 최초의 성묘교회가 완성됐다. 무덤 위에는 부활을 뜻하는 아나스타시스 돔이 건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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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교회와 부활을 뜻하는 아나스타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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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교회. 오늘날의 성묘교회는 12C 십자군들에 의해 재건된 건물로서,

입구가 두 개의 아치로 되어 있으며, 골고다 언덕을 실내에 포함시키기 위해

2층 구조로 만들어졌다. 입구로 들어가서오른쪽 2층에 골고다가 있으며,

왼쪽에는 원형 광장 한가운데에 예수님의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무려 45년에 걸쳐
무덤 주위의 거대한 바위를 평지로 쪼아냄
무덤 주위로 거대한 바위를 평지로 쪼아내는 작업은 성묘교회가 완성된 후 무려 45년이나 걸려서 서기 380년이 되서야 마무리됐다.
예수님의 동굴무덤 위치가 원형 광장의 중앙으로 위치하게 되어
사방에 타트인 골고다 바위 언덕이 됨
그 결과 바위굴 무덤은 원형 광장의 한 가운데 자리잡게 됐으며, 무덤에서 동남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는 누구든지 바라볼 수 있는 골고다 바위 언덕 되었다.
638년 성묘교회 방문시 오마르가 기도를 거절,
1009년 이것이 非 회교 성지라는 증거라며 하킴이 완전 파괴

서기 638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아랍 통치자 오마르는 방문하여, 기도해도 좋다는 성묘 교회측의 초빙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만일 그가 이곳에서 기도를 한다면, 이 교회의 기독교적 거룩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겸손의 표시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훗날 서기 1009년 파티마 왕조의 통치자 하킴(Hakim)이 성묘교회를 완전히 파괴하는 계기가 된다. 왜냐하면 만일 오마르가 다른 교회들처럼 이 곳을 이슬람교 사원으로 만들었다면, 비잔틴 시대의 골고다 건축물이 오늘날까지 보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전산의 경우에서와 같이, 어쩌면 골고다가 이슬람교의 성지로 둔갑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009년 파티마의 무슬림들이 예수님무덤을 감싸고 있는 바위 언덕을 완전 파괴함으로써
예수님무덤의 이스라엘식 전통적 동굴무덤 모습이 완전 변형됨
서기 1009년 파티마(Fatima) 왕조의 무슬림들은 예수님무덤을 감싸고 있는 바위 언덕을 정으로 쪼아내 버렸다. 이때부터 이 곳은 더 이상 무덤이라고 보기는 어렵게 됐다.
1042년 비잔틴 황제 모누마쿠스
1099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십자군이 1099년부터 50년 동안 성묘교회 재건
서기 1042년 비잔틴 황제 모누마쿠스는 파괴된 성묘교회를 재건했으나, 다시 1073년 셀주크투르크(Seljuk Turk)의 전성기인 제3대 술탄 말리크샤(Malik-Shah:1072~92)의 침입을 받았다.
1099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십자군들은, 그 후 50년 동안 예수님무덤과 골고다 언덕 사이에 교회당을 새로 건설하면서 성묘교회를 재건했다.
비록 1808년의 지진과 1927년의 화재로 여러 부분이 파괴됐지만, 오늘날의 성묘교회는 십자군 시대의 건물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이다.


새로운 골고다를 찾자는 운동이 시작

조용한 정원 한 가운데 놓였을 요한복음서에 묘사된 그리스도의 무덤을 예상한다면, 온갖 제의 기구와 향불과 등잔이 어지럽게 장식된 성묘교회의 현실은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더욱이 골고다의 성묘교회는 라틴 카톨릭,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시리아, 콥트, 에티오피아 기독교 등 모두 여섯 교파가 각각 한 부분씩 차지하며 소유권을 주장하는데 반해서, 개신교의 자리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새로운 골고다를 찾자는 운동이 시작된다.
1883년 고든 장군이 골고다로 인정한 정원무덤 발견으로
골고다 성묘교회의 역사적 신빙성이 의심받기 시작

1894년 영국 성공회 소속의 ‘정원무덤협회’는 예루살렘 성벽 북쪽에 위치한 한 정원지역을 사들였다. 이 곳에 위치한 무덤과 근처의 바위 언덕은 1883년 영국의 고든(C. Gordon) 장군에 의해 골고다로 인정된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은 일단 예루살렘의 성벽 밖에 위치하고 있고, 정원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근처의 바위 언덕이 해골의 형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무덤으로 적격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이 때부터 골고다 성묘교회의 역사적 신빙성이 의심받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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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무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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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무덤에 있는 해골 모양의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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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무덤 내의 무덤 자리

 

정원 무덤은 1974년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바르카이에 의해
BC 7세기 때의 토기와 함께 전형적인 유다 왕들의 지하묘지의 일부 밝혀짐

그러나 1974년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바르카이(G. Barkay)는 정원무덤을 공식적으로 조사한 끝에, 이 무덤은 BC 7세기에 건설된 전형적인 유다 왕정 시대의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무덤은 근처에서 발견된 프랑스 고고학 연구소 마당에 위치한 유다 왕들의 지하묘지의 일부이며, BC 7세기의 토기가 함께 발견됐기 때문이다.
비록 예루살렘 주위에는 옛날 무덤을 다시 사용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요 19:41)에 묻혔기 때문에, 정원무덤을 더 이상 예수님의 무덤으로 여길 수는 없다.
성묘교회 근처에서 1C에 만들어진
또 다른 신약시대의 한 동굴무덤을 발견
반면 성묘교회의 예수님의 무덤에서 서쪽으로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서기 1세기에 만들어진 또 다른 신약시대의 한 동굴무덤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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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C 예루살렘의 동굴 무덤. 성묘교회의 예수님 무덤에서 서쪽으로 20m 떨어진 곳에서

서기 1C에 만들어진 신약 시대의 한 동굴무덤이 발견되었다.

가족묘 형태인 이 무덤을 통해서 예수님 무덤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참고 및 출처:오개월 환난  ,   존귀한 만남   ,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  아가페내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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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산의 역사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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