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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동행

 

 

모세의 경우는 모세의 삶 전체 내용이 모두 분석 대상이지만, 그 중에 민수기 9장의 사람의 시체로 더렵혀진 자들이 유월절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율법의 규정에 항변하는 사건과 출애굽기 32장의 이스라엘 민족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두 가지 사건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시체로 더렵혀진 자들이 항변하는 사건을 본다. 율법의 나실인 규정에는 시체를 만져서 부정한 자는 유월절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다.(6:6~7, 각주참조) 그런데 시체로 인하여 더럽혀져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9:6, 각주참조) 이들이 모세에게 찾아와서 살다 보면 부모가 돌아가셔서 시체를 마질 수도 있는 것인데 왜 우리를 금지시켜서 유월절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항변한다. 율법을 지키는데 변수가 생긴 것이다. 이들의 항변에는 분명히 명분이 있었다. 살다 보면 유월절을 앞두고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것이지, 율법의 내용이지만 죽은 사람의 장사는 지내야 되는 불가항력적인 사유에서, 시체를 만진 것 때문에 그 축복의 축제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를 물은 것이다. 이때 모세는 그들에게 하나님에게 여쭤보고 그 답을 들을 테니 기다리라.”고 말한다.(9:8, 각주참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대답을 듣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 사람들을 유월절에 참석시킨다.(9:9~10, 각주참조)

 

두 번째 사례는 출애굽기 32장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이 진노하신 사건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을 받고서 늦게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다른 신을 섬긴다. 이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모세에게 이 민족을 진멸하고 모세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32:10, 각주참조)고 하신다. 그러나 이때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그들과 한 약속은 어떻게 되느냐고 질문을 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린다.(32:13~14, 각주참조) 이 두 사건에서 모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문제의 해결을 인간의 지혜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 해결한다. 삶의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의 해결 방법으로 하나님께 묻고 응답을 듣는 이 방법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경의 인물들의 삶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인간들이 잘못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모세는 그 사이에서 중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집안에서 아버지가 화를 내시면 그 화를 풀어주는 자식이 있듯이 그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모세의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생활 속에서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과 상의하는가?’우리가 잘못했을 때 영적인 리더들이(지금으로 본다면 목사들이 되겠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하는가?’를 보는 것이다.(각주참조)

 

생활 속에서 문제가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상의하는가를 살펴보라는 것은 삶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해결책을 받느냐를 묻는 것이다. ‘요즘 이런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이 거의 전부일 것이다. 구약시대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어린 성도들이 아직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원활하지 못할 때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 리더들의 중재가 없다면 그들은 거짓 선지자요, 독사의 자식이고 사탄의 종인 것이다.

 

 

다윗의 동행

 

다윗의 동행 사례에서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두 아내가 잡혀간 사건과 블레셋 사람들과의 첫 번째 전투를 살펴보기로 한다.

 

사무엘상 30장에 기록된 다윗과 아말렉의 전투는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벌어진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다윗의 두 아내가 아말렉군에 잡혀간다. 다윗은 심히 불안해하지만 스스로 하나님 안에서 용기를 얻고(삼상 30:5~6, 각주참조) 하나님께 이 군대를 추격할 것인가를 묻는다.(삼상 30:8, 각주참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추격하라는 음성을 듣고 추격하여 두 아내를 구한다.(삼상 30:18, 각주참조)

 

이 사건에서 보아야 할 것은 다윗이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아내가 잡혀갔다면 당연히 쫓아가서 찾아와야 할 일이다. 그것이 남편으로서 할 일이고, 그 일은 백 번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결정해도 충분한 명분이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는다. 여기서는 이 부분만 뽑아서 사례로 들었지만 다윗의 삶 전체를 연구해보면 이렇게 매사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묻고 행하는 것이 다윗의 행동양식이었다. 이것이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17 한편 필리스티아인들은 백성이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기름부었다 함을 듣자 온 필리스티아인들이 다윗을 찾으러 올라오니라. 다윗이 그 말을 듣고 요새로 내려 갔더니 (삼하 5:17, 한글킹)

 

19 그때 다윗이 주께 물어 말씀드리기를 내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주시겠나이까?” 하니 주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올라가라. 내가 의심할 바 없이 필리스티아인들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하시더라. (삼하 5:19)

 

본문의 내용은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자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시험하여 전쟁을 일으킨 장면이다. 이때도 다윗은 전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하나님께 묻는다.(삼하 5:19, 각주참조) 그리고 그 응답을 듣고 내려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여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 다음 전쟁에서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셔서 승리한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들은 인물이다.(13:22, 각주참조) 그의 삶의 전부는 하나님과의 동행이었다. 그는 왕이 되기 전이나 왕이 된 후나, 마지막 죽을 때까지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함에 변함이 없었다. 다윗의 삶에서 나타난 동행의 참 모습도 삶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고 그 해답을 얻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다른 인물들과 같은 점이다.

 

 

느헤미야의 동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심각한 경고를 하신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나라는 멸망하고 민족은 포로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유대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40년이 지난 뒤에 느헤미야가 등장한다. 느헤미야의 동행은 독특하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민족을 다시 회복시키는 과정에서의 동행이기 때문에 느헤미야의 동행 속에는 여러 가지 살펴볼 것이 많다. 여기서는 계획을 세우는 것과 그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였는지만 간단하게 보기로 한다.

