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 시대와 교회의 대응

 

차례

. 서론

. 멀티미디어 시대

. 멀티미디어의 앞면

. 멀티미디어의 뒷면

. 멀티미디어가 교회에 미칠 영향 몇 가지

. 멀티미디어 시대에 대응하는 교회 - 몇 가지 제언

 

. 서론

최근 들어 전자업계의 텔레비젼 광고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멀티미디어’(multimedea)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지 잘 알 수 있다. “멀티미디어의 ○○”, “○○이 하이미디어로 앞서갑니다”, “멀티미디어의 뉴프론티어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왜 이렇게 모두 멀티미디어를 기업 이미지로 내걸고 있을까?

1950년대 지상파 텔레비젼 방송이 시작된 이후 이제 방송은 신문 등의 활자 매체를 제치고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자리를 굳혔다. 그런데 이제 텔레비젼 방송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직접위성방송(Dierct Broadcasting by Satellite)이나 케이블 TV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컴퓨터 또한 이제 단순한 사무 자동화라는 차원으로부터 그 활용성이 훨씬 넓어지고 있다. 특히 컴퓨터가 인터네트(Internet)를 비롯한 통신 방송 등과 맞물리면서 그 영향력은 갈수록 확대 강화되고 있다. 대부분의 목회자나 신학자, 또한 평신도 지도자들은 이른바 컴퓨터 이전 세대에 속한다. 따라서 멀티미디어란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될 것이며, 교회와 사회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기술 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이른바 멀티미디어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멀티미디어의 실체는 무엇인가? 또 교회는 이러한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 멀티미디어 시대

1. 컴퓨터 통신

컴퓨터 통신은 지금까지의 공간 개념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가상 공간, 이른바 사이버 스페이스”(cyber space)를 출현케 하였다. 이 가상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웃기도 하고, 자신의 주장을 소리 높여 외치기도 하며, 물건을 흥정하기도 한다. 편지를 보내고 파일을 주고받는 것은 초보적인 단계이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주고받으며, 화상 통신을 통해 자기 모습이나 목소리까지도 전달할 수 있다. 컴퓨터와 모뎀, 전화선만 있으면 안방에서 세계 곳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 이제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불과 몇 년 전 초기 하이텔이나 천리안 등의 정보 통신 서비스는 그냥 문자만을 전송하는 텍스트 서비스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림과 소리를 포함한 멀티미디어 통신으로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 인터테트도 손끝으로 마우스만 활용할 줄 알면 화면과 스피커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다가가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네트는 이러한 사이버 스페이스를 국제적 차원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테트를 통해 전세계를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서로 정보를 교류하며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어떤 기업에서는 신입 사원 지원자 면접에서 인터네트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아직 대학 등에서 정규 과목으로 채택되지 않고 있지만, 벌써 인터네트는 현대인으로서 이 정보화 사회에서 살아 나가기 위해 필수적인 도구가 되어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컴퓨터와 666의 상관 관계에 대해 논쟁하고 있던 사이에 세상은 이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2. 위성 방송

지난 115일 무궁화 제2호 위성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발사된 우리 나라 최초의 상업적 인공위성 무궁화 제1호의 실패를 보완하게 될 제2호 위성은 위성 방송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물론 일찍이 몇 해 전부터 일부 가구에서는 접시형 안테나를 달아 일본, 홍콩 등의 위성 방송을 수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본격적으로 디지털 방식의 고화질 텔레비젼 우리말 위성 방송이 시작되면 그 시청률은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컴퓨터 통신과 함께 이른바 멀티미디어 시대를 주도하는 또 하나의 매체가 될 것이다. 더욱이 위성체는 방송뿐 아니라 화상 통신 등 정보통신 영역에서도 그 뛰어난 기능을 발휘할 있을 것이다.

3. 케이블 TV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방송이 시작된 케이블 TV 또한 우리의 생활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서너 개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를 시청할 수밖에 없었던 시청자들은 이제 뉴스, 문화, 경제, 종교, 영화 등 수십 가지의 각종 채널을 마음대로 돌려볼 수 있게 되었다. 기독교 유선 방송도 지난해 12월부터 정식으로 방송을 시작하였다. 더구나 무궁화 제2호 위성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게 되면 우리말 위성 방송까지 이에 가세하게 되어 시청하게 되어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확대될 것이다.

