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마니즘과 기독교 . 한국 샤마니즘의 사고체계
1. 神 觀 샤마니즘에는 교리라고 부를만한 사상적 체계가 거의 없다. 그러나 다른 종교들의 교리체계와 비교해 가면서 몇가지 중요한 사고체계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2. 靈 魂 觀 (영혼관) “샤마니즘에서는 인간을 영혼과 육체의 이원적 결합체로 보고, 영혼이 육체의 생존적 원력이라 믿는다.” 영혼은 무형의 기운으로 인간생명의 근원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샤마니즘에 있어서 영혼은 높고 고상한 것도 아니요 이상적인 것도 아니고 해방자도 아니다. 샤마니즘에 있어서 영혼은 “살아있는 사람과 동일한 인격을 갖는 것으로 상정하여 무의식 (巫儀式)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다.”
3. 來 世 觀 (내세관) 한국무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순수한 내세의 형태는 현세를 「이승」으로 내세를 「저승」으로 표현하는 지극히 간단한 것이다. “또한 이 「저승」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불교의 극락과 같이 그 위치가 뚜렷이 나타나지도 않고 그 낙원적인 성격이 강조 되지도 않는다. 죽으면 응당 「저승」으로 가는 것이고 거기서는 「이승」과는 다른 생활이 시작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또한 그 「저승」이란곳은 천상이나 지상이나 지하라는 한계도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저승은 막연하게 지상에서 수평으로 가는 먼 곳이면서 이승과 저승의 구분을 「모랭이」(모퉁이)를 돌아간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4. 降神체험과 엑스타시 (Ecstasy) 샤마니즘은 엑스타시의 종교다. 샤만(Sha - man)에게는 엑스타시의 체험이야말로 탁월한 종교적 체험이다. 그래서 엘리아데 (Elia - de)는 샤만을 자유자재로 엑스타시에 빠져들어 갈 수 있는 엑스타시의 전문가라고 정의한다. 샤만 (무당)은 엑스타시를 통해 神과 만나고 神과 교통한다. 엑스타시는 神을 체험하고 접촉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이 엑스타시의 경험이나 기술이 없는 무당은 선무당이며 영험이 없는 무당이다. 이 엑스타시를 통해 병을 고치기도 하고 예언의 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엑스타시는 권위의 표요 선망의 대상이 된다.
5. 무당과 굿에 대한 한국인의 기대 굿은 샤마니즘의 일종의 예배의식이다. 그리고 굿의 중심은 무당이다. 굿을 의뢰한 사람은 무당에게 모든 것을 위임해 버린다. 심지어는 자기의 인격까지 맡겨 무당이 시키는 대로 맹종한다. 사람들은 무당이 神을 불러오고 달래주고 또 악신을 쫓아내 주기를 기대한다.
神과 인간의 중간에서 인간의 소원을 神에게 알리는 神의 지시를 인간에게 전달하여 굿을 진행시키고 기우제를 주관하는 등 神과 인간을 이어주는 대표기능을 말한다.
무당의 대표적 기능이다. 치병에 대한 일반의 기대가 아주 높기 때문에 치병의 효험이 없는 무당은 선무당 취급을 당하며 인기가 없다. 치병의 기술이 있어야 신접한 강신무로 쳐준다. 치병을 목적으로 하는 굿에는 병굿, 환자굿, 푸닥거리, 영장치기, 산거리, 중천굿, 명두굿, 손풀이, 살풀이 굿 등은 다 치병 굿들이다.
