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목사님의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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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년간 일제 강점의 시기에는 주기철 목사님이,

뒤이은 한국전쟁 625사변 시기에는 손양원 목사님이,

뒤이은 ‘전후 무너진 한국 재건의 시기’에는 한경직 목사님이,

각 시대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기독교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이 나라를 지켜오신 믿음의 조상들의 신앙과 신학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달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한경직 목사님 일화, 어록 모음



▲1. 겸손

하루는 장로 한 사람이

한 목사님이 회개해야 할 12가지 목록의 죄를 적어서 발표했다.

다 듣고 난 다음, 한 목사님 왈

"거기 목록에 빠진 죄가, 수 백 가지 죄가 더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자기 약함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참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의 약함 가운데서,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일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지 않는다.




▲2. 아름다운 빈손

오늘 큰 교회 목회자들이 설교의 힘을 잃어버리는 제일 큰 원인은

돈에 있다고 본다. 자세한 설명을 안 해도 다 안다.



만약 그런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이... 받을 때냐?” 라고 외친 엘리사의 격노에 찬 음성이

오늘날에도 들려져야 한다.



그것을 받아 누리려 했던 게하시에게 나아만의 문둥병이 옮겨진 것처럼,

누가 주는 대로 척척 받아쓰다가는 영혼에 물질의 문둥병이 퍼질 것이다.

그렇게 척척 받으면.. 나중에 설교가 죽 쑨다.



한국 교회는 ‘아름다운 빈손’(한경직 목사님)의 전통이 있다.

아직도 그런 훌륭한 목사님이 한국에 곳곳에 많이 계신다...




▲3. 사랑으로 두려움을 몰아내신 한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은 노년에 20평 남짓한 남한산성의 사택에서

교회에서 주는, 많지 않은 돈으로 노년을 보내셨다.

(가난을 지향하는 것은, '겸손'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 분은 다른 사람들처럼, 먹고 사는 데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는 템플턴 상을 수상하고도, 자기는 과거에 친일적 행동을 했으므로

그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그런 고백을 하면, 자기 명성이 떨어질 것을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그가 그런 '두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평소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여러분,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애쓰지 마시라.

애쓸수록 더욱 두려움에 빠질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려고’(체험하려고) 애쓰시라!

그 때, 사랑이 강물처럼 밀려올 때, '두려움'이 달아날 것이다. <박완철 목사님 설교에서 




▲4. 오래 참음

한경직 목사님이 은퇴하신 후에, LA지역 목회자 세미나에 목사님을 초청해서

‘한경직 목사님의 목회철학’을 여쭈었습니다.

후배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말씀을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제가 일평생 목회하면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가장 해 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목회해 오면서 <오랫동안 참았습니다.>

참는데 훈련되지 못하면 목회 못합니다.



설교 잘 하는 분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잘 참는 분>은 찾기 쉽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만난 교인 중에도, 힘들게 하는 교인, 이상한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목사님의 신념은 <일평생 참고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지는 것 같았는데,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래 참음’이 성령의 열매라고 가르칩니다. 갈5:22

성령충만한 사람이 오래 참습니다.   <이필재 목사님 설교에서




▲5. 고 한경직 목사님 영전에     -고훈 목사



남한산성에 백목련 부활 꽃 피울 때

당신은 백수를 향수하시고

하늘은 이제야 당신을 평안히 놓아 주십니다.



아무 말 없으셔도 무슨 일 안 하셔도

우리 곁에 살아 계심으로도

당신은 우리 힘이셨습니다.



한사람은 만인만큼 소중하게 만인을 한 사람 대하시듯

어떤 요구에도 거절 못 하시고누구의 의견에도 손 들어 주시고

단 한 사람에게도 섭섭함 주신 일 없으신 한국의 성자여,



한국의 작은 예수여.

당신의 한쪽 가슴 잃을 때 조국의 한쪽도 잃고

영락제단에서 순교 피 흐를 때 당신은 살아 순교자 되고



모든 것 가지고도아무것도 없으신 가난한 목자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 다 가지신 사랑의 목자



우리가 오늘 여기 이토록 슬픈 것은

당신이 주님 곁에 가심이 싫어서가 아니요

당신을 영원히 우리 곁에 두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당신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당신 같은 스승은 하나도 없고 당신 같은 목자는 하나도 없는

이 텅 빈 세상이 너무 슬퍼서입니다.