 

우선, 느헤미야의 성읍 재건은 자신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계획하셨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아닥세르세스Artaxerxes왕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읍을 재건하는 일에 허락을 얻을 때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을 따라 왕이 내게 허락하셨다.”(2:8, 각주참조)고 말하고, 백성들을 계보대로 계수할 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생각을 넣어 주셨다.”(7:5, 각주참조) 말하는 것으로 보아 느헤미야를 통한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벽 재건을 조롱하고 훼방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 사실을 하나님께 고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4:20, 각주참조) 여기서도 어떤 일에 문제가 발생하면 하나님께 묻고 해결 받는 그 방법이 앞에서 살펴보았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4 주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것이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그들이 발견하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칠월의 명절에 초막에 거해야 한다는 것이요 (8:14, 한글킹)

 

느헤미야의 동행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자기 계획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계획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라는 것이다. 느헤미야의 동행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하나는 절기를 회복하는 대목이다.(8:14, 각주참조) 이 대목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때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절기를 회복하는 것임을 알게 하는데, 지금 기독교에는 이 절기가 사라져서 없다. 율법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율법을 무시하고 유대의 뿌리를 잘라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심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절기가 반드시 회복되어야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복원시킬 수 있다는 영의 원리가 먼저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각주참조)

 

 

외부에 나타나는 동행의 모습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경의 인물들의 참 모습으로는 우선, 하나님과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생활 속의 대화가 필수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생활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짚어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과 나누는 구체적인 대화의 내용이다. 아브라함이 롯을 생각하고 중재에 나섰을 때의 대화는 어떤 느낌이나 두루뭉술한 감각이 아니라 서로의 의사표시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일상의 대화였다.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수용하는,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대화와 같은 것이었다. 모세나 다윗의 하나님과의 대화도 모두 구체적인 내용을 주고받는 명시적인 의사표시였다.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 모두 친구와 대화를 하듯이 하나님과 대화하였다고(33:11, 각주참조)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사람들의 일상의 대화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원을 얻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동행의 첫 번째 표지는 명시적인 의사표시의 대화라는 것이다. 여기에 비추어 지금 기독교의 실상을 보면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하나님과 대화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심각함이 있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목사들이 하나님의 종인지, 사탄의 종인지를 분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두 번째 생활양식은 삶의 모든 일을 사람의 생각, 즉 자기 계획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분명한 지시를 받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애굽 과정에서 나타난 광야의 여정에서도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나아갔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진을 쳤다.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의 진영에 머물렀고 구름이 떠오를 때는 움직였다. 한 달이든 일 년이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있을 때는 움직였다. 한 달이든 일 년이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진영에 머물러 있다가 구름이 떠오르면 행진하였던 것이다.(9:18~22, 각주참조) 이 행동양식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민수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양식을 분석해보면, 그 당시 광야에서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계획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오직 구름기둥을 따라서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만나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이(37:23, 각주참조) 인식된 사람은 하나님과의 동행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며 복 있는 사람이다. 이 사실을 예레미야는 오 주여, 인생의 길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아니함을 내가 아나이다. 그의 걸음을 인도하는 것이 걷는 그 사람 안에 있지 아니하나이다.”라고 말한다.(10:23, 각주참조) 이 외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 모두가 사람의 길이 자기 생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의 길을 정하시고 그 길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수없이 강조한다. 지금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스스로 계획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인간의 지구상의 모든 인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전체를 조율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추어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하는 자가 어디 있는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지금의 기독교인들을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구원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등진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레미야는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하지도 아니하고 교훈도 받지 않는 민족이라. 진리가 사라지고 그들의 입에서 끊어졌다.”고 말한다.(7:28, 각주참조)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고 악한 마음의 계략들과 상상대로 행하여 뒤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7:24, 각주참조)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의중은 묻지도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자기의 상상대로, 악한 계략대로 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 되지 못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의중을 묻고 행한다는 것이다. 구원을 얻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두 번째 동행의 표지는 자기 계획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행하는 사람들의 일처리 방식이다. 이들은 어려운 일 뿐만 아니라 당연한 일도 하나님께 묻고 그 응답을 듣고 행한다. 이들은 일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묻고 그 음성대로 행동한다. 당연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묻고 그 음성대로 행동한다. 다윗의 경우를 살펴보면 두 아내가 잡혀갔을 때 쫓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추격을 할 것인가를 하나님께 묻고 그 응답을 듣고 추격한다. 당연한 일조차도 하나님께 질문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행동이다. 구원을 얻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세 번째 삶의 표지는 삶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당연한 일까지도 하나님께 묻고 그 응답을 듣고 해결하는 것이다.

 

[회복시리즈 08. 성경적 구원 일부 발췌 / 박찬빈 ]

 

 

자세한 내용은 책과 카페(하나님만을 바라는 사람들)에서 강의를 참조하세요. 회복시리즈와 신앙의 강요는 반드시 모두 읽어보시길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 바로 알아야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철저히 방해하고 있는지 분명히 짚어봐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는 사람들 (http://cafe.daum.net/onlyjesus1924) 카페에서 관련 내용의 강의영상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간증도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만나주시고 일하시며 동행해 주셨는지, 정말 성경대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이 나타나있습니다. 우리도 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영혼구원의 문제를 내일로 미뤄도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신앙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많은 분들과 공유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