점을 쳐 주거나 공수를 받아 神의 말을 전달해 주는 기능이다. 이것도 신앙적이고 윤리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재앙과 액운을 막고 운수를 고쳐 보자는 것에 그치고 만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었고 거기에 어떤 역사관은 없다. 4)오락적 기능 C. 샤마니즘이 한국인의 기독교
신앙에 끼친 영향
★ 1. 神觀이 끼친 영향
샤마니즘의 최고주제신 개념으로서 하느님 사상은 유일신 여호와를 같은 용어로 번역한 기독교의 하나님을 아무 저항감 없이 쉽게 받아 들이게 했다. 우리 민족이 몇 천년전 부터 우주의 최고神을 그렇게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그렇게 잘 받아들이고 부르는 하나님이 과연 얼마나 기독교의 본래적인 하나님일 것인가 하는 것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 (눅 15:20)이시며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분이시며 (롬 5:8) 우리의 전존제를 꿰뚫어보시며 우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우리의 소원을 아시는 분 (마 6:8)이므로 하나님과 나 사이는 부모와 자식보다 더 극진한 생명적 관계가 맺어지는데 반해 샤마니즘의 하나님은 소원성취의 도구로나 불리워질 뿐이다. 그것도 윤리적인 결단이나 神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신앙적인 결단과는 관계없이 제물을 바쳐서 그 효과를 기대하는 극히 공리적인 관계를 가질 뿐이다. 샤마니즘의 神觀은 불교를 비롯한 모든 외래종교들을 변질시켜 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역시 극히 현실주의적인 除災招福의 기복종교로 변질되게 했다는데 한국기독교의 문제점이 있다. “한국인은 질병이나 재앙을 만났을 때 누구보다도 열심으로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에게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도와 예배가 다분히 무교적인 신사역할을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 결과로 일반신자들은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차원높은 결단이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생명적인 순종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기적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신앙태도를 갖게 되며, 가정방문이나 안수기도하는 교직자들이 샤만(Shaman)적인 중재역할을 하도록 요청하며 기대한다. 하나님의 인격적 섭리에 대한 기대보다 그의 영력의 주술적인 효과를 기대하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샤마니즘에서의 神은 엑스타시(Ecstasy)를 통해서 체험하도록 되어 있다. 神이 내렸다는 증거, 神과 교통하고 있다는 증거가 모두 엑스타시를 통해 이루어 지기 때문에 수많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개체와 성령의 개성, 성령의 사역, 성령의 세례 같은 문제에 대해 크게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령을 받았다’, ‘성령으로 거듭났다’,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케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성령의 열매를 그 생애에 맺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갈 5:22),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마치 입신해서 엑스타시에 빠져야만 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신비체험이나 방언, 엑스타시 (Ecstasy)만 높이 평가하고 갈구하는 일이 교회내에서도 흔하다. 또한 그런 엑스타시의 체험을 누구에게나 요청하며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성령과는 거리가 먼 육적인 사람으로 평가하는 풍조가 교회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심히 우려되는 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 2. 샤마니즘의 영혼관과 내세관이 끼친 영향
클락 (Clark) 이 적절히 지적한대로 샤마니즘에는 심판사상이나 인간의 신앙유무나 행위에 의해 결정되는 내세의 구원개념이 없다. 저승의 개념도 극히 막연하여 모퉁이를 돌아선 “어느곳”일 뿐이다. 그러므로 샤마니즘에는 윤리적이고 신앙적인 결단이 필요없다. 내세는 누구나 자연적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것이고 혹 그렇지 못한다 할지라도 무당을 통해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세나 구원을 위해 자기의 사상이나 생활태도를 바꿀필요도 없고 굿이 끝나면 자신에게 아무 달라진 것이 없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만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타신앙이 자랄 토양을 형성케 했다.
★ 3. 降神체험과 엑스타시 (Ecstasy)가 끼친 영향
강신체험과 엑스타시가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샤마니즘적 사고방식은 기독교안에서도 신비체험과 엑스타시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있어야만 옳은 교회요 성령받은 신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성령의 사역과 은사로 오해되었고, 무당의 강신체험이나 엑스타시 비슷한 경험의 간증이 교회에서 환영받게 된 이상풍조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 4. 무당과 굿에 대한 기대가 끼친 영향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목회자에게 치병적인 기능을 과다하게 기대한다. 목회자들도 그 기능을 전문적으로 행사하려고 그 기능을 전도와 교회부흥의 수단으로 까지 삼으려 한다. 그리고 교인들의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안수기도나 치병의 효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등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 기독교는 많은 공헌을 남겼다. 우리민족의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고 크게 부흥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다른 종교들이 퇴보내지는 답보상태에 빠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기독교만은 교회없는 마을이 없을 정도로 질적으로 양적으로 놀라운 발전과 팽창을 거듭해 왔다. 최근에는 물질적으로도 비대해져서 거대한 교회건물들이 경쟁이나 하듯이 들어서고 수만명의 교인들과 수억원의 예산을 자랑하는 교회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우만은 아니다. 어느 사이엔가 샤머니즘은 한국교회내에 깊숙히 숨어 들어왔다.”
교회는 기독교를 치병과 방언과 엑스타시의 종교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과 본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그 복음의 능력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결단하게 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도록 해야할 것이다. 치병기복의 신앙만 강조하지 말고 죽음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을 가르쳐야 한다. 일부 신자들의 인기에 영합해서 그들이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또 교회를 부흥시키는 방편으로 샤마니즘적인 분위기를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것은 단연코 시정되어야 할 일이라 하겠다. 샤마니즘은 한국 기독교신자들의 마음속에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며, 우리는 그러한 샤머니즘을 민속의 자리로 돌려보내 민속유산으로서 보존해야할 것이다.
1. 김득황, “한국 종교사”, 서울:해문사,19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