. 멀티미디어의 앞면

1. 매체의 종합화

윌버 슈람(W. Schramm)1973년에 내놓은 그의 책 Men, Message and Media-A Look at Human Communication(최종수 역,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에서 여러 미디어가 통합된 슈퍼미디엄”(Supermedium)의 등장을 예견한 바 있다. 그의 예고대로 이제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컴퓨터, 통신, 방송, 신문, 서적 등 여러 가지 매체들이 종합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종합화가 가능해진 것은 무엇보다도 문자는 물론 음성과 영상, 동영상 등 각종 정보를 디지털 신호화(digitalisation)하는 기술하는 비롯된다. 아울러 이를 압축, 저장, 전송하는 기술 등의 발전에 힘입어 이전과는 달리 컴퓨터, 방송, 통신 등의 정보들이 서로 호환성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정보의 호환성은 필수적으로 기기의 통합으로 연결되어 컴퓨터와 통신 기기, 가전 제품, 방송 및 수신기 등은 이제 그 기능들을 모두 수용한 복합기로 대체되는 추세이다.

2. 매체의 양방향화

앞서 지적한 케이블 TV의 중요성은 다양한 전문 채널의 확보라는 점이외에 새로운 정보 전달 통로가 구축된다는 점에도 있다. 즉 유선 방송을 위한 케이블 구축이 바로 정보 초고속도로(Information Super Highway)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케이블 TV의 양방향 기능을 활용하게 되면 원격지간의 화상 통신도 가능하게 되며, 여론 조사도 시청자들이 컨버터의 리모콘 버튼 하나만 누르면 즉시 집계 결과가 나오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홈쇼핑, 원격 검침, 원격 검진 등 케이블 TV의 양방향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기존의 매체와는 달리 멀티미디어는 정보를 일정한 포맷 속에 가두어 두지 않고 시청자, 즉 정보 수용자의 관심과 요구에 따라 역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미 실용화되기 시작한 요구형 비디오’(Video On Demand)의 경우, 예를 들어 온 가족이 밤 9시에 뉴스를 보다가 아빠는 계속해서 자세한 정치 뉴스를 볼 수 있고, 아들은 자기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초점을 맞추어, 극적인 주요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전체 경기장 모습 등등 몇 가지로 내보냄으로써 수용자가 구미에 맞는 내용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안방에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개별적으로 전송 받을 수도 있다. 이미 한국 경제 신문에서는 맞춤신문을 개발해서 지난해 524일부터 서비스하고 있는데, 이런 서비스는 급속도로 발전되어 본격적인 요구형 뉴스’(News On Demand)도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정보 수용자의 정보 선택권이 강화될 수 있다.

3. 매체의 국제화

최근 폭발적으로 사용자 층이 확대되어 있는 인터네트나 인공위성을 통한 데이터 송수신에 힘입어 이제 나라간의 경계는 적어도 정보의 측면에서는 있으나마나 하게 되었다. 특히 위성 방송은 국경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화권의 생성을 할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기존 문화권은 위성 방송의 안방 침투로 인해 더욱 급속하게 통폐합되고 재편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일부 청소년층에서, 시판되지도 않는 일본 노래가 유행한다거나 일본의 인기 가수나 배우 등의 차림새가 금방 길거리로 나오는 현상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이 문화의 국경이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세계화에 보탬이 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문화에 대해서도 자본주의식 논리가 먹혀 들어가기 쉽다.

. 멀티미디어의 뒷면

1. 상업주의의 우선권 - 가사 한 토막

영국 성공회는 영국위성방송(BSKYB)이 미국 플레이보이 TV 채널의 방송을 허용한 데 대한 항의로 성공회가 보유하고 있는 영국위성방송 주식 360파운드(미화 570만 달러)어치를 매각했다. 성공회 투자 담당자는 4일 성명을 통해 성공회는 인간을 타락시키고 착취하는 포르노에 반대하며, 포르노를 직접 판매하는 회사에 대한 직접 투자로 이익을 얻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주식을 매각했다.”고 밝혔다. (중략) 플레이보이 TV는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방송되며, 시청료는 월 5.99파운드(9.46달러)이다. 플레이보이 TV24시간 종일 방송을 추진하고 있다.(출처: 조선일보 성공회 플레이보이 TV방영 위성 방송 주식 매각”, 1995116)

위의 기사에서 보듯, 멀티미디어의 소유자와 운영자들의 가장 주된 관심은 어떻게 시청자들을 광고주(혹은 지배층)에게 더 가까이 데려다 줄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지하고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한 프로그램보다는 말초적이며 표피적인 이벤트에 신경을 쓴다. 따라서 모든 프로그램의 제작 및 편성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은 정의나 윤리, 도덕이기보다는 시청률, 광고 효과 등이다. 이러한 상업주의를 벗어나는 프로그램들은 경쟁에 뒤지기 쉽고, 또 그러한 프로그램의 제작자들은 적절한 확대 재생산의 기회를 갖기 어렵게 될 것이다.