우리 모두는 당신을 우리의 아버지보다 더 사랑하고

따랐는데...

이 나라의 마병이요, 병거이신 분이여



단 한 벌 가난한 사랑의 겉옷은 남기고 가소서

갑절의 영감을 우리에게 주고 가소서

영락 뜨락에 백목련 부활 꽃 피울 때



당신은 백세를 향수하시고

하늘은 이제야 당신을 평안히 놓아주십니다.




▲6. ‘일병백세’ 라는 말이 있다.

병이 한 가지 있는 사람이 백세를 산다는 뜻이다.

건강한 사람이 오래 살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한경직 목사님이다.

밤낮 병원에 들락날락 하면서도 백세 가까이 사셨다.




▲7. 한경직 목사님의 템플턴 상 수상소감을 듣고서, 충격을 받다.

저(밥 퍼 목사)는 신학생 때, 한경직 목사님을 그렇게 존경하지는 않았다.

제가 영락교회 성도도 아니었고, 거기서 사역자로 섬긴 적도 없어서

사실 멀찍이 알고 지냈었다.



때로는, 군사정권 때, 한 목사님이 당당히 맞서지 못했다고

그 분에 대해 함부로 말했던 적도 있었던

젊은 시절에 저는, 아주 못난 놈이었다.



그런데 한 목사님께 대한 제 인식이 확 바뀌는 계기가 있었다.

그 분이 템플턴 상을 수상하셨을 때, 그 수상 소감을 말씀하시는 자리에서

그 분은 너무 뜻밖에도 “아닙네다!” 하시면서 자신을 부인하셨다.



‘아닙네다. 저는 템플턴 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입니다!

신사참배를 했던,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이런 죄인을, 기독교계의 지도자라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칭찬하고, 이렇게 상을 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디 신사참배뿐이겠습니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허물과 과실이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나를 이렇게 높여 줄 때마다... 저는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다 보면

정작 하늘나라에 가서는 상이 없을까봐, 그게 가장 두렵습니다!’



그 신사참배 얘기를, 50년이 지난 후, 굳이 또 밝힐 필요는 뭔가?

더욱이 그런 얘기를 할 장소와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저는, 그 수상소감을 말씀하시는 자리에서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때부터, 그분을 바라보던 제 시각도 완전히 변했다. <최일도 목사님 설교 중

 



 

▲8. 한경직 목사님이 주신 금언 : ‘아닙니다. 당연하지!’

그 때 저는, 한 목사님이 저를 부르시지도 않았지만,

염치를 무릅쓰고 남한산성(은퇴 후 한 목사님의 거처)에 찾아갔다.



그 때 저는, 갓 목사안수를 받은 아주 애송이, 병아리 목사였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먼저 용서를 구했다.



‘저는 신학생 시절에, 목사님이 군부독재에 대해 묵인하셨던 이유로

늘 못 마땅하게 여기면서, 목사님을 함부로 평가했던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랬더니 한 목사님은

“아닙니다!” 그러셨다.

(어린 손자뻘 목사인 저를, 깍듯하게 대해 주시는데 대해 다시 한 번 놀랐다.)



저는 몸 둘 바를 몰라서,

“목사님, 말씀을 낮추셔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은 또 “아닙니다!” 그러셨다.



나중에야 저는 깨달았다.

“아닙니다!”는 목사님이 일생 겸손하게 사셨기 때문에, <몸에 배이신 겸손>이었다.

<자기 부인>이 철저히 몸에 습관으로 배인 가운데서 나오는 소리임을!



그러시면서 제게

일생일대에 잊을 수 없는

<섬김에 관한 지침>을 그 날 제게 가르쳐 주셨다.



아래는 제가 똑똑히 듣고서 기억하는, 한 목사님의 말씀이다.

“최 목사님,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빈민선교를 하신다고,

참 귀한 일 한다고 여기저기서 인정해 주고, 높여 주는 사람들을 만나실 겝니다.



그 때마다 <아닙니다!> 하시기 바랍니다.

‘해야 될 일을 했을 뿐,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라는 고백이 있어야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한 참 섬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최 목사님처럼 귀한 사역하시는 분들을 바라보고,

격려해주고, 성원은 못할망정

훼방하고, 심지어 핍박하고, 중상모략하는 사람들을 꼭 만날 겝니다.



당연하디요, 그럴 때마다 <당연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그런 때마다 자기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당연하디요’를 혼자말로 해보시기 바랍니다.



