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십자가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감격이 과거의 경험으로만 남아있을까요?

무엇이 문제입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의 삶은 십자가가 구원받은 이후에도

현재적인 실존으로 계속적으로 내 심령에서 내 마음 판에서

경험되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내가 그때 구원 받았다는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진정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은

그 십자가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내 삶 오늘 내 존재에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옛날의 내가 구원받았던 하나의 사건으로만

십자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성령님의 온전한 인도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다 이러면 능력, 기적을 생각하지만

성령님의 일차적인 역사는 우리를 십자가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얻었을 때에

새로운 피조물로 살 때에 성령님은

우리를 날마다 십자가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매 순간마다 내 존재가 그 십자가 위에 서야 한다는 사실!

 

나의 옛 자아에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내 존재가 성립된다는 사실!

바로 이러한 자리로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신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온전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으면

성령님은 당신을 십자가로 인도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10절)

 

내 존재는 날마다 그 십자가 위에 있어야 합니다.

내 옛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새 생명에 의지해서 예수의 죽음을 우리 몸에 짊어져야 하고

살아있는 나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육체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바로 내 혼과 육을 통치하는 성령님과 친밀함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님,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삶입니다.

 

십자가 없는 성령 사역도 있을 수 없고

십자가 없는 성령님과의 친밀함,

그리스도와의 친밀함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죽을 때에 내 육신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고

그 예수의 생명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연합될 때에

이 죽을 육체에 나의 생명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그것이 바로 복음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 복음 위에 서 있는가?

 

오늘 여러분의 삶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정말 나는 십자가의 복음위에 서 있는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믿음으로 지금도 신앙생활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 십자가가 살아서 오늘도 내 삶의 기초가 되고

내 안에 계신 그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내 육신을 죽임으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는 삶을 사는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 여러분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십자가로 돌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다시 한 번 회개하고

그 십자가에서 내 삶을 다시 정립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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