2. 공인된 세계관 - 신념 체계의 우선권

이제 멀티미디어의 숨은 기능을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멀티미디어는 이른바 슈퍼미디엄으로서 지위를 가지는 동시에 공인된 세계관’(die weltanschauung)또는 신념 체계’(the belief-system)를 전달하고 강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멀티미디어의 자정 능력이 전무하지는 않겠지만, 오도된 다중의 힘이 이를 통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멀티미디어는 가장 친절하고 유능한 선생님이 될 것이다. 멀티미디어가 지정하는 과자가 가장 맛있고, 멀티미디어가 지정하는 장난감이 가장 재미있다. 성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멀티미디어가 지정하는 정치인이 가장 청렴하고 능력 있다. 멀티미디어를 통해서만 영웅이 될 수 있고 또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 멀티미디어가 교회에 미칠 영향 몇 가지

1. 모이지 않는 교회 - 4년 후 어떤 주일

수요일 저녁, 김 집사는 소말리아 난민들이 굶주림으로 죽어 간다는 방송을 시청하고서, 전화로 자기 신용카드 번호와 금액을 입력하여 이들을 돕기 위한 성금을 낸다. 대학생인 박 목사의 딸은 토요일 오후에 며칠 전 위성 방송에 나왔던 마약 중독자 치료 운동한국지부 서울 센터에 나가 자원 봉사자로 일한다. 최 권사는 모 고등학교 강당에서 금요일밤, 지역 케이블 TV가 주최하는 열린 음악회에 참석하러 모 고등학교 강당으로 간다.

주일 아침, 이 장로는 온 가족의 손을 잡고 방송에서 예고한 대로 환경을 살리자는 캠페인을 위해 여의도 광장으로 향한다. 일부 열성적인신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합리적인사람들은 주일 아침 가족들과 함께 멀티미디어 앞에 모인다. 신문 방송에서 찾아낸, 아니 미리 지정 받은 가장 볼만한 프로에 채널을 맞추고 함께 웃고 박수를 치며, 그럴 수가 있느냐며 분노와 한숨을 내쉬고,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에 함께 눈물을 흘린다. 그 시각 교회당에서는 뭔가 모자란것으로 여겨지는 몇몇 사람들이 텅 빈 맨 앞줄 의자를 차지하고 목회자와 함께 과거 교회당을 꽉 메우던 때를 회상하며 예배를 드린다. 물론 목회자의 다른 가족들은 그 시각 멀티미디어 앞에 앉아 있다. 그나마 거룩한 예배: Tele- Church”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으면 다행이겠고·······.

우리는 과연 이런 미래의 모습을 피할 수 있을까? 우리 한국교회는, 멀티미디어 시대가 도래하여도 모이는 교회로서 세계적 명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이미 몇몇 대형교회들은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재택 근무가 보편화되는 시점에서는 재택 예배에 대한 요구가 거세 지리라 예상된다. 또한 인격적 참여로, 얼굴로 맞대고 드리는 예배보다는 원격 예배(remote worship service), 멀티미디어 예배(on-line worship service) 등이 보편화될 것이다. 더구나 이에 편승하여 보다 재미있는 이벤트로서 볼거리를 제공하는(상업적) 예배 행사(?) 등이 득세하기 쉽다는 점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2. 목회자의 위기

이제 멀티미디어 시대에는 더 이상 목회자의 카리스마가 이전처럼 유지되기 힘들다. 사회에서 권위는 기존 질서의 틀에서가 아니라 이러한 정보의 유통 과정에서 이탈될 것이다. 목회자는 더 이상 기름 부음 받은것으로 당연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무능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의 고전적 세계관을 지닌 인물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목회자에게 더 큰 위기는 설교의 위기이다. 이제 목회자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으로서의 자리를 이들 멀티미디어에게 빼앗겨 버릴 수 있다.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이 언제나 바르며 그대로 믿고 따라야 할 성경은 이제 목회자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를 통해 나오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예언자가 즐겨 쓰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란 어구는 멀티미디어 시대의 현대인들에게는 무슨무슨 방송을 보니까····”로 대치되어 버릴 운명이다.

반면, 미디어를 교묘히 활용할 줄 아는 일부 잘 나가는 스타 목회자”, “TV 설교가”(Televangelist)들은 건강이나 물질적 축복 등 값싼 복음을 설교하는 대가로 자신들의 구좌로 온라인 헌금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단말기 앞에서 자신의 신용카드(또는 전자 현금) 번호와 비밀 번호, 금액만 입력하면 교인의 의무를 마치는 셈이다.