억울한 일 당할 때, 그 억울한 일 갚아달라고 하지 말고,

당연하게 여기십시오.



우리 주님도, 또 주의 길을 걸어갔던 모든 제자들도

그렇게 환란 핍박 받았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걸어가신 그 섬김의 길을

우리 최목사님도 주님과 함께 걸을 줄로 믿습니다.”  <최일도 목사님 설교 중




▲9. 한경직 목사님은 ‘건물’을 남기셨다기 보다는,

신실한 예수의 제자의 길을 가신 <인격적 유산>을 후대에 남겨 주셨습니다.



다음 세대들에게 정말 ‘놀라운 선물’을 남기고 가셨고,

제2의 한경직, 제3의 한경직이 앞으로 계속 나올 때,

우리나라는 정말 복된 기독교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한 목사님의 수고와 노력이, 아마 후대를 위한 것이라고,  벧전1:12

어렴풋이 성령님이 일러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그 사실을 아셨는지, 모르셨는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목사님의 수고와 노력은

<후대를 위한 것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건물만 댕그라니 남겨놓고 가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10. 한경직 목사님의 마지막 조언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고 한경직 목사님도 말년에 남한산성에 머무시면,

방문하는 후배들이 한마디 꼭 들려주실 말씀을 여쭈면

예외 없이 조용한 미소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렇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역사 속에 남긴 가장 놀라운 도전은

우리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제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세상 떠 나는 날,

이 말 한마디 자녀들에게 남기고 가면 좋겠습니다.

“내 평생에 한 가지 예수 잘 믿고자 노력했다. 너희도 예수 잘 믿거라.”




▲11.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신 분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늘 등장하시는 분이 한경직 목사님입니다.

그 존경하실만한 성품과 목회적 일생, 그게 기반을 어디다 두고 있습니까?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에 동조하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템플턴상을 수상하실 때 수상소감의 첫마디가

‘나는 죄인입니다. 신사참배를 동조하고 참여했던 죄인입니다.’

라는 말씀을 첫마디로 하십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영예로워야 될 시간에

가장 추악한 당신의 모습을 들춰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에 동조했다는 그 죄책감으로

평생에 당신자신을 죄인으로 보시며 일관되게 살아가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한경직 목사님의 위상을 만들어낸 것이에요.



역설적이지요. 역설적이에요.

높이 쌓기 위해서는, 높이 쌓는 만큼 아래로 깊이 내려가야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라든지, 다윗이라든지, 한경직 목사님 같은 분들,

너무너무 자기의 죄를 깊이깊이 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이 사람들 눈에 보일 수 있을 만큼

높이높이 쌓아올릴 수 있었던 것이에요.  <태승철 목사님 설교에서




▲12. 듣는 귀

1960년 1월 10일 故 한경직 목사님께서 하신

‘애통하는 자의 복’에 대한 설교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그 때는 대한민국이 아주 척박했을 때의 상황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여러분, 조용히 귀를 기울여서 우리 사회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울음소리, 부모를 잃은 고아들의 울음소리,

남편을 잃은 아내들의 울음소리, 실업자의 울음소리, 고학생들의 울음소리,



악당의 유혹을 받아서 일생을 그르친 가련한 여성들의 울음소리,

이 울음소리를 듣고 같이 애통하는 자가 우리사회에 얼마나 됩니까?



이 애통하는 울음소리가 문자 그대로 삼천리강산에 사무치건만

이 울음소리를 듣고 같이 애통하는 참된 정치가, 참된 실업가,

참된 공무원, 참된 사회사업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됩니까?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사회는 눈물 없는 사회가 아닙니까?

애통할 줄 모르는 사회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복을 받지 못합니다.



남의 눈물을 내 눈물로 알고, 남의 설움을 내 설움으로 알아서

같이 십자가를 질 줄 아는 민족만이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남의 죄를 애통하는 자에게 더욱 복이 있습니다.” <김명혁 목사님 설교에서




▲13. 조용조용 설교하심

김삼환 목사님이 어느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에게 설교를 가르쳐 주신 두 분의 스승은

한경직 목사님과 방지일 목사님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과 스타일로 설교를 하셨을까 생각해 보곤 하는데,

조용조용한 모습으로 소박한 설교를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평소에 '말씀에 대해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그렇게 크게 소리쳐서 말 하지 않아도, 엄청난 파워가,

마음의 진정성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진솔한 고백입니다.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들의 삶과 설교를 본받고,

주님의 삶과 가르침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있는 그대로, 조용조용히 소박하게 설교하면 좋을 것입니다.