3. 교회와 멀티미디어의 충돌

이제 멀티미디어는 전통적으로 교회의 것으로 여겼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멀티미디어야말로 사람들이 자기의 궁극적인 가치를 반영하는 세계관을 찾아내는 성소가 된다. 또 멀티미디어는 이제 자신의 행동과 삶의 방식을 정당화해 주는 신적 행위를 지닌 존재로 부상한다. 이제 교회는 교인들의 주일 아침 시간을 멀티미디어에게 빼앗길 뿐만 아니라 사람들 자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크리스천이라는 이름 대신에 자신을 네티즌’(netzen)으로 딱지 붙여 주기를 희망하는 신세대들과 함께 살고 있다.

. 멀티미디어 시대에 대응하는 교회 - 몇 가지 제언

1. 교회 연합 차원의 미디어 위원회구성

서구에서 인쇄라는 가히 혁명적인 기술이 개발되었을 때에 이를 가장 먼저 수용하고 교회적 목적을 위해 합당하게 활용했던 것이 개신교 전통의 시작 아닌가?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급변하는 문화적 충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제 멀티미디어 시대에 걸맞게 이를 기독교적으로 어떻게 대처, 수용할 것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날로 새로워지는 멀티미디어에 대한 총체적 대응을 위해 교회 연합적 차원에서 미디어위원회”(기존의 시청각 - 음영위원회와 언론대책기구 등을 통합하는)를 구성, 운영하기를 제안한다. 미디어위원회를 통해 수행되어야 할 과제들은 다음과 같다.

- 각종 미디어 관련 연구와 교육, 홍보

- 미디어, 전송망, 장비 등의 소유와 운영에 대한 감시

- 각종 미디어의 프로그램에 대한 감시와 제도

- 필요한 관련 법규의 개정, 개폐를 위한 캠페인

- 기독교 텔레비젼 등 선교의 목적에 봉사하는 각종 대안 미디어의 육성

- 기독교 세계관을 각종 미디어 프로그램(소프트웨어)의 생산, 유통

- 기타 관련 사업(인적 자원 개방등) 및 부대 사업

2. 멀티미디어에 대한 신학적 성찰- ‘미디어신학의 가능성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조응하여 신학의 과제 및 관심 분야도 이에 걸맞게 확대되어야 한다. 이전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한국의 기독교는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대하여 앞서서 대처하는 지혜를 모아왔다. 민중신학이나 환경신학, 그리고 최근의 통일신학이 그러한 접근들의 실례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멀티미디어 시대에 대비한 논의는 그 출발선 상에 있을 뿐이다.

목회자들의 심방은 다른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어떤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가? 예배의 본질에 비추어 온라인 예배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멀티미디어가 주창하는 인간 및 사회 이해에 있어서 문제점은 무엇이고 이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멀티미디어의 오용과 지배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이러한 실례를 비롯한 수많은 주제들이 신학적으로 성찰되어야 하며 대비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멀티미디어를 666이라고 규정하고 무조건 적그리스도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나타나리라 예견된다. 이전에 공산주의에 대하여, 또 컴퓨터에 대하여 붙였던 딱지가 이제 멀티미디어라는 새로운 상대가 나타나면서 옮아갈 것이다. 이런 경향은 교회가 시대 변화의 징조를 눈여겨보지 못하고 미처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의 장악력을 발휘하기 힘든 상대가 나타날 때마다 써먹던 수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앞서 먼저 멀티미디어를 기독교적으로 검토, 수용하고 또 문제점들을 보완해 내는 것이 미디어 신학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문명의 이기를 앞에 두고 자꾸 뒤로 물러서는 기독교의 모습은 더 이상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우리 기독교의 자랑스런 전통을 살려 미디어 신학도 하루바삐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3. 목회자 재교육 및 신학 교육 커리큘럼 조정

이 멀티미디어 시대의 급작스런 도래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우리 교계의 대비는 아주 미미한 형편이다. 대부분의 교계 인사들이 이에 대한 문제 의식조차 지니고 있지 못하다. 교회 연합 차원에서 멀티미디어에 대한 재교육을 진행한다면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각 신학교들에서도 이처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컴퓨터나 커뮤니케이션 등 멀티미디어 시대를 이끌어 갈 중심 요소들에 대한 교육이 아직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신학교육의 커리큘럼 또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속히 조정되기를 기대한다.

4. 교회의 자기 갱신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회의 자기 갱신이다. 더 이상 교회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지지와 충성을 요구하기 힘들게 되었다. 더 이상 카리스마스적 교권이 유지되기도 힘들게 될 것이다. 목회자의 자질 향상이 없이는 다음 세대들에게 교회는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 버리기 쉽다. 나라들 사이의 장벽도 무의미해지는 판에 교단간의 장벽이 지금처럼 높아야만 하는 이유를 이들 신세들과 이해해 주리라 생각하는가? 개혁된 교회가 아니라 교회로서 교회는 꾸준한 자기 갱신과 아울러 미디어의 개혁, 사회의 개혁에 힘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