▲14. 연약한 지도자

진정 가정, 사회, 나라, 역사를 바꾸는 힘은.. 사실은 ‘약한’데서 오는 것입니다.

암흑시대 중세교회를 살린 힘은, 약하고 가난했던 성자 프란시스였고,

그것은 매 시대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은 주기철, 손양원, 한경직, 김용기, 장기려 등 약하고 가난한 분들이었습니다.




▲15. 모세처럼 기꺼이 퇴장하시는 용기

일부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서,

자신은 느보산에서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되며,

자신이 끝까지 인솔해서 가나안까지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집착하다가, 평생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수고한 것을 헛된 것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하나님의 교회를 개인의 명예와 유익을 위해 좌지우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경직 목사님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셨다.

한 목사님은 하나님이 한국 교회에 주신 축복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그 분은 ‘한국교회에 모세와 같은 지도자’로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최소한 십 년 이상 더 목회하실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후계자를 세우시고 자신은 스스럼없이 은퇴하신 데 있다.



그래서 <당신이 친히 목회하실 때 보다,

후임이 목회하실 때 영락교회가 더욱 성장했다.

한 목사님의 위대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분 이 사실을 꼭 명심하시기 바란다. 나는 이번 설교를 준비하다가 깨달았다;

자신이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서 교회를 부흥시키는 사람도 훌륭하다.

그러나 정말 더 훌륭한 지도자는, 자기 후임을 잘 세워서

자기 때보다 교회가 더욱 부흥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영락교회의 예에서 보듯이,

그 교회는 한경직 목사님 때보다 후임인 박목사님 때 더욱 부흥했고

교회의 정점에 도달했었다.               *박조준 목사님



박목사님도 훌륭하시지만,

자기 후임을 통해 교회가 절정에 도달하도록 유도하신 한목사님은 더욱 훌륭하셨다.



이런 역할과 모델을 보여준 지도자가 그 후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어쩌면 한국교회의 비극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일할 때 그 단체가 정점peak과 절정기에 도달하기 원한다.

나에게도 그런 어리석은 마음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동안교회를 섬겼던 기간이 동안교회 역사상 가장 정점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만약 제 후임자가 동안교회에서 저보다 목회를 더욱 잘한다면

마음이 게름직하고 걸리는 것이 아직 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나는 훌륭한 목회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런 어리석음과 싸우고 있다. <김동호 목사님 설교에서



영락교회 이철신 목사는 한경직 목사를 추억했다.

한경직 목사로부터 예수님을 닮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배우게 됐음을 고백했다.



이 목사는, 한경직 목사님은 늘 겸손하고 온유한 인격의 소유자로 회고한다.

어떻게 저러실 수 있을까 하면서 유심히 지켜봤지만,

몸이 아프고 고통이 심할때도 늘 한결같으신 모습은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 그것이었다고 기억한다.



이철신 목사는 한경직 목사의 후임으로 많은 것일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늘 ‘수고하십니다. 도와줄 수 없어 미안합니다’라는 말만 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간섭하지 않으시는 겸손)



한경직 원로목사님께 교회 일을 보고 하러 매주 찾아뵈었지만,

한 번도 말로 지도해 주신 적이 없다며, 지난 날을 회고했다.

-은퇴 이후에, 교회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으시는, 극기의 인격을 보여주신 것이다.

 

 

▶16. 한국교회와 사회가 존경하던 한경직 목사님께서

템플턴 상 수상 연설을 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인생의 삶을 지탱해 주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너무너무 귀중한 말씀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대로 인생의 삶을 지탱해 주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명예도 아닙니다.  <김명혁 목사님 설교에서

                                           계속 보시려면 여기 클릭 → http://blog.daum.net/rfcdrfcd/15973388

 
 



★템플턴 상

미국의 사업가 존 템플턴이 노벨상에 종교 부문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72년 템플턴 재단을 설립하면서 제정되었다.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며,

매년 종교 분야에서 인류를 위해 크게 이바지한 인물들에게 시상한다.




첫 번째 수상자는 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테레사 수녀이며,

제11회 수상자는 러시아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A. 솔제니친이다.

한국에서는 사회복지와 복음 전파, 남북 화해 등에 기여한 공로로

1992년 한경직 목사가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